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2021년 직불금 신청

  • 입력 2021.05.14 13:05
  • 기자명 김효진(전북 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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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전북 순창)
김효진(전북 순창)

면사무소는 오늘도 오전부터 도떼기 시장마냥 혼잡하다. 산업계장 앞에 늘어선 농민들은 연신 앞쪽을 기웃거리며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기를 고대하는 눈치다. 면사무소 여기저기선 삼삼오오 시끄러운 대화소리에 정신이 사납다. 농민들이 두 달 가까이 직불금 신청 상담을 하기 위해 모여들면서 연출된 광경이다. 본연의 업무는 마비된 채 산업계 직원이나 주민이나 할 것 없이 불편하고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산업계장은 평일엔 신청 상담 때문에 주말에 나와 업무를 보는 실정이라 했다.

지난 이장단 회의에서는 결국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면장이나 군수는 현장의 고충에 대해 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느냐며 면장을 몰아세웠고, 이장 업무 보이콧을 결의하자는 의견까지 쏟아졌다. 임시직을 채용하거나 농관원에 업무 요청을 하여 농민들의 직불제 신청을 챙기라는 요구로 일단락됐지만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직불제가 시행된 지 20여년이 돼간다. 처음엔 논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앞세워 ‘논농업직접지불제’란 이름으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4년 쌀 시장 개방 재협상을 앞두고 1948년부터 실시해오던 가격지지 형태의 수매제를 폐지하는 대신 ‘쌀소득보전 직불제(고정직불금+변동직불금)’를 도입하게 된다. 결국 쌀값 폭락을 대비한 소득보전 기능으로 역할을 대체한 셈이다. 작년에는 변동직불금 폐지에 따른 논란도 있었지만 농업의 공익적, 다원적 역할을 강조한 ‘공익직불제’로 다시 바뀌었다.

문제는, 제도 운영에 있어 본말이 뒤바뀐 채 시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도의 당사자인 농민들에 대한 배려나 편의는 오간 데 없고, 제도의 허점을 메우는데 집중한 나머지 농민을 들볶고 닦달하고 있는 형국이다. 전형적인 관료중심적 사고에서 기인한 결과이다.

내용인즉, 수십년간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논’을 짓는데도 굳이 임대차 계약을 다시 맺으라 한다. 논 주인이 산 자라면 큰 수고는 덜겠지만, 고인이거나 행방을 확인할 길이 없는 경우엔 복잡해진다. 해당 필지에 대한 재산세 납세자를 찾아내야 하고, 납세자와 임대차 계약을 해야 하며, 경작사실 확인서와 무단점유가 아님을 증명하는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대다수 농민이 고령농인데 이 복잡한 서류를 필지마다 갖추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번잡함을 견디지 못하는 일부 농민들 중에는 직불금 수령을 포기하겠다는 이도 있다. 대체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따지고 보면, 딴 데서 뺨맞고 애먼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격이다. 과거에 직불금 부정수급 사례를 떠올려보면, 핵심은 농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외부자들을 걸러내어 실제 경작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마을공동체마다 이장이 확인해주면 끝날 일이다. 물론 부재지주와 경작자 간에 이면계약을 통해 직불금을 부재지주가 되돌려 받는, 부정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허나 이것은 제도로 막아 낼 수 없으며 오직 마을공동체 내에서 규범과 양심으로 강제하고 유도할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또한, 최근 LH 사태에서 보듯 생산 농민들이 문제가 아니다. 공직을 포함하여 직장에서 물러나 세제 혜택을 노리거나 농지를 투기 수단으로 삼는 자들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농업인의 자격기준을 손 봐 ‘가짜농민’을 선별하는 한편, 농지 전수조사를 통해 불법소유자를 밝혀 농지를 처분토록 하는 일도 서둘러야 한다.

재차 강조하는 바, 소농을 보호하고 농민에 대한 사회적 지위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취지에서 마련된 직불제가 시행과정에서 외려 농민을 소외하거나 고통을 안겨주어서는 안 될 일이다. 농업의 주체로서, 농촌의 파수꾼으로서 당당해지자고 받는 직불금이 엉뚱하게 농민을 푼돈 받으려고 애면글면하는 초라한 존재로 만드는 건 아닌지 농림축산식품부 관료들은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래서 직불금 신청 절차를 간소화하여 ‘서류농사’란 짐이라도 농민들 어깨에서 제발 내려놓아주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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