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벌꿀이 없다 … 굶주리는 벌부터 살리자

강원 철원지역 채밀현장 가보니 아까시 꿀 수확량 평년대비 절반도 안 돼
잦은 비·차가운 북풍·고령화된 아까시나무 등이 원인 “사료부터 지원해야”

  • 입력 2021.05.30 18:00
  • 기자명 홍기원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양봉농민들이 2년 연속 벌꿀 흉작에 애가 타들어가고 있다. 양봉농민들의 1년 농사는 국내 생산되는 꿀의 70%를 점유한 아까시나무 꽃이 피는 4월에서 5월 사이에 결정된다. 올해 아까시 꿀 생산량은 평년대비 절반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양봉협회(회장 윤화현)와 함께 다녀온 강원도 철원지역 채밀현장은 수확의 기쁨보다 앞으로의 대책을 걱정하는 하소연이 더 많았다. 양봉농민들은 벌이 먹고살 꿀조차 부족하다며 꿀벌 사료 지원이 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만영 국립농업과학원 잠사양봉소재과장이 지난 24일 강원도 철원군의 한 이동 양봉농민의 벌통을 조사하고 있다.
이만영 국립농업과학원 잠사양봉소재과장이 지난 24일 강원도 철원군의 한 이동 양봉농민의 벌통을 조사하고 있다.

지난 24일 강원도 철원군 일대에선 올해 벌꿀 작황조사가 한창이었다. 한국양봉산업발전협의회는 매년 이 무렵에 전국의 이동 양봉농가를 중심으로 벌꿀 채밀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이날 작황조사에 참여한 조상우씨는 지난달 27일 경남 창원시에서부터 아까시나무 꽃을 따라 함안-합천-안동을 거쳐 철원까지 이동하며 아까시 꿀을 채밀했다. 낮에는 벌들이 꿀을 따고 밤에는 다른 꽃을 찾아 350여개의 벌통을 옮기는 생활을 한 달 가까이 했지만 소득이 없다고 한다. 조씨는 “비가 잦아 평년에 비해 채밀량이 30~40%밖에 안 된다. 이래선 생산비도 못 건진다”라며 “아까시철이 끝나면 피나무 등을 찾아 다시 이동하려 한다”고 말했다.

조씨의 벌통을 조사하는 이만영 국립농업과학원 잠사양봉소재과장의 얼굴도 밝지는 않았다. 이 과장은 “정확한 채밀현황은 다음달 초에 나오게 된다”면서도 “아까시나무들이 고령화됐고 양봉농가도 급격히 늘었다. 또, 최근 들어 기온이 낮아 벌의 활동성이 떨어져 꿀을 뜨지 못하는 것 같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홍순명 농업과학원 농업생물부장은 “지난해에도 채밀량이 적었는데 올해도 좋지 않다. 조사가 끝난 남부지역 채밀량은 평년 대비 30~50% 수준이었다”고 부연했다. 양봉협회 관계자는 “채밀량에 관한 정확한 통계조사는 아직 없다. 평년 채밀량은 대략 2만5,000여톤으로 추정하며 지난해는 8,000여톤에 그친 걸로 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같은날 철원군 철원읍에서 만난 황협주 전 양봉협회장의 벌통도 비어있긴 마찬가지였다. 황 전 회장은 “철원에 온 지 5일째인데 꿀을 딸 수 있는 바람이 아니다. 습기를 머금은 남서풍이 불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침으로 북풍이 불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러면서 “다른 지역 상황을 들어보면 잡화꿀도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벌꿀 흉작에 가장 힘든 건 당사자인 벌들이다. 비전문가인 기자의 눈으로는 알 수 없지만 현장에서 만난 양봉농민들은 “벌들이 꿀을 찾지 못해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벌통에서 좀체 나오질 않는다”고 전했다.

경기도 포천시에 위치한 꽃샘식품 공장에서 지난 24일 벌꿀을 용기에 담는 포장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경기도 포천시에 위치한 꽃샘식품 공장에서 지난 24일 벌꿀을 용기에 담는 포장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채밀량 급감은 양봉업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기도 포천시에 위치한 꽃샘식품(대표이사 이상갑)은 국내에서 수확한 벌꿀을 가장 많이 유통하는 회사다. 지난해엔 재고물량으로 판매를 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적잖은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이상갑 꽃샘 대표는 “벌꿀을 첨가한 가공품을 생산해야겠다 싶어 여러 국산차에 벌꿀을 첨가한 제품을 개발했다”면서 “양봉을 근간으로 50여년을 경영했는데 올해 생산량이 저조하다는 소식에 밥맛도 잃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위기를 맞은 양봉업을 지키려면 장기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이나 대체밀원 조성에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급한 불도 꺼야 한다.

양봉농민들은 보통 벌통 1개에 대략 5만마리의 벌을 채워 채밀에 나선다고 한다. 아까시 꿀이 끝물인 현재, 벌통에 있는 벌들은 3~4만마리로 줄어든 실정이다. 따온 꿀이 줄어들면서 벌도 줄어든 것이다.

이날 기자들과 함께 채밀현장을 답사한 윤화현 양봉협회장은 “유례없는 흉작인데도 양봉농민을 대상으로 한 보조나 지원이 없다”면서 “양봉산업육성법(양봉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흉년이 들었을 때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윤 회장은 “양봉농민들은 벌들이라도 살릴 수 있길 바란다”라며 “벌이 없어지면 생태계가 파괴되고 많은 농산물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부에서 벌을 살릴 수 있는 사료라도 지원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