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버섯과 태양광

  • 입력 2021.06.13 18:00
  • 기자명 이희수(경북 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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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경북 봉화)
이희수(경북 봉화)

코로나 이후 오랫동안 고요하던 마을회관이 요즘 들어 시끌시끌하다. 농사일로 무척 분주한 시기이지만, 보름 넘게 점심때가 되면 마을회관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코로나와 농사일 때문에 얼굴 보기 힘들던 이웃들이 서로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고 날씨 걱정과 농사 걱정을 잠시 토로하고 나면 이야기는 늘 한곳으로 모아지고 주민들의 시선은 근심스럽게 마을 한복판의 농지로 향한다. 업자가 군청에 식물재배사를 짓겠다고 신청한 곳이다. 사업신청은 버섯재배사로 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주민들은 거의 없다.

다른 지역의 여러 사례를 볼 때, 규제 때문에 태양광 발전이 어려운 농지에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버섯재배사를 짓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요즘은 농가의 지붕에 소규모 태양광이 많이 설치되기도 하였고, 이전에 비해 태양광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줄어든 편이다. 하지만 대규모 태양광발전소 주변의 온도 상승이나 경관 훼손, 일조량 감소, 주변 땅값 하락 등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당연히 우리 동네의 인접 농가와 인접 농지의 소유자는 크게 반발했고, 태양광 목적의 버섯재배사 저지 마을 대책위가 꾸려졌다. 마을 곳곳에 태양광과 버섯재배사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리고, 주민들이 당번을 정해서 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갔다. 현수막을 걸고 군청에 나가 시위를 하는 일은 마을이 생기고 처음 있는 일이다. 농번기에 농사일만 하기에도 힘겨운데 시위까지 해야 하니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언제부터인지 태양광을 반대하는 현수막은 농촌의 흔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현재 대부분 시군도시계획조례는 건축물 지붕 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경우, 개발행위허가의 이격거리 기준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노지에 태양광을 설치할 경우 많은 규제가 따르지만 버섯재배사를 지어서 지붕 위에 태양광을 설치할 경우 이격거리 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 지역에도 버섯재배사 신청이 10여 건이나 접수되었지만, 마땅한 규제 방법이 없는 현실이다. 현행법상 농지에 버섯재배사를 짓는 것은 비닐하우스를 짓는 것만큼이나 쉽다.

그리고 태양광 사업자들이 편법으로 식물이나 곤충재배사를 운영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른 곳에 설치했을 때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버섯 등 식물재배사와 같은 건물을 준공하고 1년 후에 태양광 발전을 시작하면, 다른 노지태양광 발전시설보다 1.5배나 많은 전기판매 비용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이익을 애써 외면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일상화된 기후위기 속에서 더욱 소중하게 지켜져야 할 농지들이 이리저리 뜯기고 사라져가는 것은 분명 안타깝고 속상한 일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온실가스를 줄이고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하는 절박함도 모르지 않는다. 또한 모든 토지가 농사용으로만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으며, 농업이 다른 직업보다 특별히 신성한 직업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인간을 비롯한 거의 모든 생명체는 태양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태양에 절대적으로 의존해 살아가는 ‘태양의 후예’들인 것이다.

농부가 이제 막 모심기가 끝난 논의 어린 모들이 누렇게 익을 때까지 햇볕이 넉넉히 쏟아지길 고대하는 만큼이나 태양광 사업자도 풍부한 일조량으로 많은 전기를 수확하길 간절히 바랄 것이다. 햇볕과 햇빛을 이용해 인류의 양식을 생산하는 농업만큼이나 태양광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것도 소중한 일이다. 그러니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이익을 탐하는 업자의 이기심을 탓하기 이전에 법이 좀더 정교하게 다듬어질 수는 없는가? 법이 편법의 문을 활짝 열어 줄 때, 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는 행정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행정이 제삼자의 위치로 물러난 곳에 오늘도 애꿎은 농민들과 사업자가 태양의 이용권을 놓고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외나무다리 승부를 벌이고 있다. 태양의 이용법을 놓고 태양의 후예들 간에 벌이는 안타까운 다툼이 조속히 사라지도록 법의 재정비와 행정의 적극적 개입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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