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따기보다 어려운 의성 마늘논 일꾼 구하기

  • 입력 2021.06.24 13:33
  • 수정 2021.06.27 21:09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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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마늘논 주인 황정미(앞)씨와 고용된 일꾼들이 나란히 앉은 채 마늘을 쌓으며 전진하고 있습니다.
마늘논 주인 황정미(앞)씨와 고용된 일꾼들이 나란히 앉은 채 마늘을 쌓으며 전진하고 있습니다.

 

남쪽 지방에선 따뜻한 기후를 이용해 같은 필지에서 두 번의 서로 다른 농사를 지으며 경작지를 최대한 활용하기도 하는데, 이를 이모작이라 합니다. 이모작의 그 반환점이 두드러지는 시기가 바로 늦봄과 초여름이 바톤을 주고받는 이 무렵입니다. 보통은 빠르게 자라는 조생종 벼를 심기로 작정하고, 6월이 가기 전까지 그 논에서 보리·밀 등의 식량작물을 기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형태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남녘에서는, 지금 농번기 중의 농번기를 보내고 있는 셈이죠.

‘의성육쪽마늘’이 나는 경상북도 의성군의 논들도 같은 방식으로 한해에 두 번 물듭니다. 벼가 자리를 비운 곳에 심겨 이듬해 늦봄까지 몸집을 키운 마늘줄기는 수확 직전이 되면 끝단이 말라 노랗게 변하는데, 마치 점묘화로 그린 것처럼 노랑과 초록 두 색이 어우러진 들녘이 바로 이 무렵 ‘마늘논’의 모습입니다.

 

위기의 마늘논

그 마늘논들이 지금 위기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마늘을 캘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마늘은 수확 작업에 투입되는 노동력이 가장 많은 작물 중 하나로 꼽히는데, 그로 인해 해가 바뀌어도 끝나지 않은 코로나19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고 있습니다. 그간 노동력을 제공하는데 있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던 이주노동자 수급이 끊겨버렸고, 농촌은 당장 자력으로 이 일을 감당하기에는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너무 늙어버렸죠. 천정부지로 치솟은 인건비를 내겠다는데도 데려올 사람이 없는 현실이 농가들 눈앞에 닥치고 말았습니다.

제게는 마늘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분들, 김상권·황정미씨 부부가 바로 여기 의성에 살고 있습니다. 입사를 준비하며 한국농정신문의 지난 기사들을 탐독하고 있을 무렵, 지면의 대부분을 할애해 ‘중소가족농’의 생활을 들여다 본 특집호를 매우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기획에서 이 주제를 위해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관찰한 사례가 바로 이 가족이었죠. 마늘을 캐고 나선 벼를 심고, 벼를 걷으면 자두를 키우고, 그 와중에 소도 40여 마리를 키우며 ‘악착같은’ 농사를 이어가는 그들이 떠올라, 이런 상황에서 제 손 두 개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전화를 드렸습니다.

 

해뜰 무렵의 마늘논. 수확 뒤 이곳은 곧바로 이모작 벼가 자라는 곡창지대로 바뀌게 됩니다.
해뜰 무렵의 마늘논. 수확 뒤 이곳은 곧바로 이모작 벼가 자라는 곡창지대로 바뀌게 됩니다.

 

“제가 내려가서 마늘 수확 일을 도와드릴까 하는데요….”

“몇 명이 와요? 뭐? 아니, 혼자 온다고?”

수화기 너머로 조그맣게 들리는, 혼자 온다는 사실에 잔뜩 실망한 황씨의 목소리만 듣고도 사태의 심각성을 대강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내용이야 무엇이든 당연지사 취재를 오려고 연락했을 테니, 당연히 혼자 오겠지 생각하셨을 테니까요. 의성에 내려가 만난 부부의 머릿속에는 오직 일손에 대한 걱정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깊은 우려 속 마늘수확 준비

그날 인근 상주에서 다른 취재를 마친 저는 초저녁 무렵 부부가 사는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부부는 내일 아침 도착할 인력들을 곧바로 투입할 수 있게끔 마늘논 한 필지의 준비작업을 마친 참입니다. 그리곤 제가 도착한 김에 농로에 주저앉아 새참과 함께 준비했던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사정과 걱정을 전합니다. 다행스럽게도, 군에서 운영하는 인력중개센터를 통해 수확을 시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은 구한 모양입니다.

“군 인력중개센터에서는 절대 먼저 (이 돈을 줘야) 올 사람이 있다고 말을 안 해. 우리가 먼저 ‘아니 달라는 대로 맞춰 줄 테니까, 사람이 있냐’고 물으니까 그제야 12만원이면 있다고 겨우 답을 해.” 

부부는 술 한 잔을 걸치고 나서도 해가 뉘엿뉘엿 지는 그 찰나의 틈을 이용해 자급 목적으로 농사짓는 소량의 양파를 뽑습니다. 얼결에 떨어진 일에 허둥지둥하면서도 든 생각은 ‘뭐야, 생각보다 할 만한데?’ 그러나 초보는 이 때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내일 체험해 볼 마늘 수확에 비하면 이건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수확 작업 전, 경운기에 딸린 수확기로 밭 전체를 뒤집는 일은 남편 김상권씨의 몫입니다.
수확 작업 전, 경운기에 딸린 수확기로 밭 전체를 뒤집는 일은 남편 김상권씨의 몫입니다.

 

다음날 새벽 다섯 시 무렵 일어난 부부의 인기척에 저도 덩달아 잠에서 깹니다. 간단한 아침을 챙겨먹고 밭에 나오니, 기상시간 무렵 뜬 해가 어느새 야산 위로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이날 온다는 일꾼들은 7시에 도착할 예정인데, 부부는 어제와 같이 미리 해둬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마늘을 뽑자면 여러 가지의 준비 작업이 필요합니다. 우선 잡초 성장 억제를 위해 덮어뒀던 비닐을 걷어냅니다. 비닐을 걷는 이유는 수확 전에 경운기를 써서 밭 전체를 한번 헤집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경운기 뒤에는 ‘마늘수확기’라는 장비가 달리는데, 애석하게도 그 이름처럼 일련의 수확 작업 그 자체를 도맡아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바로 손으로 뽑기에는 마늘이 너무나도 단단하게 토양에 박혀있기 때문에, 마늘 사이사이의 토양을 헤집어 그 강한 결속을 풀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마늘 수확에서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과정입니다.

부부는 우선 자력으로 필지 양 끝단의 비닐을 걷고, 경운기를 돌린 뒤 마늘을 뽑아냅니다. 양 끝단을 먼저 수확하는 건, 곧 ‘ㄹ’자 모양으로 필지 한가운데를 오갈 경운기의 반환점이 될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함입니다. 겨우 길이 2m가량으로 잡은 끝단의 비닐을 마늘이 상하지 않게 신경 쓰며 걷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요, 그래서 끝단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비닐은 또 사람을 써서 걷어냅니다.

“이것(비닐 걷는 것)까지 직접 하고 싶어도, 둘이서 비닐까지 걷는다고 하면 이제 힘이 빠져서 수확을 못해."

이 비용이 마지기당 10만원이라고 하니 부부는 마늘 수확 인건비와는 별도의 인건비 100만원 정도를 또 지출해야 하는 셈이죠. 지역에는 이 작업만을 전담하는 작업반이 따로 있어, 부부의 논을 끝내자 곧장 다른 농가의 필지로 이동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비닐 걷은 땅에 김씨가 들어가 휘청휘청하는 경운기를 팔 힘으로 지탱해 가며 모든 토양을 갈아내고 나면, 그제야 사람들 맞을 준비가 끝나게 됩니다. 사람을 불렀고, 온다고 했고, 그래서 준비를 하면서도 우려는 쉬이 떨치지 못합니다. 

 

황정미씨가 농로에 올라 일꾼들의 차량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부부가 원한 인원은 10명이었지만, 실제로는 7명만 도착했습니다.
황정미씨가 농로에 올라 일꾼들의 차량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부부가 원한 인원은 10명이었지만, 실제로는 7명만 도착했습니다.

 

“저기 온다. 몇 명 탄 거지?”

황씨는 검은색 승합차가 한 대 도착하자 고개를 내밀다 못해 농로로 부리나케 올라가봅니다. 차량을 보아하니 좀 작긴 해도 자리를 모두 펴면 부부가 기대했던 열 명이 간신히 탈 수는 있는 차종입니다. 그러나 차에서 내린 건 일곱 명. 황 선생님의 기색은 숨기기 어려울 만큼이나 급격히 어두워졌습니다.

“원래 오기로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마늘을 한다고 해서 그런지 안 나오는 사람도 있는 것 같고…. 마늘일 데려가려면 길거리에서 아무나 잡아다 설득해서 태워야 할 판이에요.”

차를 몰고 온 사람은 권광섭(64)씨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작년 말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현장에서는 소위 ‘반장’이라고 부르는데, 자신과 함께 일할 일꾼을 모아 현장으로 데려가는 역할을 합니다. 어쩌면 권씨는 농가만큼이나 이 격랑과도 같은 난관을 피부로 잘 느끼는 이들 중 한 사람일 것입니다. 

“대구에 보면 제 나이 또래 사람들이 일이 없어서 그냥 길에 나와서 놀고 있거든요. 그런 현실 보고 있으면 답답하죠. 나라가 노인수당이니 뭐니 먹여살려주니까 일을 안 하려고 하지.”

권씨 생각에 자신과 같은 60대는 아직 한창 일할 나이인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일하려하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합니다. ‘일을 해야 건강하다’, ‘나라에서 그 돈으로 인건비를 지원하면 경제도 돌고 농촌도 살 수 있다’는 내용의 일장연설을 들으며, 저는 그의 옆에 앉아 마늘을 캐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 이제 누가 할까

부부의 경험에 따르면, 3,000평 마늘논의 수확을 마치는 데는 최소 서른 명의 인원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한 번에 열 명씩 3일을 나와 줄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입니다. 한지형마늘을 심는 이곳 마늘논 한 필지는 보통 폭 3m80cm 고랑 네 개로 구성되는데, 부부 두 사람까지 더해 열두 명의 인력이 마련된다면 고랑 하나당 세 사람씩 들어가 깔끔하게 필지 단위로 일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부는 열 명의 인원을 신청했는데, 보시다시피 사람들이 타고 있는 승합차가 현장에 당도할 때까지도 실제로 몇 명이 나타날지 농가는 알 수 없는 게 올해 마늘논의 현실입니다. 세상 어디에 돈을 주고 사람을 쓰는 고용주의 위치가 이렇게도 낮은 경우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일하러 오는 사람들의 인원수나 숙련도를 결정하기는커녕, 오기로 한 사람들이 당일 아침 감감무소식이 돼 버리는 상황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로 농가의 처지는 ‘을’에 가깝습니다.

거기다 이 작업은 농촌의 여러 일 가운데서도 특히 고되기까지 하니, 구직자를 끌어들이는 측면에서 경쟁력이 낮다는 것도 올해 같은 상황에서는 매우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한번 이 일을 겪어보니 사람들이 마늘 일을 기피하는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양파와 달리 사전에 수확기로 경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뽑아내는 것 자체에 큰 힘이 드는데다, 보관을 위해 뿌리에 묻은 흙을 반드시 털어내야 하므로 작업 속도도 매우 더딥니다.

‘제법 많이 캐냈는데, 지금쯤이면 이제 다 와가지 않을까?’

기대감을 갖고 고개를 들어보지만 고랑의 끝자락은 좀체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앉은 위치에서 손에 잡히는 마늘을 모두 털어내고 나면 다시 엉금엉금 기어 조금의 전진을 한 뒤 주저앉는데 곧 엉덩이는 천근만근 무거워집니다. 쪼그려 앉아 행하는 각종 수확 작업의 편의를 위해, 농촌에는 엉덩이에 끈으로 고정하는 ‘작업방석’이라는 게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만… 저도 하나를 지급받았는데, 너무나 큰 기대를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의 존재는 그저 고통의 일부를 다리가 아닌 허리에 배분해 주는데 의의가 있을 뿐이었죠. 다리가 아예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닌데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도 겪자니 뭔가 손해 보는 느낌도 듭니다.

 

작업이 이른 시간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오전 9시쯤 되면 꿀맛 같은 휴식 겸 새참 시간이 주어집니다.
작업이 이른 시간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오전 9시쯤 되면 꿀맛 같은 휴식 겸 새참 시간이 주어집니다.

 

부부와 저까지 열 사람이 달려들었음에도 고작 400평에 불과한 필지 한 곳의 수확을 점심식사 전까지 끝내지 못했으니, 그 지난함이 상상이 가실지 모르겠습니다. 김상권씨는 일꾼들과 함께 마늘을 캐는 와중에도 틈을 내 경운기를 잡고, 여전히 몇 명과 함께 일할 수 있을지 모를 내일의 수확 작업을 준비합니다. 한 필지를 마치고 논두렁에 앉자마자, 그는 내년에도 마늘농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읊조립니다.

“시월드, 친정월드, 이웃월드, 다 동원된 마늘 캐기. 비와서 오늘은 밀린 설거지. 더 꺼낼 그릇이 없다.”

끝날 때까지 돕지 못하고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일주일 후, SNS에서 온갖 인맥을 동원해 일을 겨우 다 치러낸 심정을 여성농민의 입장에서 재치 있게 쓴 후기를 접한 뒤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한편 어느 농가에서는 작업 당일 인력이 나타나지 않아 결국 수확준비까지 다 마쳐 둔 수천 평의 마늘논을 갈아엎었다는 충격적인 소식도 듣습니다. 당장 오늘도 저는 충남 보령의 어느 농촌에서 캐지도, 갈지도 못해 잡초투성이가 돼 버린 한 마늘밭을 보고 온 참이네요. 슬픈 현실을 최대한 세상에 알리는 것 외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당연한 사실이 쌓이고 쌓이며, 마음은 더욱 무거워져만 갑니다.

 

지난 2014년 한국농정신문의 1면을 장식했던 김상권, 황정미씨 가족의 모습. 당시 중학생이었던 둘째 아들이 제대하는 올해도 부부는 같은 마늘논에서 농사를 놓지 않고 이어갑니다.
지난 2014년 한국농정신문의 1면을 장식했던 김상권, 황정미씨 가족의 모습. 당시 중학생이었던 둘째 아들이 제대하는 올해도 부부는 같은 마늘논에서 농사를 놓지 않고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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