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보쌈해서라도…”

최악의 인력난 속 마늘 수확 나선 농민들, 인건비 상승에 속수무책

  • 입력 2021.06.13 18:00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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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은 많고 사람은 없다. 지난 7일 경남 의령군 부림면 여배리 들녘에서 농민들과 외국인노동자들이 마늘을 수확해 빨간 망에 담고 있다. 이들이 지나온 자리마다 빨간 망이 줄지어 서 있다.
할 일은 많고 사람은 없다. 지난 7일 경남 의령군 부림면 여배리 들녘에서 농민들과 외국인노동자들이 마늘을 수확해 빨간 망에 담고 있다. 이들이 지나온 자리마다 빨간 망이 줄지어 서 있다.
각 고랑마다 농민들과 외국인노동자 10여 명이 앉아 마늘을 수확하고 있다.
각 고랑마다 농민들과 외국인노동자 10여 명이 앉아 마늘을 수확하고 있다.
연로한 한 농민이 일방석에 앉아 마늘 줄기에서 마늘을 잘라내고 있다.
연로한 한 농민이 일방석에 앉아 마늘 줄기에서 마늘을 잘라내고 있다.
지난 7일 경북 고령군 쌍림면 송림리 들녘에서 여성농민들이 마늘을 수확하고 있다.
지난 7일 경북 고령군 쌍림면 송림리 들녘에서 여성농민들이 마늘을 수확하고 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마늘 수확에 나선 농가 섭외를 위해 이태문 마늘의무자조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에게 연락을 취한 뒤 답변을 기다렸다. 잠시 후 이 사무국장은 문자로 주소와 함께 당부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요즘 일손이 너무 귀해 많이들 바쁩니다. 온 듯 안 온 듯 사진 찍고…” 단, 두 문장이 주는 행간의 의미를 곱씹으며 경남 의령군으로 향했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나들며 초여름 무더위가 찾아온 지난 7일 부림면 여배리 들녘 곳곳에선 마늘 수확이 한창이었다. 이제 막 수확을 시작한 들녘엔 2~3일 전에 캐내 말려놓은 마늘이 수두룩하게 놓여 있었고 수확이 얼추 끝난 논엔 마늘이 담겨 있는 빨간 망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한창 수확이 진행되는 곳에선 각 고랑마다 농민들과 외국인노동자들이 줄지어 앉아 마늘을 잘라 바구니에 담았다. 그러면 농민 두세 명이 각 고랑을 옮겨 다니며 바구니에 수북이 쌓인 마늘을 빨간 망에 가득 담아 단단히 매듭지었다.

강창한(52)씨도 이날 가족들과 외국인노동자 등 약 10여 명과 함께 마늘 수확에 나섰다. 예정대로라면 지난달 말께 수확을 마쳐야 했으나 수확을 앞두고 하루걸러 오는 비에 차일피일 수확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마늘을 캐내 크기별로 선별해서 시장에 출하할 때까지 적당한 건조시간이 꼭 필요한 마늘 특성상 적기에 수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게다가 수확이 하루하루 늦어질수록 마늘 품질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런 사정은 인근의 다른 농가들도 마찬가지여서 수확을 앞둔 농민들로선 제때 일손 구하기가 최대 과제였다. 일손이 없다는 말은 곧 인건비 상승과 동의어였다. 작년만 해도 10~12만원 정도였던 인건비는 15~17만원까지 대폭 올랐다. 부르는 게 값이라도 일손만 구할 수 있다면 감지덕지라는 말까지 돌았다.

이날 마늘 수확에 나선 강씨도 베트남 외국인노동자 10여 명을 고용하며 수확 시기 인건비에만 1,000만원 넘게 쓰고 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인건비 상승은 생산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 생산비를 상쇄시키려면 난지형 스페인산 대서종 마늘은 kg당 5,000원은 나와야 적자는 면할 것 같다며 과도한 인건비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다른 지역은 사정이 좀 나을까. 같은 날 경북 고령에서 만난 안은주(50)씨는 “오죽하면 지나가는 어른들 보쌈해서라도 일을 부탁하고 싶어요. 정말이지 일손이 없어서 일을 못해요. 뿌리가 다 썩고 있는데… 올핸 막 죽겠다”고 하소연했다. 쌍림면 송림리에 위치한 안씨 밭 1,000여평에선 억지 사정해서 모셔온 동네 언니들 4명만이 마늘을 캐내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최소 7~8명이 함께 덤벼들어 할 일이었다.

검은 망에 담긴 20kg 상당의 마늘을 트럭에 상·하차하며 건조장으로 옮길 남성은 남편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안씨는 “창녕 쪽에서 (인건비로) 15~16만원 준다카니 이쪽으론 아예 안 올라카는데…”라며 지역적으로 인건비가 평준화되지 않으면 농번기 인력 쏠림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최고 품질일 때 농산물을 수확해 좋은 값을 받고자 했던 농민들의 바람과는 달리 수확기에 내린 잦은 비로 늦춰진 작업에 최악의 인력난까지 겹쳐 마늘 수확 현장은 말 그대로 아우성이었다. “요즘 일손이 너무 귀해 많이들 바쁩니다. 온 듯 안 온 듯 사진 찍고…”라고 보내온 메시지 속 행간엔 이렇다 할 농촌 일손 대책 없이 인력난 속에서 각자도생하듯 분투 중인 농민들의 고달픈 하루하루가 생채기처럼 담겨 있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인력난이 올해 꾸준히 반복되고 있는데도 정책 당국의 역할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부는 과연 “오죽하면 보쌈해서라도”라고 하소연하는 농촌 현실을 제대로 보고 듣고 판단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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