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마을이야기 – 마을과 공동체

  • 입력 2021.07.11 18:00
  • 기자명 김효진(전북 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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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전북 순창)
김효진(전북 순창)

마을을 주목하기 시작한 지도 꽤 됐다. 거창하지만, 신자유주의 이념에 따라 세계화와 국가경쟁력 도모를 위한 전 방위적 사회 시스템이 우리의 일상에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농업 분야에선 개방농정으로 생산의 규모화를 불러왔고, 이는 곧 농민과 농민, 농민과 자연과의 관계를 좀먹기 시작했다.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다 보니 경쟁에서 도태된 소규모 영세 농민은 은퇴를 강요받고, 경쟁력 없는 작물은 더 이상 재배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자연에 순응하며 생명을 가꾸던 농민은 대량생산의 강박에 사로잡혀 땅을 병들게 하고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오만과 어리석음에 빠졌다. 그사이 공동체는 철저히 무너져 내렸다.

삶의 현장인 일상에서 무너져가는 공동체를 목격하면서, 큰 틀에서 세상을 바꾸자는 거대 담론만으로는 현실을 타개하는데 역부족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바깥으로만 향했던 시선은 자연스럽게 지역과 마을을 응시하게 되었고, 경쟁의 필수요소인 속도와 규모에 있어서도 ‘느림’과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농촌공동체는 그 원형을 찾기 어려울 만큼 달라졌다. 농사의 형태가 규모화·기계화되면서 노동의 형태 역시 품을 지고 갚던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일손이 필요한들 외국인노동자에 의존할 수밖엔 도리가 없는 현실이다.

노동의 단절은 문화의 단절을 가져왔다. 농사가 일상이자 생활인 농촌에서 사람들이 접촉할 일이 없다 보면 정서적 유대와 연대가 싹 틀 틈이 없다. 정월 보름이면 흔히 보던 당산제, 우물제, 망우리(달집태우기)는 유다른 마을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행사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인구절벽의 현실 앞에 머지않아 공동체를 구성할 성원조차 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전국의 많은 곳에서 ‘마을이야기’를 끄집어내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의 공모사업을 통해 시작한 마을도 있고, 외부의 입김 없이 주민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차근차근 추진하는 곳도 있다.

마을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위해선 우선 마을의 현주소를 가감 없이 함께 풀어내는 마당을 만들어야 한다. 마을의 자원과 장단점, 그리고 희망하는 미래상을 주민들의 입장과 처지에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 마을의 얼굴이 다양하듯 마을을 가꾸는 방식과 해법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추진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도 많다. 가부장적인 문화는 주민들의 민주적 참여를 방해한다. 대체로 남편과 함께 참여하는 여성농민들은 마을회의에 소극적이며 집성촌의 성격이 강한 마을일수록 그 정도가 심하다. 남녀노소가 마을의 주인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갖고 각자의 입장에 따라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마을공동체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 관건이다. 게다가 농사짓는 사람과 직장 다니는 사람, 마을이 탯자리인 사람과 외지에서 들어와 사는 사람 등 각자 서 있는 곳이 달라 다른 풍경을 이야기하는 주민들을 어떻게 하나로 녹여내느냐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에 대한 상도 고전적이며 정형화된 모습은 아닐 것이다. 당장 품앗이·두레를 재현할 수 있는 농사구조도 아닐뿐더러, 우리의 삶의 양식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출발해 공동체성을 회복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한 이유이다. 최근 언론을 통해 접한 남원 산내면의 ‘산내 성다양성 축제’는 지역공동체를 고민하는 우리에게도 또 다른 문제의식을 던져주었다. 과연 우리 지역과 마을도 이만큼의 다양성을 담아낼 만큼 성숙한지 말이다.

최근에 마을 견학을 물어오는 연락이 잦아지는 것을 보면,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감염 우려도 조금씩 걷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간 마을에서 주민들이 한데 모이기가 쉽지 않아 아쉬웠는데, 이젠 조금씩 주민들과 마을이야기로 수다 떨며 기지개를 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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