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②]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구례 오일장

  • 입력 2021.05.23 18:00
  • 수정 2022.01.14 10:22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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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뱀사골 깊은 골짜기에 있는 우리집에서 구례장을 찾아가는 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계곡을 따라 내려와 면사무소를 지나고 고속도로를 달려 쉽게 찾아가는 길이 있고,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올라 성삼재를 넘어 구례와 만나는 길을 가는 방법이 있다. 오늘은 푸르른 봄산을 한껏 눈에 담고 싶어 운전이 좀 불편하기는 하지만 성삼재를 오르는 길을 선택해 출발했다. 브레이크 파열이 염려되는 산길을 벗어날 무렵 만나는 천은사를 막 지나면 초록의 물결이 넘실대는 밀밭들과 만난다. 6월이면 수확을 하는 시기니 5월의 밀이삭은 서리를 해 먹어도 좋을 만큼 제법 이삭이 실하다. 차를 세우고 밀밭으로 들어가고 싶은 유혹을 어렵게 뿌리치고 장터로 향한다.

구례의 가장 번잡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오일장은 바로 옆에 농협에서 운영하는 마트와 인접해 있지만 장터를 오가는 사람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나는 늘 마트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습관처럼 뒷문으로 빠져 장터로 간다. 뒷문을 나가면 중심에서 밀려난 어른들의 좌판과 바로 만난다. 올 때마다 그분들의 물건이 너무 좋아 바로 사야 할지 돌아오는 길에 사야 할지 고민에 빠지는 일이 허다하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어서 처음 만난 어른이 가지고 나오신 제피의 어린잎을 사서는 주차장으로 돌아가 차에 두고 다시 장으로 향한다.

 

제피잎을 팔던 시장 입구의 좌판.
제피잎을 팔던 시장 입구의 좌판.

 

지리산과 섬진강이 품고 있는 구례는 바다에 접해 있지는 않으나 가까이 순천과 여수의 바다 때문인지 판매하고 있는 해산물의 양이 꽤 많은 편이다. 여수, 순천도 그렇지만 구례의 수산물들은 통영이나 삼천포, 고성 등에서 바닷물이 흘러넘치게 담가놓고 파는 것과는 달리 대부분 얼음을 이용해 좌판에 늘어놓거나 고무통에 담아 팔고 있다.

 

구례오일장 속 어시장.
구례장에서 수산물을 판매하는 상인들.

 

대부분의 오일장들이 비슷한 구조지만 구례의 오일장은 해산물을 파는 구역, 산나물 등을 파는 구역, 화초들을 파는 구역, 곡물을 파는 구역 등등으로 나뉜다. 귀촌해 들어온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그 어떤 장들보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판매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지난 장에서는 만나지 못했지만 오늘 장에서는 티베트 사람의 외모와 흡사한 사람이 파는 인도식 짜이를 만나 한 잔 사서 마시기도 하고, 촌사람들이라는 상호를 가진 편집샵에 들러 이런저런 물건들을 구경하고 커피도 한 잔 사서 마셨다. 장터 안쪽으로는 팥죽과 팥칼국수를 파는 가게들이 있고 장터 입구에는 수구레국밥집이 오가는 사람들의 식욕을 자극한다.

 

'40년 전통'의 송순례할머니 뻥튀기집.
'40년 전통'의 송순례할머니 뻥튀기집.

 

40년 전통의 송순례할머니 뻥튀기집이 있는가 하면 그 바로 뒤에 이름 없는 뻥튀기집도 있다. 형평성을 생각해 앞집에서는 강냉이를 한 봉지 사고, 뒷집에서는 쌀튀밥을 한 봉지 산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주전부리를 한 탓에 배가 고프지는 않으나 시장 곳곳에서 만나지는 어르신들의 점심밥상을 보고는 식욕이 돌아 동아식당으로 향한다. 들러 먹고 가지 않으면 너무 섭섭할 동아식당의 가오리찜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장터로 향한다.

 

동아식당이 가오리찜.
'동아식당'의 가오리찜.

 

곡물집들을 둘러보고 돌팥 한 되를 샀다. 사실 사고 싶은 건 돌팥을 담아 팔고 있는 작은 됫박이었다. 그걸 사고 싶다고 하니 150년은 족히 넘은 것이라 팔지 않는다 하시니 더욱 간절하고 아쉽지만 포기해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수산물전에 들러 암꽃게 몇 마리를 샀다.

싱싱한 꽃게는 아무런 조리를 하지 않고 오로지 수증기 올려 10여분 찌기만 했다. 장터 입구에서 가장 먼저 구입한 제피잎의 일부는 고추장떡으로 부친다. 부치고 남은 제피잎은 반으로 나눠 부각으로 말리고 남은 반은 고추장장아찌를 만든다. 지리산의 대표 향신료 제피는 가을에 만나는 열매의 향과 맛도 매력적이지만 봄에 만나는 제피 잎의 풍미는 봄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하나도 없다. 제피잎의 매력에 한 번 빠지면 그가 누구든 제피잎을 구하러 미친 듯이 구례장을 헤매고 다닐 것이다.

 

제피잎으로 부친 고추장떡.
제피잎으로 만든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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