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을 잘 키워야

  • 입력 2021.05.02 18:00
  • 기자명 김승애(전남 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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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애(전남 담양)
김승애(전남 담양)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도 있는 걸 보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인생을 시작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농촌에서는 예전의 어른들도 그랬지만 지금의 어른들도 종종 자녀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공부 열심히 해서 너는 손에 흙 묻히고 살지 말거라’. 그런데 힘겹게 농사지어 공부시키고 도시로 보내서 입신양명하면 자신을 길러 준 농촌을 돌아보는 이가 적다. 그들에게 농촌은 가끔 힐링을 위해 다니러 오는 풍경 좋은 동네일 뿐일까. 그 정도만 해도 다행인 것이 요즘은 투기하기 좋은 곳이라 보는 이도 많으니까.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희망이라는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 요즘은 농촌에 사는 아이들도 학교에서 오래 있고 또 학교를 마치면 돌봄에 학원까지 다니느라 작물의 생태를 잘 아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고 한다. 스쿨버스로 집 앞에서 학교 정문까지 데려다주니 논둑길 밭둑길을 걸으며 자연과 함께 사색에 잠길 일도 없고 말이다. 지금은 공동체도 많이 무너진 상황에서 자기가 나고 자란 농촌에 대한 기억은 무엇이 남아있을지 생각해본다.

지금의 사회지도층이란 사람들도 한때 농촌에 살았을 텐데 농촌을 위한다는 정책만 봐도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영농형태양광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정책 및 농지법 개정, 대규모 스마트팜과 식물공장 등등 가히 폭력에 가까운 정책들이다.

농민운동가들이 수십 년을 올바른 농정정책을 수립하라고 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이제 거리의 투사들도 많은 나이로 인해 기력을 다해가고 있으며 앞으로 누가 농촌을 위해 싸워줄지 걱정이 많다.

그런데 내가 사는 창평면에 기특한 청년들이 모였다. 훌륭한 스펙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남아 고향을 지키며 농업과 가업을 이어가겠다고 하는 청년들이다. 이들과 모임을 하며 토론을 하다가 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게 되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후배들을 위해 농업·농촌·농민의 공익적 가치에 대해 생각을 나누는 볍씨학교(주제:쌀 한 톨의 우주)를 마을주민과 함께 운영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초등학교 교사들도 맘을 보탰다.

별도의 특별수업이나 방과후 과정이 아니라 청년들이 주축이 된 마을주민과 교사들의 협업수업으로 전교생에게 전 과목에 걸쳐서 정규과목에 농사 관련 교육을 자연스럽게 하는 방식이다. 청년들도 교사도 아이들이 자라서 지역에 남기를 바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남는다면 좋겠지만) 어디서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국민을 먹여 살리는 생명산업인 농업과 농민에 대해 고마움을 가지고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앞에서는 여전히 농민운동가들이 국가를 향해 올바른 농정을 하라고 소리쳐야 하지만 뒤에서는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올바른 농심을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시작한 일이다. 농사가 어렵고 힘들긴 하지만 고마움을 알고 자란다면, 농정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서도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고 농업을 지키는 것이 자주적 독립국가를 이루는 필수 요소인 것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 아이들 중에 농림부 장관이 나오고 국회의원이 나오고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이런 삼농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협업교육 시스템이 많은 농촌에서 우선적으로 이뤄지길 바라고(이미 시행되고 있는 곳도 꽤 있을 것이지만) 도시에서도 할 수 있는 만큼 이뤄지길 바란다. 어려서부터 농업·농민·농촌에 대한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자라난 사람이라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이렇게 자란 우리 아이들이 지금 흘리고 있는 농민들의 눈물을 닦아 줄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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