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③] 자세히 오래 머물면 보이는 작은 장, 인월 오일장

  • 입력 2021.06.20 18:00
  • 수정 2022.01.14 10:22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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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월장의 전경.
인월장의 전경.

 

남원의 황산벌까지 올라온 왜구와의 밤 싸움, 기도를 통해 달을 끌어올려 이겼다는 이성계 장군의 이야기에서 유래한 지명이 인월(引月)인 곳에 매 3일, 8일이면 장이 선다. 내가 사는 뱀사골에서 차를 타고 정확하게 1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그곳이 어느 곳이든 세상의 모든 오일장들엔 아무리 일찍 서둘러 가도 늦기 마련이다. 부지런하신 어르신들을 이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멀리서 오는 사람들도 이기기는 힘들다. 서울서 출발한 사진작가님이 가장 먼저 오신 장에 가장 늦게 도착한 사람인 내가 하는 변명이 참으로 구구하다. 내가 늦는 사이 작은 시장을 이미 다 둘러보신 분들이 너무 작은 장이라 볼거리, 살거리가 별로 없음에 안타까워하셨다. 한 달에 한두 번은 다녀가기를 오래 했으니 정말이지 손바닥만한 장터 구석구석을 모르는 곳이 없는 터라 그분들의 우려를 모르지 않는다. 그래도 다시 한 번 천천히 돌아보기로 한다.

최신의 전기차 충전소가 설치된 주차장에서 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엔 그 어느 곳에서 파는 것보다 맛있고 품질 좋은 옥수수빵이 있다. 옥수수빵만이 아니라 찹쌀도넛과 꽈배기 등도 제법 맛나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중국에서 들어와 20년째 만들어 팔고 계신다니 그 세월이 만들어 낸 맛에 존경심마저 생기는 빵이다. 빵을 뜯어 입에 물고 안으로 들어가면 오늘 저녁엔 뭘 해 먹어야 좋을지 머릿속이 바빠진다.

 

 

인월장에 햇마늘을 팔러 나온 할머니가 손님에게 건넬 마늘을 담고 있다.
인월장에 햇마늘을 팔러 나온 할머니가 손님에게 건넬 마늘을 담고 있다.
매실을 팔러 나온 사람들.
매실을 팔러 나온 사람들.

 

여기저기 푸른 매실이 보이고 머윗대도 보인다. 그러나 가장 많이 나온 건 마늘이다. 머윗대를 팔러나오신 아주머니는 자신의 머윗대를 팔랴 이웃의 마늘을 같이 팔랴 여간 바쁘신 것이 아니다. 지나가는 우리를 붙잡고 머윗대 사라는 성화가 대단하여 발길이 쉬 떨어지지 않아 두 단을 사고야 말았다. 허리 굽은 할머니가 가지고 나오신 햇마늘도 한 접 사고 마늘을 팔지 않을 때 앉으시는 의자 사진도 한 장 찍는다.

작은 장이지만 꽃을 파는 곳도 있다. 전문적으로 꽃을 파는 곳은 아니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웃지 않을 수 없는 물건도 있다. 전문 꽃집도 아니고 모종을 팔러 나오신 분의 물건 중에 ‘예쁜 꽃 1,000원’이라 쓰인 것을 보고 웃는다. 이름을 알려드렸지만 아마 다음 장에도 이름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괜찮다. 사피니아도 금잔화도 그저 예쁜 꽃이니 그러면 된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초등학교 아이들이 단체로 장 구경을 나온 꽃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1,000원에 팔리는 '예쁜 꽃'
1,000원에 팔리는 '예쁜 꽃'

 

70년대에나 봤음직한 물건들을 파는 가게도 있다. 손톱깍기, 좀약, 참빗, 색색의 매니큐어와 립글로즈를 파는 곳에서 잠시 머물다 민물생선들을 2kg 사서 귀가를 서두른다. 대개의 오일장들은 사통팔달의 구조라 사방에서 진입할 수 있다. 인월장도 예외는 아니지만 크게 세 곳의 집입로가 있는데 그중 한 곳은 버스정류장과 연결된다. 장을 보러 나오셨던 분들이 산내, 아영, 운봉 등으로 돌아가려 버스를 기다리는 곳이다. 나도 귀가를 서두른다. 작지만 찬찬히 돌아보니 볼 것도 정말 많고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삶도 보였다.

 

장을 보고 돌아가는 주민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

 

 

천렵국이 담긴 한 상.
천렵국이 담긴 한 상.

귀가 중에 점심은 밖에서 해결하기로 한다. 인월장은 순대국집과 보리밥집을 품고 있지만 오늘은 장에서 살짝 벗어나 두꺼비집에 들러 어탕국수를 먹는다. 저녁으로 해먹을 천렵국의 예습 같은 느낌으로.

내가 끓이는 천렵국은 모래무지와 쏘가리, 꺽지, 피라미, 메기를 씻어 삶아 살만 발라내고 뼈는 다시 한 번 푹 고아 끓이는 국이다. 뼈가 고아지는 동안 작은 민물생선들의 살을 바르고 채소를 준비한다. 된장과 고추장, 고춧가루 등으로 밑간을 한 이 음식은 바다와 접하지 못했지만 큰 개울이나 강이 있는 곳에서 여름에 즐기는 음식이다. 매운 고추도 듬뿍 썰어 넣고 얼큰하게 끓여 밥을 만다. 소면이나 수제비 반죽을 추가해도 좋은 음식이나 낮에는 국수를 먹었으니 밥이라야 한다. 천렵국으로 땀을 흠뻑 흘리고 나니 오락가락 비오며 더운 날들에 몸도 개운하니 바다생선 아니라도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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