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펜팔⑥ 해외 펜팔 “디어 마이 프렌드…”

  • 입력 2021.05.02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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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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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 자유화 한 때가 1989년이었으니, 1960~70년대의 경우 일반 시민들에게는 외국에 나가볼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나라 밖 이역에 대한 지식이라야 사회과부도나 흑백텔레비전이나 외국영화에서 보고 들은 것이 거의 전부였다. 그런 때에 외국 사람과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여간 경이로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서울에, 해외펜팔을 소개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 회사들이 여럿 있었다. 영국이나 미국의 이성 친구를 소개받기는 상대적으로 어려웠고, 가까운 일본과 제3세계 국가들과는 비교적 연결이 쉬웠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2001년 당시) 김진희 씨도 한 때 해외 펜팔을 했었다는데….

“회원등록을 하고 나서 500원인가를 지불하면 외국에서 온 편지 한 통을 줍니다, 남자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외국의 여성하고 펜팔하기를 원했지만, 여자들은 동성 친구를 펜팔로 선택하는 비율이 절반쯤은 됐어요. 물론 저는 주저 없이 남자를 택했지만(웃음)…. 그런데 다들 영어 실력이 받쳐주지 않잖아요. 그래서 펜팔회사에서 영문 편지 쓰는 양식이나 예문을 줍니다. 거기 꿰맞춰서 어떻게든 써보라고. 편지를 한 번씩 주고받았을 때, 저 쪽에서 먼저 사진을 보내오면서 나보고도 보내라 하더라고요. 안 보냈어요. 상대가 너무 못 생겨서, 하하하.”

김진희 씨가 경험담을 털어놓자 콘도미니엄 객실에 둘러앉은 문화유산답사 동호회 회원들이 자신의 해외펜팔 모험담(?)을 다투어 쏟아놓기 시작하는데, 순식간에 콘도 객실엔 그들이 청소년기에 펜팔 편지지에다 구사했던 콩글리시가 난무한다.

“디어 마이 프렌드, 이렇게 시작하고요, 그 다음에 뭐 퍼스트 네임이 뭐고 페밀리 네임이 뭐다 어쩌고저쩌고 하다가 우리나라 아름답다고…두 유 노우 금수강산(Geumsoogangsan)? 이렇게 써놓고 나니 금수강산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더라고요.”

“쯧쯧, 외국 애들이 금수강산을 어떻게 알 거라고, 이런 금수만도 못 한….”

“마이 홈 타운 장사동 서울 인 코리아. 마이 네임 이즈 강필규. 마이 잡 이즈 하이스쿨 원 그레이드. 마이 페밀리 이즈 페어런츠, 투 영거 시스터즈…. 딱 거기까지 쓰고 나니까 더 쓸 말이 없어서 그냥 부쳤는데, 역시 답장이 안 오더라고요.”

편지가 몇 차례 오고 가다 보면 사진을 교환하게 되는데, 사진을 보내고 받는 과정에서 적잖은 해프닝이 발생하곤 했다. 그 무렵 쉬는 시간의 고1 교실.

-최수철! 너 미국 펜팔 친구한테서 편지 왔다면서?

-응, 가방에 있는데, 아직 안 뜯어봤어!

-야, 꺼내 봐. 같이 뜯어보자, 빨리!

-오, 만져보니까 속에 사진 들었는데? 미국 여자애라 그랬지? 어떻게 생겼을까? <노틀담의 꼽추>에 나오는 지나 롤로브리지다처럼 생겼을까?

-에이,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올리비아 핫세처럼 생겨야 더 예쁘지.

드디어 사진이 공개됐는데…봉투 속에서 미국 여학생의 사진을 꺼낸 녀석이 그 사진을 높이 치켜들고서 “야, 올리비아 핫세가 굴뚝에 들어갔다 나왔나보다!”라고 하는 바람에 교실에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 사진 속 당사자가 들었다면 심히 모욕감을 느꼈을 터이다. 어쩔 수 없이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들은, 해외펜팔을 하는 한국의 청소년들로부터도 부당한 차별을 받았던 것이다.

“웃을 일이 아니었는데…그 땐 참, 철이 없었지요. 지금 돌이켜보니 아주 건강하고 예쁘게 생긴 흑인 여학생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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