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도 농민들도 농어업회의소를 단체 취급하고 있다”

사례로 본 농어업회의소 효용성 … 현장선 ‘법제화 무용론’ 여전

  • 입력 2021.06.06 18: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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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문재인정부 출범 당시 대표 농정공약의 하나였던 농어업회의소 법제화가 우여곡절 끝에 올해 6월 정기국회 통과를 다시금 노린다. 임기 말에 이르기까지도 관련 법안이 본회의장 문턱조차 넘지 못했던 건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현장에서는 ‘농정분권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지금의 지역 현실 속에선,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고 해도 자율성 등 회의소의 핵심 성격을 구축할 수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회의소의 독립성·자율성 확보에 있어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요소는 결국 ‘돈’이다. 시범사업이 진행된 지 벌써 10년이 넘었으나 여전히 대부분의 농민들은 농어업회의소에 무관심한 상황이다. 이는 소수 ‘모범사례’에서도 농가 가입률이 20%를 겨우 웃도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때문에 농민 스스로 회의소를 운영할 수 없어 외부의 자금 수혈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는 ‘관변화’, ‘옥상옥’ 등의 우려를 부르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이다.

현재 21대 국회에 계류 중인 4개 농어업회의소법안은 모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농어업회의소의 규모를 막론하고 그 정착을 위해 경비를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범사업을 통해 구축된 대부분의 농어업회의소가 상근직 인건비 등 기초 운영비용 마련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들을 검토한 권영진 국회 농해수위 수석전문위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어업회의소가 정치적 중립 의무가 부여되는 비영리 법인이기에 운영비를 국가가 지원할 경우 독립성과 자율성이 저하될 우려가 있으므로 국고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 신설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농어업회의소가 모델로 삼고 있는 상공회의소 역시 관련법(상공회의소법)이 운영경비 지급 근거 규정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국비 지급 근거는 마련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 대신 초기 정착과 안정적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지원 규정을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이처럼 국가가 재원을 책임지지 않는 경우 이를 대신할 주체로는 지자체가 꼽힌다. 농어업회의소 시범사업을 제안한 한 컨설팅 업체의 설계를 따라, 현재 국고 지원 없이 운영되고 있는 회의소들은 이미 대부분 지자체의 예산으로 사업을 집행하고, 농협이 내는 회비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이미 자율성 확보 측면에서 수많은 실패 사례를 낳고 있다.

전북 진안의 경우 시범사업 초기 가장 먼저 농어업회의소를 설립한 지역 중 하나였으나, 순항 도중 신임 지자체장과 회의소 간에 마찰이 생기면서 예산 지급이 정지, 활동을 중단한 지 벌써 5년이 됐다. 이런 경우 농어업회의소가 농업 예산의 집행권한이 있는 지자체를 상대할 수 있는 여지는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회의소에는 각종 보조사업의 혜택을 누리는 농민단체들이 주요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데, 이들이 지자체장의 심기를 거스를 경우 발생할 불이익을 두려워해 동등한 관계에 서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결국 협치가 아닌, ‘밀고 당기기’를 하는 회의소가 열린 지역에서는 기존의 농민단체협의체와 그 역할이 뭐가 다르냐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예산군농어업회의소 준비위원회에 참여하고, 회의소 출범 후 임원까지 맡았다 자진사퇴했다는 박형 전 예산군농민회장은 “관의 지원을 받는다는 건 길들이기에 응한다는 뜻과 같다. 지원받는 만큼 해줘야 하는 게 생길 수밖에 없다”라며 “그러나 농어업회의소는 그와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는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행태가 벌어지는 게 문제다. 지자체도 농민들도 ‘기구’와 ‘단체’를 동일시하고 있으니 변화가 없었고, 바꿔보고 싶었으나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라고 돌아봤다.

농협의 참여가 분란을 만든 대표적인 예로는 지난 2019년 경기도 최초로 출범을 추진했던 화성시농어업회의소가 있다. 당시 이곳 창립준비위원회는 1년 수입 1억6,000만원 가운데 화성시가 부담하는 9,0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7,000만원을 회비수입으로 책정했다. 그 가운데 65%에 달하는 4,600만원이 농협중앙회 화성시지부 등 관내 협동조합 조직 16곳이 특별회원 회비 명목으로 낼 돈이었다.

이들이 대의원 수의 20%와 이사진의 1/3을 차지한다는 정관안은 창립총회 당일에야 공개됐다. 심지어 이 안에는 회의소 회장·감사·이사 등 주요 임원을 전체 회원이 직접 선출한다는 상식적인 내용 대신 총회의 결의에 의해 ‘임면’한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임면된 임원은 연임이 가능했고, 특별회원의 경우 사실상 소속 협동조합에서의 임기와 연동되도록 해뒀다. 결국 정관안을 마주한 다수 농민의 항의가 빗발쳐, 회의소는 창립총회를 제대로 치르지도 못한 채 오늘날까지도 출범이 미뤄지고 있다.

충남 모 지역에서 농어업회의소에 참가했다 탈퇴한 한 지역 농민단체 관계자는 “우리 지역도 16개 농협 조합장을 다 불러 300만원씩 내는 구조로 시작했다. 농협에서 돈을 안 내면 회의소 상근직 인건비조차 유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회의소 운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돈을 안 내겠다고 협박해도 이상할 게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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