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OO계획 연구용역’ 늪에서 벗어나기

  • 입력 2021.05.02 18:00
  • 기자명 강마야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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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마야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농업·농촌 분야 새로운 정책의 기본구상을 위해서, 부문별 법정·비법정 기본계획 수립을 위해서 ‘OO계획 연구용역’을 실시하는 것은 어느덧 흔한 일이 됐다.

일례로 정책연구관리시스템(프리즘)에서 ‘직불제’, ‘직불금’ 키워드를 검색하면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총 30여건의 연구용역 결과물이 검색된다. 기관별로 자체 수행한 연구용역까지 합하면 이 수치는 더 증가할 것이다.

이 글을 쓰며 처음 접해보는 기본계획도 있을 정도로 농업·농촌 분야에는 수많은 ‘OO계획 연구용역’이 있는데 과연 농민들, 농촌 주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데 얼마나 기여했는지 뒤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연구용역 수행을 주업으로 하는 연구자로서 나 역시 반성해보려 한다.

중앙정부(농림축산식품부) 발주로 수립하는 법정·비법정 기본계획은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 지역개발 기본계획 △식품산업진흥 기본계획 △친환경농업육성 계획 △여성농업인육성 기본계획 △귀농·귀촌지원 종합계획 △종자산업육성 계획 △양잠산업육성 계획 △곤충산업육성 계획 △농업기계화 기본계획 △산림기본계획 △숲길 조성·관리 기본계획 △농림식품과학기술육성 종합계획 △말산업육성 종합계획 △지역에너지 계획 등이 있다.

여기에 도와 시·군 발주로 지자체가 추가 수립하게 되는 계획도 있다. 이와 같은 수많은 ‘OO계획’은 ‘연구용역’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농업·농촌 분야는 부문별 ‘OO계획 연구용역’ 의존도가 심한 생태계가 돼 버렸다. 상위계획을 근거로 부문별 정합성을 맞춰가는 것이 취지지만 좋은 의도는 사라진 채, 어떠한 논의들이 오고 갔는지에 대한 중간 논의과정은 휘발돼 버린 채, ‘OO계획 연구용역’ 결과 보고서만 남게 됐다. 연구용역으로 만들어진 OO계획이지만 공모사업 용도로 전락한 경우, 지역 내 다양한 이유로 시간벌기 용도로 전락한 경우, 애써 만들었다고 해도 담당자 인사이동과 관심 유무에 따라 활용도가 달라지는 경우 등이 발생해서다.

또 수많은 ‘OO계획 연구용역’은 개수와 종류가 다양하고 많아서 파편적이고 분절돼 있다. 이는 부서별로, 팀별로 ‘OO계획 연구용역’ 발주를 하기 때문이다. 계획이 많아서 어떤 계획이 상위계획이고 위상에 맞게 하위계획들이 정합성을 가지고 수립되는지 잘 알지 못하고 통합적이지도 않다. 현재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농발계획)이 최상위에 있다고 하지만 위상에 걸맞는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기도 하다.

이밖에 ‘OO계획 연구용역’ 수립 단계에서 기간의 한계, 외부의존적 연구의 한계로 지역 내 다양한 주체 간 합의와 소통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전문가 그룹은 계획 내용 고민 주체가 아닌 연구기획 관리자로서, 행정 그룹은 정책 집행의 주체이지만 ‘OO계획 연구용역’의 관리감독자로서, 민간 그룹은 정책 당사자가 아닌 제3자 관점의 참관자로 전락해버린다. 계획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이것을 왜 하지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전국이 동시다발적으로 ‘OO계획 연구용역’을 발주하면서, 그리고 OO계획의 목차와 틀이 ‘현황분석-기본구상-전략과제-투·융자계획’으로 정형화되면서, 계획수립에 소요되는 연구기간은 3~6개월로 더욱 짧아지게 됐다. 지역 내 다양한 농업·농촌 문제의 해결 방안 마련에 소요되는 시간과 내용이 비슷한 이유다.

무한 반복-재생되고 있는 ‘OO계획 연구용역’의 늪에서 벗어나 ‘OO계획’과 ‘연구용역’을 분리하되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의미있는 전환을 제안한다.

첫째, 수많은 OO계획 간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고 지역에 정말 필요한 핵심의제에 집중하면서 통합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수많은 OO계획은 그만큼 행정 부서 간, 민간 주체 간 파편화되고 분절된 구조로 이어지므로 다시 봉합해야 한다.

둘째, ‘OO계획’과 ‘연구용역’ 간 불가분의 관계에서 벗어나 전문가와 공무원, 지역 내 일부 단체 대표들만이 중심이 돼 수립하는 ‘OO계획 연구용역’의 시대를 끝내기를 제안한다. 기존 지역 내에서 활동하는 농민단체나 조직들이 먼저 ‘우리지역 OO계획구상 모임’, ‘OO문제 실태조사 모임’ 등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체계적으로 계획수립에 필요한 구상을 하고 있도록 준비하면 된다.

셋째, ‘OO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 민과 관 모두가 필요한 내용들이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논의과정 중심의 구조 △고민과 토론의 시간을 늘리는 구조 △사전 기획을 세심하게 하는 구조 △지역 내 주체들에게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구조 등이다. 연구용역 진행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OO문제해결에 관한 농민생각 자료집’ 또는 ‘100인 100의견 모음집’만으로도 충분히 권위를 부여하고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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