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21] 숙명

  • 입력 2021.05.14 13:25
  • 수정 2021.05.14 13:28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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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농업과 농촌이 중요하고 유지돼야 한다고 평생 주장하며 서울에서 50여년을 살았으니 은퇴하면 미련 없이 서울을 떠나리라 마음 먹었고, 실제로 떠난 지 벌써 5년 반이 지나가고 있다.

작은 농사라도 지으며 책이라도 한두 권 쓰면서 조용하고 단순하게 인생 후반부를 마무리하리라 마음 먹었다. 동해 바다와 설악산으로 둘러쌓여 있는 이곳 양양·속초·고성지역은 고향이기도 하지만, 천혜의 아름다운 고장이니 인생 후반부를 이곳에서 맞는다는 것은 더없는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엔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농업·농촌·농민 문제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이 순간에도 놓지 못하고 있다. 평생 아는 것이 그것밖에 없기도 하고 눈에 보이는데 안 보이는 척 눈 감고 있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현역에서 떠난 사람이 걱정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걱정 수준에서 더이상 진도가 나가는 것도 아니다. 나만의 걱정과 고민으로 묻어두고 말아야 하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지역에서 또는 중앙에서 나 같은 사람에게 도움 요청이 적극적으로 오면,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것도 그런 혼자만의 고민과 걱정을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을까 해서라고 스스로 위로하곤 한다. 그것까지도 내려 놓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때로는 과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니 과욕인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기회를 주는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은퇴 후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간의 관심과 이목에서는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고, 잊혀져 가는 것이 순리기 때문이다.

모든 걸 내려놓고 낙향한 사람이니 더이상의 개인적인 욕심은 추호도 없다. 욕심이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의 농업·농촌이 잘 되는 일이라면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은 소박한 소망은 있다.

그래서인지 올해부터는 양양군의 신활력플러스 사업의 추진단장을 맡아 봉사하게 됐는데 지역발전에 미력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실 이 사업을 유치하는데까지만 도움을 드리면 되리라 마음먹었으나, 또 어쩔 수 없이 추진단장의 역할까지 맡게 됐다.

내려놓고 조용히 살겠다는 다짐과는 달리 자꾸만 이런저런 일들을 하게 되는 상황을 접하면서, 이런 걸 우리는 생각과 행동의 괴리라고 부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최종적인 결심은 내가 하는 것이지만 내 의지와는 다른 상황이 자꾸 벌어지는 것 같아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최근 들어 이런저런 일들이 자꾸 생기는 것 같아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하다. 인생 후반부는 조용히 단순하게 살겠다고 다짐했음에도, 농업·농촌·농민을 위하는 일이라면 작은 힘이라도 보태면서 봉사하겠다는 소망이 서로 상충되는 모순은 아닌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 모순을 안고 가야 하는 게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매우 분주한 하루였다. 고추 모종을 이제야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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