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귀농가족이 겨우 논 얻고도 논농사 못 짓는 이유

쌀 생산조정제 종료에도 … 농지은행 비축임대농지, 타작물 재배 또는 휴경만 가능

  • 입력 2021.06.25 09:06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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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송동석씨가 농지은행 비축농지라는 이유로 벼를 심지 못해 잡초가 무성해진 휴경지를 둘러보고 있다. 바로 옆 필지에서는 모가 자라고 있다.
송동석씨가 농지은행 비축농지라는 이유로 벼를 심지 못해 잡초가 무성해진 휴경지를 둘러보고 있다. 바로 옆 필지에서는 모가 자라고 있다.

 

귀농해 도시 살던 아들까지 불러들여 겨우 농사지을 논을 얻었더니 정부 정책 때문에 벼는 키울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다른 작물을 심어보자니 벼 이외에는 전혀 자랄 수 없는 땅이다. 쌀이 부족하다며 정부비축미 방출까지 논했던 올해, 농지은행 임대농지가 사실상 경작지의 전부인 한 가족이 지금 겪고 있는 일이다.

한국농어촌공사 농지은행은 ‘비축농지임대사업’을 통해 농지 임대계약을 원하는 농민에게 비축농지를 빌려주고 있다. 모든 농가가 신청할 수 있지만 1순위에 청년창업농 사업 대상자, 2순위에 2030세대, 3순위에 후계농업경영인을 지정하고 있어 사실상 청년농민의 유입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농지들에는 임대계약서에 단서조항이 붙는다. 임대기간은 최소 5년으로 정해지는데, ‘식량작물 적정생산을 위해, 농가는 임차받은 농지가 논일 경우 계약 기간 동안 벼 외 타작물을 재배하거나 필요한 경우 휴경해야 한다’라는 조건으로 임대해준다. 이는 지난 2018년 시행된 ‘쌀생산조정제’의 목표달성을 위한 것으로, 소유주의 저항이 발생하지 않는 국가 소유의 농지들부터 우선적으로 생산전환면적에 참여시키고자 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농지에서 타작물 재배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할 경우, 임차농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9년 전 충남 보령시로 귀농 후 농사지을 땅을 원했던 송동석씨 가족은 도시에 살던 1990년생 아들이 농사에 뜻을 보이자 청년농을 우대하는 비축농지임대사업을 통해 농지를 얻고자 했다. 그러나 수십년간 논으로만 쓰였던 이 농지들은 배수가 사실상 불가능해 콩이나 마늘 등의 대체작물을 심기엔 너무나 부적절한 땅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씨 가족은 정부 지침을 지키고자 지난 2019년 150만원의 생산비를 들여 콩 재배를 시도했다가 겨우 170만원의 수익을 얻고 결국 농사를 포기했다. 현재 부부는 총 여섯 필지의 임대농지 중 네 필지를 2년째 놀리고 있다. 약 4,800평에 이르는 전체 임대농지 가운데 계약 당시 타작물 재배 조건이 없었던 1,500평에서만 벼를 재배하고 있는데, 가장 먼저 얻은 이 농지들은 내년에 계약이 종료된다.

송씨는 “땅이 좋으면, 예를 들면 위치도 좋고 물 대기도 빼기도 좋으면 서로 사려고 하지 농어촌공사에는 안 판다”라며 “지금 이미 짓고 있는 논 두 다랭이도 양수기 모터를 돌려가며 힘들게 짓고 있는데, 그 나쁜 땅에서 농사짓겠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할 수 있는 농사조차 못 짓게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고 항변했다.

아내 강옥자(59)씨는 “아들을 내려오게 한 결정이 너무 잘못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라며 “차라리 더 일찍 취직을 시켜서 자리잡게 해야 했는데… 휴경해도 직불금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고작 300여만원 가지고는 생활이 안 되지 않느냐”라며 말끝을 흐렸다. 부부의 아들은 결국 얼마 전부터 인근의 수산물가공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모든 논에서 벼가 자라는 가운데, 송씨 가족의 논만 잡초로 가득하다.
주변의 모든 논에서 벼가 자라는 가운데, 송씨 가족의 논만 잡초로 가득하다. 멧돼지를 막기 위해 설치한 그물망 등 콩농사를 지었던 흔적만 남았다.

 

마을의 경작지를 훤히 꿰뚫고 있는 주민들도 송씨가 농지은행에서 빌린 이 땅들은 벼 이외에는 도저히 농사지을 수 없는 땅들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이렇게 농사지을 수 없어 결국 휴경한 농지에서는 수많은 잡초가 자라나 인근 농지에 피해를 주는데, 송씨의 사정을 아는 주민들은 어떻게든 농사를 지으라고 하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토박이 농민 이상원(74)씨는 “계속 강제로 빼낸다 해도 물이 계속 솟는 땅이라 벼 말고는 될 수가 없는 땅”이라며 “이곳이 여기저기 농지가 많은 곡창지대면 모를까, 이 조그만 땅에서 자기 먹고 살려고 짓는 농사를 못 짓게 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국농어촌공사 보령지사에 확인한 결과 관할 지사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있으나, 지침을 뒤집을 수단이 딱히 없다는 입장이다.

쌀생산조정제는 지난해 2만ha를 목표로 시행된 것을 마지막으로 종료됐다. 그럼에도 농지은행 비축농지가 조건부 임대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한국농어촌공사 관계자는 “쌀생산조정제는 끝났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쌀 수급 조절의 필요성이 여전히 남아있어 아직 비축농지에는 적용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공사가 매입해 공공의 성격을 띠는 농지들인 만큼 수급 정책에 어느 정도 기여가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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