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축장 검사원은 ‘투명인간’이 아니다

거칠고 힘든 도축 현장서 방역·위생 방파제 역할
무기계약직·예산 부족 굴레에 승진도 미래도 ‘깜깜’
“정부가 우리 역할 인정해달라” 호소 외면 말아야

  • 입력 2021.07.04 18:00
  • 수정 2021.07.04 18:03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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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도축장은 육류를 소비자에게 공급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가공 및 유통과정이다. 가축 방역의 마지막 방파제이자 위생안전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는 도축장의 거칠고 힘든 현장을 지키며 방역과 위생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우리는 어느새 잊었지만 그들은 어김없이 오늘도 현장을 땀 흘려 지키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그 땀에 공정한 대우를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아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지난달 28일 오전 7시. 경남 창녕군에 있는 한 도축장의 아침이 시작됐다. 이날 작업물량은 소 102마리. 돼지는 평소에 약 2,500여 마리 가량을 처리한다. 소 도축장의 라인이 돌아가고 노동자들이 제 위치에서 작업을 준비한다. 그 사이에 노란색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본부장 정석찬, 위생방역본부)에서 파견된 검사원(위생직)이다.

첫 작업물량은 기립불능우 2마리다. 도축 전 상태가 이상한 소는 미리 분류해 검사원이 검사용 시료를 채취한다. 시료는 진주시에 있는 경상남도동물위생시험소로 보내져 광우병 유무를 확인한다.

이내 본격적인 도축작업이 진행된다. 작업라인은 약 2시간 가량 쉴 새 없이 돌아간다. 그리고 잠깐 쉬는 시간을 갖고 다시 작업을 한다. 검사원들도 이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지난달 28일 경남 창녕의 한 도축장에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소속 검사원이 소 내장검사(해체검사)를 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경남 창녕의 한 도축장에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소속 검사원이 소 내장검사(해체검사)를 하고 있다.

이날 첫 타임엔 석준호 검사원이 내장검사를 맡아 출혈이나 변색 등 상태이상을 관찰했다. 상태가 안 좋은 부분은 폐기하거나 심한 경우엔 검사관(수의사)을 호출한다. 작업라인이 돌아가는 속도에 맞춰 검사해야 하기에 순간판단을 빨리 내리는 게 관건이다. 항생제 검사를 위한 시료 채취도 이 단계에서 한다.

마지막 단계엔 권도희 검사원이 지육 검사를 담당했다. 지육검사에선 자상, 농양, 골절, 결핵 등을 판단해야 한다. 구제역 검사 목적으로 정해진 마리수만큼 혈액 샘플을 채취하기도 한다.

권 검사원은 지난해 7월 입사했다. 사기업보다는 공공기관에서 근무하고 싶어 위생직에 지원했다고 한다. 권 검사원은 “생각보다 체력을 많이 필요로 한다. 하루에 6시간 이상 서 있기 때문이다”라며 “갑자기 내장이 터져 물을 다 맞은 적이 있어 많이 당황했던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작업장 벽엔 ‘베임·찔림 주의’, ‘귀마개 착용’ 등 안전을 당부하는 표지가 붙어있다.

지난달 28일 경남 창녕의 한 도축장에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소속 검사원이 도축한 소의 혈액을 채취하고 있다. 채취한 혈액은 인근 동물위생시험소로 보내져 구제역 검사를 하게 된다.
지난달 28일 경남 창녕의 한 도축장에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소속 검사원이 도축한 소의 혈액을 채취하고 있다. 채취한 혈액은 인근 동물위생시험소로 보내져 구제역 검사를 하게 된다.

“15년 근무했는데 여전히 7급”

돼지도 소와 같은 검사를 진행하는데 돼지열병 검사가 추가된다. 돼지 도축장은 새로 신축했다는 소 도축장과 달리 작업라인이 미로처럼 연결돼 있다. 바닥은 물에 젖어 미끄럽고, 냄새나 소음도 소 도축장보다 심했다.

험한 작업환경이지만 이곳에 배정된 5명의 검사원 중 3명이 여성이다. 조현숙 검사원은 “오래 서 있는 게 힘들지만 나쁘지 않다. 아침에 일찍 출근하는 만큼 저녁엔 일찍 퇴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업량이 많거나 기계고장으로 작업이 지체되면 연장근무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검사원들을 힘들게 하는 건 대표적인 3D업종인 도축장에서의 근무가 아니었다. 조 검사원은 “15년을 일했는데 계속 7급이다. 승진이 안 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승진 없는 직장에 자신의 미래를 온전히 맡기기는 쉽지 않다.

위생방역본부 검사원은 무기계약직이다. 이들만 무기계약직이 아니다. 위생방역본부는 구성원이 1,000명이 넘는 공공기관인데 정규직은 겨우 50여명 남짓이다. 문재인정부는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무기계약직은 예외다. 무기계약직이 임금과 처우에서 정규직과 뚜렷한 차별을 겪고 있다는 점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부족한 예산 역시 문제다. 위생방역본부는 지난해 시간외근무수당을 지급할 예산이 부족해 현장에 대체휴무 전환을 권장했다. 방역복, 장갑, 장화 등 기본적인 물품조차 제때 지급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인력이 부족한데도 방역철인 겨울을 맞아 추가 지시가 쏟아지고 아프리카돼지열병, 고병원성 AI 발생이란 악재마저 겹치고 말았다.

이준기 위생방역본부 경남도본부 중부사무소 부소장은 “일을 해도 희망이 없다”고 개탄했다. 그는 16년 경력으로 이 도축장에 배정된 검사원 중 최고참이지만 6급에 머물러 있다.

이 부소장은 “검사원은 지방자치단체 소속 검사관을 보조하는 업무를 한다고 규정됐을 뿐, 구체적인 업무가 없다”면서 “외부에선 우리 조직이 있는지도 모를거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검사원들의 공통된 바람은 우리의 역할을 인정받고 싶다는 것이다. 위생직이 소외되지 않도록 정부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8일 경남 창녕의 한 도축장에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소속 검사원이 돼지 내장검사를 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경남 창녕의 한 도축장에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소속 검사원이 돼지 내장검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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