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전쟁고아④ 고아원 건너편에 ‘애총산’이 있었다

  • 입력 2021.06.13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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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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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고아 수용을 위해 용주사 경내에 세워진 ‘자혜원’의 원생 대다수는, 전쟁이 끝나고도 한 세월이 지날 때까지 여전히 부모를 만나지 못 했다. 따라서 원생들의 신원이 공중에 붕 떠 있는 상태였으므로, 고아원 측에서 ‘호적 만들어 주기’ 작업을 진행했다. 성씨를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고아원 원장의 성을 부여했고, 생일을 기억하지 못 한 원아들에겐 급한 대로 3.1절이나 광복절, 혹은 개천절 등의 국경일을 생일로 삼았다. 물론 그들 모두의 호적엔 고아원이 위치해 있던 용주사의 주소가 본적지이자 현주소로 기재되었다. 하지만 기껏 서너 살 나이에 누나와 함께 자혜원에 들어갔던 이상열 씨의 경우는 좀 특별했다.

“나중에 철이 좀 들어서 확인을 해보니까요, 내가 1950년 8월 15일에 태어난 것으로 호적에 올라있는 거예요. 전쟁 터지던 해에 누나를 따라서 광나루의 양로원에 내 발로 걸어 들어갔는데, 그 해에 태어났다는 게 말이 돼요? 아마도 이름은 ‘상열’이 맞을 거예요. 누나가 상열아, 상열아, 하고 불렀으니까요. 그런데 성씨가 왜 이 씨로 됐는지는 모르지요. 그리고 누나의 이름이 최도화라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았어요. 그 전까진 그저 ‘누나’라고만 불렀지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왜 성이 다를까요? 우리는 애당초 동복남매이되 아버지가 각기 다른가? 아니면 아이 하나씩을 거느린 홀아비와 홀어미가 나중에 재혼을 했나? 누나는 알 것 같아서 아무리 캐물어도 자기도 모른다는 거예요. 지금(2002년)까지도요.”

어느 날 원아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초기부터 용주사에 수용된 전쟁고아들을 돌봐왔던 할아버지 원장(윤호순)이 이제 그만 물러나겠다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런데 후임원장은 바로 그 할아버지 원장의 딸이었다.

“나라 전체가 전쟁으로 피폐해서 고아원에 대한 정부 지원이 미미했기 때문에, 외부의 지원을 끌어들여서 원생들의 의식주를 해결해야만 했어요. 그런데 전쟁고아들을 지원하는 곳들이 대부분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기독교 선교단체들이었거든요. 그러니 사찰 경내에 터를 잡고 있는 자혜원은 여러 모로 불리하다고 느꼈겠지요. 그래서 불교신자인 원장 할아버지는 스스로 2선으로 후퇴하고, 크리스천인 딸을 데려다가 원장으로 내세운 거예요.”

원장이 바뀌자마자 즉각 달라진 것이 있었다. 식사예법이었다.

-자, 식사하기 전에,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려요. 주기도문을 함께 낭송합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가장 고대하는 시간이 식사 시간이었는데, 밥 먹기 전에 꼭 외워야 하는 주기도문이 한없이 길게만 느껴지더라고 이상열 씨는 회고한다.

고아원 원생들을 가장 침울하게 만든 때는, 함께 지내던 원생이 세상을 뜨는 경우였다.

-얘, 상열아, 너 그 소식 들었어? 어젯밤에 태호가 죽었대.

-아, 우리 옆방에서 자는, 맨날 기침 콜록거리던 그 형 말이야? 왜 죽었는데?

-기침이 좀씩 쉬었다 나와야 하는데 계속계속 나오니까 숨이 막혀서 죽었겠지 뭐.

-그러면 태호도 애총산에 갖다 묻었어?

-응. 아침에 총무 선생님이 가마니로 둘둘 말아서, 지게에 지고 가서 길가에다 묻었대.

-하필 길가에다 묻었어? 그럼 무서워서 거기 어떻게 지나다니지?

용주사 우측에 있는 작은 동산을 언제부턴가 ‘애총산’이라고 불렀다. 마을이나 고아원의 ‘애’가 죽으면 그 곳에 묻었기 때문에, 무덤 ‘총(塚)’자를 뒤에 받쳐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부모님도 아직 못 만났는데 어느 날 나도 갑자기 저렇게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하니까 소름이 끼치면서 무섬증이 엄습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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