지난해 물난리 딛고 … 제천 노각오이 첫물 따던 날

“특, 8,500원 나쁘지 않아” … 경매가 알리는 새벽 문자에 잠 설치기도

  • 입력 2021.07.11 18:00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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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향해 두 손 벌리듯 활짝 핀 오이 이파리와 넝쿨 사이로 노각오이를 실은 동력운반차가 천천히 지나간다. 지난 6일 충북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의 한 오이밭에서 황해문씨가 노각오이를 수확해 동력운반차에 싣고 있다.
하늘을 향해 두 손 벌리듯 활짝 핀 오이 이파리와 넝쿨 사이로 노각오이를 실은 동력운반차가 천천히 지나간다. 지난 6일 충북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의 한 오이밭에서 황해문씨가 노각오이를 수확해 동력운반차에 싣고 있다.
황해문씨와 석미정(왼쪽)씨가 노각오이를 수확하고 있다.
황해문씨와 석미정(왼쪽)씨가 노각오이를 수확하고 있다.
오이 넝쿨 사이에서 수확한 노각오이를 컨테이너에 담고 있는 황씨.
오이 넝쿨 사이에서 수확한 노각오이를 컨테이너에 담고 있는 황씨.
석미정(오른쪽)씨와 김선흠씨가 노각오이를 물로 씻어내고 있다.
석미정(오른쪽)씨와 김선흠씨가 노각오이를 물로 씻어내고 있다.
황씨가 물에 씻어 말린 노각오이를 15kg 상자에 담고 있다.
황씨가 물에 씻어 말린 노각오이를 15kg 상자에 담고 있다.
봉양농협 공판장에서 농민들이 노각오이를 파레트 위에 쌓고 있다.
봉양농협 공판장에서 농민들이 노각오이를 파레트 위에 쌓고 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씨줄 날줄로 촘촘히 엮인 고정지주대 유인줄을 따라 자란 오이 넝쿨이 사람 키만큼이나 크다. 허리를 숙여 무성한 오이 넝쿨 사이로 얼굴을 넣어 밭을 살핀다. 이내 노각오이를 찾아 꼭지를 자른다. 그렇게 두세 개를 수확해 한 모둠씩 모으며 조금씩 이동하니 농민들의 손길이 머문 자리마다 노각오이가 놓여 있다.

몸집 좋은 성인 남성의 팔뚝, 혹은 그보다 손 한 뼘가량 더 큰 노각오이가 특유의 노란 빛깔과 무늬를 선보이고 있다. 씨앗을 파종하고 모종을 정식한 지 한 달 보름여 만에 첫물을 수확하는 농민들의 얼굴에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지난 6일 충북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의 한 오이밭에선 ‘늙은 오이’로 일컫는 노각오이 수확이 한창이었다.

“오이는 밤이 따뜻해야 잘 크는데 7월인데도 (밤이) 서늘해. 아무래도 잘 안 커. 쓸데없는 비는 왜 또 그렇게 내리는지….” 무성한 오이 넝쿨 사이에서 노각오이를 찾아내 수확하고 있는 황해문(55)씨가 푸념 아닌 푸념을 내놓는다. 첫물의 크기가 기대에 조금 못 미치는 눈치다.

일반적으로 노각오이는 15kg 상자 기준, 8개에서 10개 사이가 ‘특’에 해당한다. 한 상자에 12개 전후로 담기면 ‘상’인데 농산물 경매에서 ‘특’과 ‘상’의 가격 차이는 꽤 크다. 황씨는 “첫물 가격이 괜찮으면 기분이 좋지. 가격이 한 번 오르면 일주일씩 가기도 하니까. 작년에 수해로 농사를 망쳐서 올해는 좀 만회해야 하는데 과가 잘 안 크네. 비도 잦고 날씨가 그래서…”라며 아쉬운 속내를 숨기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8월, 13동의 하우스에서 노각오이 첫물을 따고 두 번째 수확에 나설 무렵 며칠간 폭우가 쏟아지면서 마을 일대가 토사로 뒤덮이는 큰 물난리가 났다. 황씨 하우스도 뒷산에서 밀고 내려온 토사에 파묻혀 결국 그해 농사를 일찍 접을 수밖에 없었다. 값이 좋을 때라 아쉬움은 더 컸다. 수해 복구를 하고 나니 이미 농사의 때가 지나버린 뒤라 가을엔 건축 현장을 다니며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수확한 노각오이는 노란 컨테이너에 차곡차곡 담았다. 밭 좌우로 노란 컨테이너가 듬성듬성 놓였고 황씨와 귀농 실습생 김선흠(37)씨가 동력운반차를 이용해 노각오이를 선별장으로 옮겼다. 선별장에선 황씨의 아내 석미정(52)씨가 대형 고무통에 물을 받아 노각오이에 묻은 흙과 먼지를 씻어냈다. 이 과정에서 무르거나 흠집이 난 오이는 자연스럽게 골라낼 수 있었다.

올해 첫 수확이고 시장 가격도 가늠해볼 겸 이날 작업은 하우스 2동에서 이뤄졌다. 총 수확량은 8개들이 13상자, 10개들이 19상자, 12개들이 2상자였다. 황씨는 ‘한터 노각오이’라고 적힌 상자 겉면에 품위와 출하량을 적은 뒤 트럭에 실어 봉양농협 공판장으로 향했다. 공판장엔 이미 다른 농민들이 출하한 노각오이 상자들이 파레트 위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이날 출하한 노각오이의 등급별 수량을 송품장에 적으며 다른 농민들의 출하량까지 꼼꼼히 확인한 황씨는 “서울 가락시장(농협공판장)으로 보내는데 물량이 어느 정도 있어야 경매에서 값이 있다”며 “다음날 새벽 두세 시면 문자로 경매가를 알려주는데 값이 없으면 다시 잠도 안 오고 일 나가기가 싫을 정도라 (새벽에) 되도록 안 보려고 한다”고 귀띔했다.

황씨의 말을 곱씹으며 7일 아침 서울 가락시장 농협공판장 제천지역의 노각오이 경매가를 확인했다. 특품 기준 최고가는 8,500원이었다. 좋은 가격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황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량이 좀 있다 싶더니 그렇게 나왔어. 10개들이가 8,500원, 8개가 7,000원. 첫물이라 더 나오면 좋지. 근데 그리 나쁘진 않어.”

수화기로 전해지는 목소리는 너털웃음이 섞이며 꽤 유쾌했다. 값이 좋아서라기보다 ‘이제 시작인데 이만하면 괜찮다’, 싶은 목소리였다. 스스로 조바심 나던 게 가라앉았다. 그렇기에 바라건대, 올해는 지난해의 상처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또 매일 새벽잠을 깨우는 ‘딩동’ 그 문자에 늘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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