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전쟁고아①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 입력 2021.05.23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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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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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2002년 기준)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있다. 작은 키에 다부진 외모를 가졌고, 서울 말씨를 쓴다. 만일 이 사람이 무슨 일로 경찰서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는다고 치자.

-이름, 생년월일, 그리고 본적을 말해보세요.

-이름은 이상열이고, 1950년 8월 15일생, 본적은 경기도 화성군 태안면 송산리입니다.

-틀림없지요? 거짓말 하면 안 돼요.

이 사람이 경찰관에게 진술한 내용은 모두 사실이다. 하기야, 개개인의 신상기록이 행정 전산망으로 이미 빈틈없이 구축돼 있던 21세기 벽두에, 그런 기초적인 인적사항을 거짓으로 말했다가는 금세 들통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진술한 내용이 적어도 행정 전산망에 등재된 신상기록과는 일치하지만, 실상은 이름 두 글자를 빼놓고는 모두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무슨 얘기일까? 가령, 이 사람이 누군가를 처음 만나서 통성명을 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여기 명함….

-예, 반갑습니다. 어어? 성함이 이상열 씨네요. 제 이름은 이상민인데 혹시 경주 이(李)씨 상(相)자 돌림 아닙니까? 아버지가 우(雨)자 돌림이고 할아버지는 종(鍾)자…어디 이 씨지요?

혈연과 지연 따위를 따지지 말자고 하면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우선 본관부터 캐묻는 버릇이 있다. 이상열 씨는 이런 경우가 가장 곤혹스럽다.

-예…저는 뭐, 그냥…화성 이씨…

-경기도 화성 말입니까? 그런데 화성…이 씨도 있던가요? 하기야 이 씨가 워낙 많으니까. 그건 그렇고 형씨는 참 좋으시겠어요. 생일이 8월 15일이면, 가만있어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축하를 해 주니 말입니다, 허허허….

-그, 그렇지요, 허허.

이상열 씨도 마지못해 따라 웃기는 하지만, 이런 축하 인사도 결코 달갑지가 않다. 그가 태어난 해는 주민등록에 등재돼 있는 1950년이 아니고, 생일 또한 8월 15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상열 씨에게 혈육이라고는 달랑 손위 누이 한 사람이 있는데, 그 누나의 이름은 최도화다. 친남매지간임에도 불구하고 성씨가 서로 다른 형편이니, 이 씨와 최 씨 중 어느 것이 진짜 성인지, 혹은 둘 다 틀린 성씨인지 알 길이 없다. 이상열 씨의 신상에 얽힌 이 비극적인 혼란의 배경을 설명해 줄 아주 간단한 말이 있다. 전-쟁-고-아. 그렇다. 그는 한국전쟁이 낳은 고아였던 것이다.

2002년 가을, 이상열 씨와 함께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송산리를 찾았다. 그런데 그의 출생지로 등재돼 있는 지번(地番)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라는 유서 깊은 사찰이 터를 잡고 있다. 그렇다면 이상열 씨가 태어난 곳이 바로 그 절집이라는 얘기일까? 일단 그를 따라 사찰 경내로 들어갔다. 대웅전 앞에 당도하자 그가 회상에 잠긴다.

“대웅전 올라가기 전에 양옆을 보면 저쪽에 큰 방들이 늘어서 있지요? 저게 다 고아들이 수용됐던 방이에요.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면 나타나는 넓은 공간은 조계종의 강원(講院)인데, 그때는 고아들이 거기서 음악회도 하고 무용도 하고 그랬어요. 어쩌다 고아들을 후원하는 미국 사람들이 놀러오기라도 하면 우리는 거기로 불려가서, 그들 앞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면서 재롱을 떨기도 했고…하아, 어느새 50여년 저 편의 일이네요.”

그러니까 전쟁 통에 가족을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을 바로 그 사찰에다 집단으로 수용을 했고, 이상열 씨 역시 어린 누나와 함께 그 고아 수용소로 흘러 들어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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