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조합원 자료 요구에 농협이 협박?

농민 알 권리 사라진 농협 현실 여전 … 제도 개선 위한 특단의 대책 절실

  • 입력 2021.05.02 18:00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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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지역농협 운영에 있어 조합원들의 알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여전한 것으로 드러나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1월 전남의 A농협에선 조합원 56명이 서명을 통해 절임배추 가공공장 설립에 대한 자료 공개를 요구했다.「농업협동조합법(농협법)」제65조(운영의 공개) 제4항이 “조합원 100인이나 100분의 3 이상의 동의를 받아 지역농협의 회계장부 및 서류의 열람이나 사본 발급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어서다. 또한 제5항은 “지역농협은 제4항의 청구에 대해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발급을 거부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조합원들의 정보공개 청구는 기존에 설립된 가공공장에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 해썹) 시설을 추가했는데 이 과정에서 과다한 비용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진데 따른 것이다. 기존 가공공장 설립에 쓰인 자금이 7억원이고, 해썹 시설 추가에 7억원이 쓰였다면, 새로 해썹 시설이 있는 가공공장을 지어도 5억원이 채 들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가 조합원들 사이에서 퍼진 것이다.

A농협은 자료 공개 요구에「공공기관의 정보에 관한 법(정보공개법)」제9조 제1항을 근거로 사본 발급을 거부하면서 사무실에 방문해 감사 입회 아래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고 회신했다. 정보공개법 제9조 1항은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A농협이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을 근거로 든 건 지역협동조합정관례 제140조에서 “농협은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에 준하는 사유가 없으면 (자료)발급을 거부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어서다.

A농협은 이후 농협중앙회로부터 법률 자문을 받고 기존에 가능하다던 열람도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A농협은 두 번째 회신에서 “해썹사업은 경영상의 결정으로서 조합원이 문제 삼을 수 없다”고 못박으며 “근거 없는 의혹 제기나 농협 또는 임직원을 공격해 농협의 신용을 잃게 하거나 손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 모든 자료를 취합해 관련법에 따라 조합원 제명 및 형사적 대응을 강력하고 단호하게 추진할 계획”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 한 조합원은 “A농협이 경영상의 이유라고 했지만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건 그만큼 문제가 있을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하지만 지역농협이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을 근거로 들 경우 어떤 자료도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탄식했다.

게다가 이 조합원은 “자료를 확인해 문제 여부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인데, 농민 조합원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얘기하는 건 협박이나 다름없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A농협 조합장은 지난달 28일 조합원들의 입장에 대한 의견을 묻자 “나라장터 입찰을 통해 계약했고, 이사회 의결 등의 절차도 거쳐 해썹 시설 의혹은 근거없는 얘기다. 법적 대응도 근거 없는 얘기가 계속되면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것이지 협박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조합원들은 이에 농림축산식품부에도 자료 비공개 적절성 여부를 물었고, 농식품부는 “농협은 요구 자료가 정보공개법에 따른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되는지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며 이에 대한 다툼이 있는 경우 최종적으로 사법적 판단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회신했다.

결국 조합원들과 A농협의 상반된 입장이 계속된다면 자료 공개 여부를 두고 법정 싸움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농식품부도 제도 개선의 필요성은 공감하고 있다. 실제로 농식품부 관계자는 “자료 공개 관련 문제가 오래된 만큼 명확한 기준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또한 “지역농협이 정보공개법 상 청구 대상은 아니지만 오히려 농협법에서 농민조합원의 정보 접근성에 대한 권리를 더 강하게 보장하고 있다”며 “지역농협이 이 점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농사짓기도 바쁜 농민들이 농협 운영에 관한 자료를 받기 위해 법정까지 가는 장면이 반복되고 있는 가운데 제도 개선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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