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있는 빵’ 굽는 청주 미원면 산골마을 사람들

  • 입력 2021.07.07 16:46
  • 수정 2021.07.08 16:05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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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밀 재배를 맡은 김희상 동청주살림영농조합법인 대표(뒤쪽)와 매장에서 일하는 마을 주민들. 이들을 포함해 제빵실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마을 주민으로만 구성돼 있습니다.
밀 재배를 맡은 김희상 동청주살림영농조합법인 대표(뒤쪽)와 매장에서 일하는 마을 주민들. 이들을 포함해 제빵실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마을 주민으로만 구성돼 있습니다.

 

충청북도 청주시의 산간 농촌 지역인 미원면에는 올해로 3년이 된 빵집 겸 카페가 하나 있습니다. ‘OO바게트’ 혹은 ‘매일매일’ 따위의 뜻이 담긴 프랑스어 간판을 달고 있는 프랜차이즈 빵집은 당연히 아닙니다. 언뜻 보기에 사 먹을 사람이나 있을까 싶은 산골 농촌에 동네빵집이 성업하고 있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간의 이름은 '마을카페 잇다', 여기서 파는 빵들은 '미원산골마을빵'. 이곳에서 1년에 한 번 여는, 도시 사람들을 초청해 빵을 소개하고 교육하는 자리를 찾아가 봤습니다. 저로선 그 사연을 정리할 아주 좋은 기회를 잡은 셈이죠. 

농촌을 자주 찾아다니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오늘 만난 이 빵집은 우선 그 존재 자체가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농촌 살길 기피하는 이유를 단 한 마디로 설명하라고 하면, 아마 이런 표현이 나오지 않을까요.

“정말 뭐가 없다!” 

그 ‘뭐’라는 것엔 학교, 병원, 문화시설, 하다못해 도시에서는 어디서나 흔한 이런 빵집과 분위기 괜찮은 카페까지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밥 대신 빵을 먹고 싶을 때도 자주 있을 것인데(사실, 제 얘기입니다), 그 흔한 프랜차이즈 체인 빵집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게 지금 우리 농촌입니다. 기꺼이 끼니로까지 삼을 수 있는 다양한 빵 그리고 잠시 머물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미원면은 제게 굉장한 호감을 주었습니다.

 

카페의 형태 또한 갖춘 빵집은 지역의 사랑방 역할도 도맡곤합니다. 카페의 공간을 빌려 이상규 충북보건과학대학 교수가 커피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카페의 형태 또한 갖춘 빵집은 지역의 사랑방 역할도 도맡곤 합니다. 카페의 공간을 빌려 이상규 충북보건과학대학 교수가 커피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농촌에서 빵을 만든다는 사실만으로 이렇게 조명을 비추러 간 건 아닙니다.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곳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 그러니까 매대에서 빵을 판매하는 사람·화덕에서 빵을 굽는 사람 그리고 빵에 들어갈 우리밀을 재배하는 농민까지 전부 미원면 주민이자 이곳을 운영하는 지역공동체 ‘동청주살림영농조합법인’의 구성원이라는 점이죠. 

보통 로컬푸드의 강점을 얘기할 때 ‘얼굴 있는 생산자’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내가 먹는 농산물을 누가 생산했는지 알고, 또한 믿고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빗대 쓰는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곳 빵은 국내의 ‘얼굴 있는 빵’들 중 가장 높은 순도를 지녔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인 1차 농산물도 누가 생산했는지 알고 먹는 게 쉽지 않은 현실인데, 거기에 이런 가공식품에 들어간 손길까지 모두 노출되는 경우는 전국적으로 따져도 정말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시민들이 이곳에 방문한 이유 또한 주민들이 만들어내는 그 가치를 몸소 배우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접 밀을 베고, 손수 빵반죽도 해 보고, 우리밀 빵이 차려진 식탁에서 식사하는 등 하루 새 그 모든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체험하며 바람직한 먹거리가 무엇인지 배워간 것이지요. 

 

오동균 성공회산남교회 신부(오른쪽 세번째)는 이날 빵집을 찾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밀빵을 직접 만드는 체험학습을 지도했습니다. 오 신부는 스스로가 '빵굽는신부'이자, 이곳에서 일하는 주민들이 제빵을 배울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장본인입니다. 

 

앞서 강조한 것처럼 미원면은 고작 5,000명이 안 되는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41%나 되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농촌입니다. 일자리 하나가 귀한 이곳에서 매장관리와 제빵을 맡은 각 세 명과 시청 시간제 일자리를 포함해 10명이 넘는 지역민을 고용하고 있다는 건 사실 대단한 성과입니다. 젊은 사람이 적은 농촌에서 다른 먹거리도 아닌 빵을 만들고 파는 일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매달려 있다는 게 선뜻 믿기지 않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매대를 채워야 할 정도로 팔려나가는 빵들을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게 됩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 바람직한 빵들은 먹기에도 참 좋습니다. 카페를 처음 열 때 내세웠던 건 농업기술센터의 지원을 받아 기술을 습득한 청주시 ‘썸빵썸빵’ 브랜드의 ‘까눌레’나 ‘티그레’였지만, 가장 많이 팔리는 빵은 역시 ‘모닝빵’, ‘밤식빵’ 등 어느 빵집에서나 주력으로 파는 흔한 빵들입니다.

“평생 빵을 잘 안 먹었는데, 이 집 쌀모닝빵은 소화가 잘 돼서 자주 사 먹어요.”

젊은 사람들에게도 이름이 익숙지 않은 정통 프랑스 제과들보단 부담 없이 먹기 좋은 이런 빵들이 더 많이 팔리는 거야 어찌 보면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곤 해도 농촌 어르신들이 빵을 즐길 거라고 생각되진 않아서 방문 전에는 빵집의 판매량이 걱정됐던 것도 사실인데요, 계산대 앞에서 만난 주민들은 하나같이 배가 아프지 않고 소화가 잘 되는 빵이란 점을 최고의 장점으로 꼽았습니다.

 

미원산골빵집의 진열대는 취재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몇번씩 새로 채워지곤 했습니다.
미원산골빵집의 진열대는 취재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몇번씩 새로 채워지곤 했습니다.

 

“대표님 저기 오시네. 참 듬직하게 일하시죠?”

물론 제가 걱정했던 것과 같이 처음에는 자리를 잡기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상황이 꽤 나아지기 시작한 건 바로 올해 초로, 농민인 김희상 대표를 비롯한 조합의 이사들은 사실상 보수도 없이 매장관리와 제빵, 원재료 수급을 도와가며 꿈을 키웠다고 하네요. 이날도 행사를 즐기는 시민들에게 제공할 식사는 물론이고 매장에 진열할 빵을 나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김 대표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후, 지역의 소비량은 물론 도시에서 입소문을 듣고 이 산골까지 찾아와 빵을 사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습니다. 이제 평소 자체 생산하던 소량의 밀로는 모든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서 외부에서 밀가루를 사 오고 있기까지 하지요. 물론 그 역시 함양 지리산 자락에서 재배되고 있는 우리밀로 만든 밀가루로, 빵의 품질과 성격은 동등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곳은 법인이고 제가 대표긴 하지만, 이곳이 저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따로 제빵사를 고용하지 않았고, 빵을 배울 때도 특정한 사람에게만 기술이 전수되지 않도록 팀을 짜서 배웠죠. 그래야 공동체가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을 테니까요.”

비록 엄연한 영농조합‘법인’이지만, 이제는 이 빵집이 단순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사업체가 아니라는 것을 지역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성격이 사실상 협동조합에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이 공동체가 영농조합법인의 틀 속에 있는 까닭은 단 하나, 다름 아닌 우리밀 재배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 때문이죠. 밀 자급률 1%의 시대, 미원산골마을빵이 더욱 빛나는 이유입니다.

제빵실에서 모닝빵 반죽을 다루는 주민들. 모닝빵은 이집 최고의 인기상품 중 하나입니다.
제빵실에서 모닝빵 반죽을 다루는 주민들. 모닝빵은 이집 최고의 인기상품 중 하나입니다.

 

영농조합법인이 직접 재배하고 있는 밀밭에서 가서 수확체험을 하고 있는 시민들. 빵 판매가 늘어난 만큼 김희상 대표는 우리밀 생산기반을 더욱 단단하게 확립할 계획입니다.
영농조합법인이 직접 재배하고 있는 밀밭에서 수확체험을 하고 있는 시민들. 빵 판매가 늘어난 만큼 김희상 대표는 우리밀 생산기반을 더욱 단단하게 확립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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