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꿈 농사

  • 입력 2021.06.06 18:00
  • 기자명 최요왕(경기 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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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왕(경기 양평)
최요왕(경기 양평)

농사를 하면서 자주 꾸는 꿈이 생겼다. 기존 농사짓는 땅 말고 새로운 땅을 얻어 농사 하는 꿈이다. 두물머리 안쪽 땅에는 하우스 네 동 쯤에 브로콜리를 심었던 것 같다. 그리고 즙용 케일을 심었던 동네 후미진 비탈밭. 원래 내가 했는데 내게 말도 없이 딴 사람에게 줘버렸는데도 말도 못하고 속상해하던 밭. 심지어 하늘에 띄워둔 밭까지. 밭이 바뀌며 꿈에 계속 나오니 마음이 편치가 않다.

내 욕심이 많아서인가. 지금 농사도 많아서 허덕이면서 땅을 더 구하는 꿈을 꾸다니 욕심 아닌가. 그래 욕심은 욕심이다. 안정된 땅을 구하고 싶은 욕심이다. 아직도 서투르기만 한 농사, 땅이라도 옮기지 않아도 될 안정된 데서 지으면 좋겠다는 욕심이다.

지금 농사짓는 땅 절반은 내 농지요 절반은 서울 사람 땅을 빌린 거다. 서울 사람 땅은 몇 년간은 더 할 수 있어 보이나 언제 그만두라 할지 그건 모를 일이다. 1,000평 내 농지도 끝이 보인다. 100% 빚으로 구한 땅이다. 1년 이자만 1,000만원에 3년 뒤 원금 상환을 시작하게 되면 연 5,000만원씩 갚아야 된다. 농업소득으로 땅값을 꺼나갈 수 없다. 서울 중심 동심원으로 땅값이 높은 건 누구나 아는 현실인데 그 동심원은 점점 커지고 그만큼 농업은 나라의 중심에서 멀리 멀리 밀려나는 중이다. 내가 그 동심원 가운데 자리를 잡은 연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거기에 더해 서울을 떠나 전 국토에서 새로운 동심원이 부동산 광풍으로 마구 그려지고 있고 그려지는 그대로 농업은 밀려나고 있다. 땅값과 농업의 안정성은 반비례하는 것이거늘.

2004년 귀농 당시 첫 농지는 하천부지였다. 국가 땅이다. 다른 짓은 못하고 농사만 할 수 있는 땅이었으니 농업소득으로도 별 문제 없는 임대료를 지불하면서 농사를 시작했었다. 국가의 그늘 아래서 농사를 하게 되니 농사에 대한 마음 말고는 가진 것 없는 나같은 놈에게도 진입 장벽이 수월했고 그 마음만 없어지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농사를 하리라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뒤통수는 국가에게, 정확히는 이명박정부에게 얻어맞았다. 4대강 사업 때문에 농지를 뺏긴 건지 반납한 건지 농지를 잃었다.

뭐 이러저러한 개발사업으로 그러한 경우를 당한 농민들이 한둘이겠는가.

개인적으로 농지가 농지로서 온전히 유지되어 안정적 식량 생산기반으로 기능하려면 사적인 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관리로는 취약한 요인들이 많으니 공적 소유, 공적 관리를 기반으로 하는 최소한의 농지가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해 왔고 하천부지가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다 생각해 왔는데 그 생각이 산산이 부서지는 계기가 돼버린 사건이었다. 아니, 아니다. 국가의 제대로 된 농지 관리 정책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더 필사적으로 생기게 되었다. 일개 정치집단이 애들 장난하듯 쥐락펴락하지 못하도록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법을 만들고 제도를 다듬어 세세대대로 지속가능하게 이어질 정책 말이다.

결론? 농업계에서는 농지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지만 그건 우리들만의 리그였다. 비농업인들에게 농지는 좋게 말해 투자, 솔직히 말해 투기의 대상일 뿐이다.

중요한 건 농지 정책이 계속 어영부영하다 농업 생산기반이 망가지면 일차로는 농민들이 망가지지만 종래에는 비농업인들도 뭣 되기는 시간차일 뿐이라는 거다. 그들에게 그 사실을 구호 차원으로 알리는 것 이상으로 각인시켰으면 하는 게 개인적이 바람이다.

농업계에서 그동안 해왔던 정책 제안은 관료들, 정치인들에게 그런 척 시늉만 하지 씨알도 안 먹히고 농민대회, 항의 집회 등은 비농업인들에게, 유권자의 대부분인 일반 국민들에게 식상하다. 다른 궁리를 해야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갈수록 깊어진다. 유권자의 대다수인 비농업인들을 설득하거나 교육하거나 협박해서라도 표로서 머릿수로서 정책을 바꾸고 바로 세울 궁리가, 숫자는 광속으로 줄어들고 늙어가고 오래된 관성을 제어키도 어려운 농업계가 고민해야 될 방향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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