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절뚝거리는 내 다리와 식량자급률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 입력 2021.06.13 18:00
  • 기자명 정성숙(전남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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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숙(전남 진도)
정성숙(전남 진도)

씨 나락을 파종할 때 4가구 그러니까 8명이 품앗이를 한 지 20여년 된 것 같다. 볍씨를 파종기에 넣어서 비닐하우스에 재놓기까지 필요한 일꾼은 8명 정도다.

10년 전까지는 볍씨를 파종한 상자를 5장씩 들어서 비닐하우스 안에 쟀는데 지게차를 활용하면서부터 작업이 약간 더 수월해진 것 외에는 똑같은 과정을 해왔다.

50대 2명과 60대 6명인데 올해부터는 근골격계가 멀쩡한 사람이 없다. 품앗이 일꾼 중에 가장 짱짱하던 남성이 농사일이 바빠지는 4월에 어깨를 다쳤다. 밭두둑의 나무들을 베다가 넘어져 어깨인대가 끊어졌다. 농사철이라 차분하게 병원에 있을 수 없어 치료 도중에 농사일을 하게 되니 꿰맨 부위에 염증이 생겼단다. 낮에 일을 많이 하면 밤에는 통증이 더 심해져서 트럭을 몰고 들판을 쏘다닌다고. 40리터 상토를 파종기에 부어줘야 하는 사람이 가벼운 모판 상자를 한 손으로 파종기에 올리는 일을 해야 했다.

50대인 나는 재작년에 왼쪽 무릎 후방인대가 끊어져서 3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나락 타작을 시작한 날이었다. 타작한 나락을 창고에 날라두고 맨 나중에 콤바인을 싣다보면 깜깜한 시간이 된다. 어두운 시간에 콤바인을 트레일러에 올릴 때는 콤바인이 트레일러 중앙에 제대로 방향을 잡아가는지 옆에서 봐줘야 한다. 남편이 운전하는 기계만 쳐다보느라 내 몸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발이 농수로에 빠졌다. 넘어지면서 툭!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피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아서 단순한 타박상인 줄 알았다. 나락을 건조기에 넣으려고 트럭을 운전하고 창고까지 왔다. 그때부터 견디기 힘든 통증이 몰려왔다. 수술 이후에는 오른쪽 다리에 더 의존하게 되면서 균형이 맞지 않아서인지 오른쪽 무릎에 문제가 생겼다. 무릎 주변이 굳어 있어서 1cm 정도의 장애물에도 발이 걸려 넘어지기 일쑤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소염진통제는 심리적 위로나 해주는 정도다.

남편은 오른팔에 문제가 생겼다. 보리가 여물 시기에 알이 실하도록 칼슘 영양제를 하루 종일 뿌린 이후에 팔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일을 하지 않아야 회복된다고 했다. 농번기인데 20kg 비료 포대를 들지 못한다.

50대의 또 다른 여성은, 기운 쓰는 데 자신이 넘칠 때 아기를 업고 논에서 20kg 비료를 들고 뿌렸다. 지금은 상체가 뒤로 젖혀진 채 한 손으로는 옆구리를 받치고 걷는다. 그런 자세로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하다가 밤에는 똑바로 눕지 못하고 옆으로 누워서 자야 하고 자세 또한 바꿀 수 없어서 한 번 누우면 아침까지 못 일어난단다.

8명의 일꾼 모두가 농사일을 하다가 다치거나 골병으로 장애자가 됐다. 여성들은 쪼그리고 앉아서 풀 매는 일을 하다가 생긴 질환으로 무릎과 허리가 고장난다. 남성들은 무거운 것을 많이 들어서 어깨와 허리에 문제가 생긴다. 총량의 법칙처럼 노동량을 많이 채운 부위의 순서대로 탈이 나기 시작한 것 같다.

서너 해 전까지는 허리나 무릎을 수술한 사람은 비교적 가벼운 일을 하도록 배려를 했다. 그러나 모두가 장애자가 된 지금은 누구를 배려할 상황이 아니다. 일감을 교대하거나 바꿔가면서 하는 게 최선이다.

현재 농사꾼 중에 50~60대는 식량자급률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대이고 농사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들의 근골격계가 곪고 있다. 소염진통제를 끼니처럼 먹어야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절뚝거리며 걷는 내 다리가 우리나라 식량자급률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은 너무 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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