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농촌마을 살리기의 시작 - 각 세대별 마을 공간 만들기

  • 입력 2021.06.20 18:00
  • 기자명 차재숙(충북 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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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재숙(충북 영동)
차재숙(충북 영동)

몇 년 전 옆 마을에 7살짜리 어린 딸을 데리고 예경이 아빠가 귀촌을 했다. 처음엔 직업은 없었지만 그렇게 아픈 환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병이 깊어져 걷는 것조차 힘든지 지팡이를 짚고 다니기 시작했다. 밝은 표정으로 씩씩하던 예경이도 점점 표정이 어두워졌다. 작년엔 코로나 때문인지 학교도 잘 가지 않았다. 얼마나 아픈지 자세히 아는 사람도 없고 사람들과 관계가 없다 보니 늘 갈등이 생겼고 점점 섬처럼 고립되어 살고 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예경이가 걱정은 됐지만 마을 사람들도 관계를 하지 않으니 나도 방관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예경이아빠와 예경이를 보면 자꾸 옛날 생각이 난다.

30년 전 남편을 따라 일가친척 하나도 없는 영동으로 들어 왔을 때 나는 앞이 깜깜했다. 그때 남편은 열정이 넘쳤지만 도시사람인 나는 마치 딴 세상에 온 것처럼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다.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농촌을 들어왔다고 수군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감싸주고 안쓰러워하며 마을 사람들은 작은 것도 친절하게 하나하나 가르쳐 주었다.

남편은 밤으로 청년들이 모이는 사랑방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농사일을 배웠고 나는 빨래터에서 수다를 떨며 마을 사정과 농촌살이를 배웠다. 그때는 맨주먹에 가난했지만 사람들과 함께 웃고 떠들던 공간 속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안도감에 힘든 농촌생활을 견딜 수 있었다.

그때도 예경이아빠처럼 병들어서 노모와 아이를 데리고 마을에 들어 온 바싹 마른 아저씨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친하지는 않았지만 일을 못하는 아저씨네 끼니를 걱정하며 매번 먹을 반찬이며 음식을 나눠 주었다. 그때는 마을공동체가 살아있어서 마을에 어려운 사람을 함께 돌봤다. 그런데 지금은 공동체가 붕괴돼서 돌보기보단 경계의 대상이다. 너무 안타깝다.

마을공동체가 붕괴되니 서로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조차 없다.

몇 년 전부터 도시나 농촌에서 진행되고 있는 마을공동체살리기 사업은 프로그램 중심의 공모방식으로 서로 경쟁을 시키고 그에 따른 결과도 마을 사람들이 책임을 지라고 한다. 또한 몇몇 자발적인 사람들의 헌신만으로는 공동체살리기는 한계가 있다. 진정 마을공동체를 살리려면 사람들의 생활적 요구, 절박한 요구로부터 출발해야 하며 마을 사람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며 서로 관계를 맺고 일상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 공동체 공간을 마련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도 예전 마을공동체처럼 같은 세대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세대별 마을공간이다.

세대별 마을공간은 주민들이 만들기에는 너무 크고 힘든 일이다. 마을마다 경로당이 지어지고 운영되듯이 법과 제도, 그리고 행정이 모두 바뀌고 새롭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대별 마을공간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인 것이다.

도시든 농촌마을이든 공동체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은 국민들의 절절한 요구이며 권리다. 특히 늘 독박육아로 힘들어하는 아기엄마들을 위한 놀이방은 우선 만들어져야 한다. 출산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육아 단계에 맞는 마을 유아놀이방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육아 정보도 나누고 마을 사람들과 협력하여 공동육아도 할 수 있고 엄마들의 쉼터이자 교육장이 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그 다음은 마을 아이들이 미세먼지가 심해도 안심하게 놀 수 있는 실내외 놀이터 공간이 생긴다면 놀 공간이 없어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큰 기쁨이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청소년들이 쉬면서 문화도 배우고 공연도 하며 놀이와 학습을 병행하는 배움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네 번째는 청장년층이 힘든 일을 서로 공유하고 새로운 배움을 교육하고 마을일을 논의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청장년 사랑방이 생긴다면 마을이 활력이 넘칠 것이다.

이웃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공유하고 마을일을 계획할 수 있는 아줌마 수다방은 마을에서는 가장 중요한 공간이 될 것이다. 누구보다도 배려와 돌봄이 있는 아줌마들이 마을일을 함께 의논하고 행동한다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마을주민은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100세 시대에 맞춰 연령별 맞춤으로 확대하고 건강과 문화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경로당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마을 세대별 공간을 만들어 함께 노는 놀이문화도 살리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과 아기들도 함께 돌보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밤하늘의 별도 함께 보며 공동체가 살아 있는 마을에서 사는 것이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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