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전쟁고아⑤ 이별보다 더 슬픈 것

  • 입력 2021.06.20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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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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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의 용주사 경내에 자리한 ‘화성자혜원’에 가을이 왔다. 전쟁이 끝나고도 여러 해가 지났지만, 헤어진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모름지기 고아로 남아있는 아이들이 아직도 줄잡아 수백 명이었다. 하지만 아이들 중 누구도 이내 부모를 만나고야 말 것이라는 희망을 결코 내려놓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고아원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의 눈이 어느 순간 반짝 빛났다.

-어, 형! 저기 저 아주머니 누구지?

-원장실로 들어가는 걸 보니까 혹시…누구네 엄마가 아들이나 딸 찾으러 왔나봐.

아이들은 하던 놀이를 작파하고 연신 원장실 쪽으로 곁눈질을 한다. 아니나 다를까 총무 선생이 원아들 모두를 운동장에 모이게 한다. 이윽고 원장이 중년의 여인과 한 사내아이를 단으로 오르도록 안내한다. 아이들 사이에서 “어, 춘길인데?” “윤춘길이잖아?” “춘길이 엄마 찾았나봐”…짧은 웅성거림이 이는 사이, 원장이 마이크를 잡는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기쁘고도 섭섭한 소식을 전해야겠어요. 그 동안 우리 화성자혜원에서 우리들과 함께 지냈던 윤춘길 친구가…아니, 이제부터는 성씨를 제대로 알았으니까 윤춘길이 아니고 송춘길이라고 불러야겠네…송춘길 친구가 어머니를 만나서 오늘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어요. 함께 생활했던 우리들 잊지 말고 열심히 살아가도록 우리 모두 격려해 줍시다. 여러분도 머지않아 부모님을 만나게 될 테니까, 용기를 잃지 말고 마음 굳게 먹고 지내야 해요.

원장은 박수를 치자고 했으나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춘길이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정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자, 원아들이 하나같이 울음을 터트린다. 물론 이상열과 그의 누나도 손등으로 연신 눈물을 훔쳤다.

“정든 친구하고 헤어지게 되어서 우는 게 아니었어요. 엄마 손을 꼭 잡고 싱글거리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춘길이가 너무나 부러워서…그래서 너나없이 오열을 한 거지요. 하지만 우리도 춘길이처럼 부모를 만나서 잊었던 고향도 찾고, 잘못된 성씨도 고치고, 생년월일도 바로잡게 될 날이 오리라고 믿었지요. 고아들 모두가 그렇게 믿었다니까요.”

전쟁고아 이상열에게 또 한 번 가족과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어느 날 누나 도화가 그를 한쪽으로 불러냈다. 들고 있던 신문지 꾸러미를 풀자 털장갑과 목도리가 나왔다.

-구호물자로 나온 쉐타를 풀어서 뜬 거야. 자, 목도리는 이렇게 두르고…어디 장갑도 끼어봐.

-와, 정말 따뜻하다. 이거 누나가 직접 뜨개질을 한 거라고? 야, 이런 걸 다 만들 수 있다니 누나 정말 대단하다.

-이제 곧 겨울이 오잖아. 여기 고아원은 유달리 추워서….

-히히히, 겨울 빨리 왔으면 좋겠다.

상열은 좋아서 팔짝 뛰었는데, 도화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 맺혔다.

-잘 들어. 누나는 내일 서울로 떠날 거야.

-뭐, 서울로 간다고? 왜, 왜 가는데?

-우리 고아원 후원해 주시는 집에 식모살이 하러 가기로 했어. 그러니까….

-누나가 서울로 가면…그럼, 나는?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너도 서울로 꼭 데리고 갈 거야.

“누나와 헤어지고 나서 일주일이 넘게 울기만 했던 것 같아요. 날마다 훌쩍거리니까 선배들이 운다고 자꾸 때려요. 슬퍼서도 울고, 얻어맞아 아파서도 울고….”

이제 이상열은 그 고아원에 완벽하게 혼자 남은, 명실공히 고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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