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사람이 상주 먹거리를 찾으면 생기는 일

  • 입력 2021.06.11 11:00
  • 수정 2021.06.15 09:5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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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상주생각’ 매장에서 조합원들이 양파를 진열하던 중 웃고 있습니다. 진열도 생산자들이 직접 하는데, 같은 품목을 생산하는 생산자들이 여럿 있으면 서로 양보하고 조절해가며 공간을 쓴다고 합니다.
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상주생각’ 매장에서 조합원들이 양파를 진열하던 중 웃고 있습니다. 진열도 생산자들이 직접 하는데, 같은 품목을 생산하는 생산자들이 여럿 있으면 서로 양보하고 조절해가며 공간을 쓴다고 합니다.

 

먹거리 소비에 관심이 없는 소비자라고 해도 ‘푸드마일’이란 개념을 이제 한번쯤은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코로나19를 계기로 외식 소비가 줄어든 이후 ‘로컬푸드’ 등 유통단계가 축소된 먹거리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하는데요. 이와 같은 먹거리 시장의 확산은 소비자에게도 이롭지만, 농민들 특히 작은 규모의 농사를 짓는 농가의 지속가능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이번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생산자들이 스스로 결성한 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 그리고 그 직매장 ‘상주생각’의 사례를 통해 그 이유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로컬푸드와 소농은 찰떡궁합

매장을 여는 시간에 맞춰 늦지 않게 도착한 덕에 생산자들부터 여럿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만난 생산자는 귀농 7년 차의 배현주씨와 (성함 밝히길 한사코 꺼려하신) 그 남편 되시는 분입니다. 매장 뒷문과 연결된 사무실로 곧장 들어온 부부는 생산자들을 위해 마련된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로컬푸드의 진면목이 가장 잘 드러나는 지점이 바로 이 순간인데요, 관리용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출하할 품목과 수량을 고른 뒤 가격을 설정하면 바코드와 함께 ‘상추·1,000원·배현주’와 같은 식의 스티커가 프린터에서 줄줄이 찍혀 나오게 됩니다.

 

가격표를 만들기 위해 컴퓨터를 만지고 있는 배현주 생산자(왼쪽 위)와 산딸기 상자에 가격표를 부착하고 있는 김원학 생산자(오른쪽). 생산자들은 무엇이 얼마나 팔렸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관리체계를 통해 납품 일정을 짤 수 있습니다(왼쪽 아래).
가격표를 만들기 위해 컴퓨터를 만지고 있는 배현주 생산자(왼쪽 위)와 산딸기 상자에 가격표를 부착하고 있는 김원학 생산자(오른쪽). 생산자들은 무엇이 얼마나 팔렸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관리체계를 통해 납품 일정을 짤 수 있습니다(왼쪽 아래).

 

이곳의 창립선언문에도 쓰여 있듯 ‘생산자에게 가격결정권을 돌려줘 지속가능한 생산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정신은 로컬푸드를 실천하는 곳 어디서건 지키려 애쓰고 있는 신념이자, 이런 매장이 등장하게 된 이유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도매시장이나 산지수집상, 중소·대형마트 등 일반 유통경로를 통해 팔 땐 농민이 스스로 가격을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여기서만큼은 출하자가 가격을 정할 수 있습니다.

“가격은 어떻게 정하세요?”

“소비자가 비싸지 않다 생각하는 정도. 시장 나가보면 상인들이 파는 가격, 그거보다는 좀 더 비싸게 하지. 우리는 3,000평 밭에다 아주 여러 가지 물건을 내가 먹을 정도 양만 생산한다 생각하고 짓는데, 아무리 각각 적게 한다 해도 남긴 남거든. 매장이 상시로 열려 있으니까 시시때때로 나오는 걸 판매하기도 좋고, 보관의 문제도 해결되지. 공간도 부족하거니와 채소는 냉장 보관한다고 해도, 3일씩 지난 건 농사짓는 우리도 안 사고 싶은데.”

중간마진을 거의 고려할 필요가 없으니 시장 가격보다 싸게 내놓을 수 있고, 그야말로 생산자도 소비자도 좋은 모양새가 됩니다. 매장은 생산자들을 대신해 물건을 팔아주고 운영에 따른 적은 요율의 수수료를 받을 뿐 가격결정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이날 만난 생산자들 대부분은 가격 기준을 주변의 규모 있는 마트로 정한 뒤 그보다는 싸게 파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답했습니다. 생산자이자 조합의 감사인 배준우 씨는 전날 수확을 하다 벌레에 쏘이는 바람에 눈두덩이 퉁퉁 부은 채 저를 만나게 됐는데, 이곳 물건들이 ‘무제초제’를 원칙으로 하는 걸 생각하면 그 가격은 전반적으로 매우 저렴한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배씨 부부와 같이 적은 규모의 경작지에 다품종을 농사지어도 소득을 낼 수 있는 창구는 가끔 열리는 오일장 같은 곳이 아니고서야 이런 형태의 직매장이 거의 유일하다 하겠습니다. 물건 사러 오는 사람이 상인이 아닌 소비자가 되면, 구매하는 쪽이 찾는 물건도 배씨 부부의 농사처럼 다양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고령의 농민이나 귀농·귀촌인의 경우 이런 전통적 형태의 농사를 영위하는 경우가 많으니, 농가 인구를 유지한다는 측면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볼 수 있습니다.

 

 

김찬무 생산자는 ‘상주 물건을 상주에 낼 수 있어 좋았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상주생각에 방울토마토를 내는 유일한 조합원입니다.
김찬무 생산자는 ‘상주 물건을 상주에 낼 수 있어 좋았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상주생각에 방울토마토를 내는 유일한 조합원입니다.

 

‘구색’과의 힘겨운 싸움

자체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다 보니, 과제도 산적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으레 이런 매장에서 필수적인 ‘구색’인데요. 소비자가 요구하는 모든 품목을 지역 생산품만으로 조달하는 건 기존의 산업 구조를 생각하면 당장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협동조합에서 유일하게 방울토마토를 내는 김찬무 조합원의 사례만 봐도, 소위 ‘선택과 집중’이라 불리는 전략을 기초로 생산량과 매출액에만 집중하고 있는 우리 농업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습니다.

“방울토마토는 가을 이후부터 주수확기인데 그때가 되면 상주공판장에서는 소량이라고 아예 취급을 안 해줍니다. 감은 생감(떫은 감)과 곶감으로 두 번씩이나 경매를 하면서도 이건 아예 쳐다도 안 봐요. 그래서 상주 생산품이면서도 공판장은 어쩔 수 없이 점촌(문경시)으로 가지요.”

상주생각에서 방울토마토가 판매될 수 있었던 건 김씨의 선택과 의지가 없었다면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높은 초기투자비용 때문에 보통 대량생산을 전제로 하는 시설과수농업 특성상, 안정적인 판로가 있음에도 별도의 납품을 위해 매번 상주읍을 오가며 좋은 물건만 골라 소규모로 내는 건 여러모로 번거로운 일입니다. 거기다 이런 품목들은 지역의 정책적 지원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 생산자를 찾는 것 자체도 쉽지 않습니다.

“사실 불편한 건 없잖아 있어요. 공판장은 품위 따라 번호 매겨서 주면 알아서 사니까 편하잖아요. 상주생각에는 물건이 없다고 전화가 와도 최상품으로만 내야 하니 상황 따라 따는 날이 아니면 애로가 많고.”

7년 전 친구의 권유로 방울토마토 농사를 시작했다 우연찮게 로컬푸드를 접한 김씨는, ‘그래도 상주물건을 상주에 내고 싶다’는 생각 속에 이제 전체 생산량의 1/10 정도를 상주생각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김씨의 방울토마토는 어느새 매장의 효자품목이 됐는데, 고마운 마음에 지난달 29일부터는 수확이 종료될 때까지 750g 한팩의 가격을 5,000원에서 4,000원으로 깎아 공급하겠다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양배추와 같이 현재 생산자가 없는 품목 가운데 중요도가 높은 것은 인근 시·군에서 유기농 생산물을 직접 구해야 하는데, 수시로 이를 관리하는 조병준 사무국장의 노고가 깃들어있습니다.
양배추와 같이 현재 생산자가 없는 품목 가운데 중요도가 높은 것은 인근 시·군에서 유기농 생산물을 직접 구해야 하는데, 수시로 이를 관리하는 조병준 사무국장의 노고가 깃들어있습니다.

 

뜻있는 조합원들 덕에 수많은 품목을 구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모양을 갖추는 데는 여전히 애를 먹고 있습니다. 풍부한 물건은 풍부하지만 없는 물건은 또 참 없는 게 현실인데 과일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채소류는 굉장한 고민거리가 될 법합니다. 이날도 양배추를 인근 시·군에서 들이기 위해 매장책임자인 조병준 사무국장이 물류와의 씨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상주에서는 한시적으로만 공급이 가능해 자주 매대에 올리기 어려운 채소입니다. 

이런 품목들을 채우려면 결국 매장납품을 최우선으로 하는 새 농사에 뛰어들 조합원이 있어야하는데, 초기 시설비 등에 지원이 없으면 소농 입장에서는 시작하기 어려운 일이기에 속도는 지지부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조합원 중에 양배추를 하시는 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야 생산 직전이에요. 지금은 시설 생산자가 없어서 인근의 친환경 농가 것을 택배로 받아요. 찾는 사람이 많아 어쩔 수가 없는데…. 지금 같이 인력이 없을 때는 정말 힘겨운 일이에요. 발주·관리·판매 전부 신경써야하고, 조합원들이 내는 것과 달리 팔지 못하면 또 고스란히 비용도 되고요. 그래서 조합 차원의 계획생산을 하려고 하는 품목이에요.”

'중소농 중심의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를 토대로 좋은 먹거리를 공급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태어난 협동조합인 이상, 이 힘겨운 싸움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습니다. 이렇게 조그만 협동조합이 감당하기에는 인력도 자본도 부족할 뿐더러 지역의 농업구조도 타파하기 어려울 만큼 고착돼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좋은 물건 있어서 계속 와요”

다행스럽게도 가치를 알아주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부분입니다. 주요 방문객은 집에서 필요한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장을 보러 오는 사람들인 만큼, 주변의 마트나 시장을 제쳐두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 역시 사무국이 파악하고 있는 매장의 단점을 아쉽게 여겼습니다.

아까의 ‘구색’과 관련한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집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는 고기와 함께 구울 양파나 마늘, 같이 곁들일 쌈이나 소스류 그리고 이 모든 걸 싸맬 상추·깻잎·양배추 등을 원할 것입니다. 이곳에 모든 것이 구비돼 있다면 정육점에 따로 들르는 수고만으로 장을 끝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찾을 수 없는 물건이 하나, 혹은 그 이상이라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곳을 찾길 망설일 공산이 큽니다. 자주 장을 보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두 번 세 번 차를 세우고 매장에 들어가 물건을 고르고 또 계산하는 게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주 기준 양배추 같은 희귀채소 외에도 수산물, 일부 임산물, 수입과일 등은 아예 들여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로컬푸드의 가치를 우선하며 그 단점과 한계를 포용하는 상주 시민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날 만난 소비자들은 ‘상주 물건’, ‘좋은 물건’을 ‘좋은 가격’에 팔기에 온다고 답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상주생각 매장을 둘러보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상주생각 매장을 둘러보고 있습니다.

 

“이게 다 상주 거라고 해서, 상주 사는 입장에서 와봤더니 물건이 정말 다 괜찮더라고요. 가격은 (시장보다는) 조금 비싸긴 하지.”

“농약 안쳤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가격은 꽤 괜찮다고 생각해요(이상 익명).”

“뭐 아무래도 여기 사시는 농민들이 지어서 믿는 부분도 있고요, 농약 안치는 제품이라고 들어서 자주 사요. 가격도 매우 저렴하고요. 특히 지금 비싼 쌀, 마트에서는 너무 비싸요. 아쉬운 점은…. 어쩔 때는 필요한 상품이 없어서 아쉬운 경우가 있네요. 예를 들면 생선? 바나나?(안정미 씨)”

이런 성원에 힘입어 지난 2018년 협동조합이 매장을 낸 뒤 2년하고도 4개월 만에 흑자 경영에 도달했다고 하네요. 2019년에 비해 지난해 방문객은 일평균 92명에서 160명 수준까지 늘었고 조합원도 250명을 넘어섰습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이곳이 더욱 돋보이는 부분은 정부나 농협의 주도로 로컬푸드 활성화가 이뤄진 여타 다른 시·군과 달리 생산자들이 스스로 결의해 조합을 결성하고 또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점입니다.

상주에서는 이곳의 성과가 어느 정도 드러난 이후에야 지방자치단체에서 조금씩 관심을 보이고 있는 실정인데,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로컬푸드 확산에 나선 소위 ‘1번지’들의 사례를 생각하면 굉장히 어려운 환경에서 도전한 셈이죠. 상주를 떠나면서 응원의 마음으로 제가 좋아하는 먹거리 몇 가지를 사기도 했는데, 생산자들이 지키고 있는 이 조그마한 불씨가 더욱 커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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