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손 모내기 하던 날의 단상

  • 입력 2021.06.27 18:00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우리 지역에서도 지난주에 늦게사 여성 농민단체에서 토종벼 손 모내기를 진행했습니다. 늦었다는 말은 모가 늦었다기보다는, 드디어 우리 지역에서도 토종종자 사업을 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뜻이 있는 지역에서는 이미 여러 가지 토종종자 사업으로 토종 종자의 가치를 확인하고, 땅에서 유전자원을 보유하는 일이 더없이 중요함을 확산시켜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선진지역 덕분에 우리 지역에서는 늦게라도 손쉽게 토종종자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값진 하루의 단상을 살펴보며 우리의 농업은 참으로 여러 가지 의미가 있고,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사람이 농업의 이해당사자가 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생겨났습니다.

토요일 아침, 약속된 시간보다 먼저 지역신문 기자들이 참석했습니다. 말하자면 언론사도 이런 데에 관심이 조금 있다는 말이겠지요? 좁은 지역이라 좋은 뉴스든 나쁜 뉴스든 이야깃거리가 많이 없으니까요. 이야깃거리가 없어도 의미없는 일에는 또 기자의 참석이 없는 것도 사실이니,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도 충분했나 봅니다. 예정된 시간이 되니까 어느새 스무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100평 남짓한 논에 들어서기에는 많은 숫자였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면 까닭없이 기운이 솟으니 좋은 일이지요. 물론 마을 이장님도 우리마을에서 값진 행사가 있다 하니 새참을 사오셔서 격려의 인사를 해 주셨습니다.

각자 소개를 하는데, 구성도 다양했습니다. 귀농 6년 만에 처음으로 모를 심게 되었다는 이, 몇 년 전에 손모를 심어보고는 모심는 법도 잊어버렸다는 도시내기, 남해에 귀농한 지 3개월 되었다는 이, 좋은 이앙기를 두고 굳이 손모를 심는 까닭을 모르겠다는 농민 등 다채로운 사람들이 모여든 것입니다. 인사가 끝나고는 토종 종자 사업단장이 그동안 진행한 일을 보고하고, 올여름에는 우리 지역의 유전자원을 조사해보자는 거창한 계획도 발표를 했습니다. 오늘 심는 찰벼 종자 이름은 돼지찰벼인데, 맛도 좋지만 찰떡을 해놓으면 잘 굳지 않아서 인기가 좋다는 말까지 곁들이니, 참가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관심을 보였습니다.

행사 후 곧장 모를 심는데, 가관이었습니다. 모를 어느 깊이로 심어야 하는지 묻고 또 묻고, 심었는데 둥둥 떠다니는 것도 있고, 한쪽은 진즉 마쳤다고 못줄을 넘기라는데, 한쪽은 아직 밤중인 상황, 초짜들만 모인 곳에 선수를 투입한다 어쩐다 부산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마침 농업기술센터 식량작물팀장도 수박 한 덩이를 사들고서 참석해서는 모를 심는 이들보다 더 신이 났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토종종자 사업을 한다는데 가상한 것이지요.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토종벼들이 병해충에 약하다고 널찍널찍하게 심으라고 당부를 하기도 하고, 못줄 간격을 조정하는 등 입장을 세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발을 옮기다가 자빠지는 이도 있고, 맨발로 참가한 어린 여성은 논흙의 느낌이 너무 좋다고 폴짝거리고, 그러기를 한 30분 넘기다 보니 어느새 다 심게 되었습니다. 방구가 길이 나자 보리양식이 떨어진다더니, 이제 좀 익숙해질 만하니까 끝났다고 아쉬워하는 표정들이었습니다.

그러고서 평가들을 하는데, 6년 귀촌생활 중 최고의 날이었다고, 귀농한 지 3개월 만에 참여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고, 농민들은 이제 새삼스레 손 모내기는 싫은데 귀농자나 도시인들이 이들이 이렇게 좋아하니 내년에 또 해야겠다고 하는 등의 말들이 오갔습니다. 손 모내기 체험 활동을 계속 해야겠구나, 농사 과정에 참여하며 농업의 문제를 듣기도 하고, 어려움도 나누고 해야 비로소 서로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농사, 내 소득뿐 아니라 농업의 가치를 확산하기 위한 사회적 농업 활동을 누군가는 계속 이어나가야 하겠지요. 그 누군가가 누구일까요? 올가을에 돼지찰떡을 나눠 먹으며 생각해 볼 일이지요.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