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부의 살처분 결정, 현행법 위반 아닌가

법상 명령권자는 시장·군수·구청장 … “보상 아닌 배상의 문제 될 수도”

  • 입력 2021.04.25 18:00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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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고병원성 AI에 따른 예방적 살처분 시행에 중앙정부가 일방적인 의사결정을 주도한 건 법적으로 심각한 문제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현행법상 살처분 명령권자는 시장·군수·구청장이기에 정부가 살처분농가들에게 ‘보상’이 아닌 ‘배상’을 물어야 할지 모른다는 지적이다.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예방적살처분반대시민모임, 환경농업단체연합회, 동물권행동 ‘카라’는 지난 19일 서울 산림비전센터에서 ‘가축전염병 대응 개선 방향과 과제 토론회’를 진행했다. 이날 토론회는 김승남·김영진·송옥주·위성곤·이원택·주철현 국회의원과 동물복지국회포럼,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주최자로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지난 19일 서울 산림비전센터에서 ‘가축전염병 대응 개선 방향과 과제 토론회’가 진행됐다.
지난 19일 서울 산림비전센터에서 ‘가축전염병 대응 개선 방향과 과제 토론회’가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인 하승수 변호사는 “가축전염병예방법(가전법)상 살처분 명령권자는 시장·군수·구청장인데도 불구하고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을 주도한 건 심각한 문제다”라고 비판했다. 하 변호사는 “일종의 직권남용으로 살처분농가들에게 살처분에 따른 보상이 아닌 ‘배상’을 해야 하는 문제가 된다”면서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면 정부 지침이 있어도 위법이다”라고 설명했다.

경기도 화성시 산안마을 사례를 보면 경기도와 화성시가 해당 산란계농장의 살처분명령 집행에 관련해 건의를 한 바 있으나 담당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다른 살처분농장과의 형평성 문제 등을 이유로 살처분명령 집행을 고집했다. 결국, 2월 19일 산안마을에서 살처분명령이 집행됐다.

하 변호사는 “정책결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확보되지 않아 일단 의사결정 과정이 공개돼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농식품부가 법적 검토를 충분히 하지 않았으면 심각한 문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살처분명령에 관한 이의제기 절차를 보장하는 등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함태성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가전법에 일반적 살처분과 예방적 살처분을 명시적으로 구별해 예방적 살처분 명령을 내릴 때 판단기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함 교수는 “예방적 살처분은 불가피한 경우에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예방적 살처분 명령의 집행을 유예하거나 취소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 있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에 홍기성 농식품부 조류인플루엔자방역과장은 “예방적 살처분은 수평전파로 인한 대규모 확산을 차단하고자 조치를 취하고 있다. 반경 3㎞ 기준은 한국환경생태연구소의 야생오리 분석 결과를 참고해 설정했다”고 전했다. 홍 과장은 “농식품부 고시엔 필요하면 예방적 살처분 조치에서 제외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토론회에 참석한 윤종웅 한국가금수의사회장은 “2003년 한국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지 18년이 지났는데 현재 우리의 방역 시스템은 죽이는 방역 밖에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윤 회장은 “(살처분 방역정책의)성공이 지금의 실패를 만든 게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AI 백신을 도입해 다양한 방역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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