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소멸’이라는 폭탄, 그 타들어가는 심지의 모양

  • 입력 2021.04.25 18:00
  • 수정 2021.04.27 09:56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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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저소득층 지원사업을 통해 겨우 화장실 공사를 하게 된 도왕마을의 한 할머니가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저소득층 지원사업을 통해 겨우 화장실 공사를 하게 된 도왕마을의 한 할머니가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2019년 가을, 전북도의회에선 농민들이 직접 만든 농민수당 주민조례를 처리해달라고 의사당을 방문했다가 문전박대를 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찾아온 농민들보다 경찰 병력이 더 많았던 그 아수라장 속, 어떻게든 경찰들 속을 비집고 들어가 농업·농촌의 중요성을 외치는 한 여성이 보였습니다. 제가 오은미 전 전북도의원을 처음 접했던 순간의 풍경이 그러했습니다.

일전부터 농촌을 직접 찾아다니며 정치하기로 유명했고 또 그 때문에 재선에 성공했던 오 전 의원은 의원직을 떠난 지금도 농촌을 돌며 농민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제는 관련 연구자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농촌에 거주하는 것만으로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더하는 중입니다. 그가 최근 한 마을을 다녀와선 ‘탄성과 함께 안타까움의 탄식이 절로 나온다’는 후기를 남긴 것을 보고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아시다시피 지방이 소멸한다, 혹은 지역 인구가 소멸한다는 얘기가 심심하면 등장하는 상황에서 그 소멸의 시작점을 확인하고 싶었죠.

목적지,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도왕마을은 ‘호남정맥’에 속하는 해발 540m 높이 두류봉과 290m의 불암산 사이 골짜기에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다. 지도로 사전탐색해 보니, 운전이 익숙한 사람도 바퀴를 어디에 빠뜨리지 않을까 염려하게 만드는 그런 산길을 10분 넘게 올라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라진 마을

남원역에서 이곳을 향하자면 호남의 젖줄인 섬진강을 건너게 됩니다. 유채꽃이 아름답게 만발한 강 유역을 따라 길을 재촉하니 원촌·지내·우계·시목 등의 고을이 차례로 나타납니다. 모두 놀라울 정도로 인기척이 없고 한적하지만 인근 경작지에는 봄 농사를 시작하는 농민들이 군데군데 보이고, 간간이 오가는 차량도 눈에 띕니다.

마지막 경유지는 산 바로 아래에 자리한 입석마을입니다. 이 다른 마을 중앙에 ‘도왕마을’이라는 표지가 크게 붙은 것으로 보아 여길 지나지 않고서는 그곳에 닿을 방법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까지 무슨 일로 처음 보는 차가 왔을까 놀란 눈으로 한참 바라보는 마을의 할머니를 뒤로하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여섯 개나 되는 이정표를 지나치자 놀라운 풍경이 나타납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도왕마을을 안내하는 마지막 이정표는 오직 그것만이 색이 바래 마을의 미래를 말하는 듯 합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도왕마을을 안내하는 마지막 이정표는 오직 그것만이 색이 바래 마을의 미래를 말하는 듯 합니다.

 

그 끝에는 아직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오 전 의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원시림에 둘러싸인 듯한’ 이 마을은, 마치 원래는 숲이었던 공간에 억지로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을 꾸민 것처럼 폐가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초기에 어떻게 마을이 생겼는지 궁금할 정도로 진입로는 물론이고 그 내부에서조차 경사지지 않은 마을길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지도만 봐선 도왕마을에는 열댓 채 정도의 민가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사람이 사는 가구는 다섯도 채 남지 않은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 모습은 이제 ‘마을’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농촌이라면 으레 흔한 경로당과 마을회관, 심지어는 트럭 한 대조차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도 이장은 있다고 하여 이장님 연락처를 수소문해 뵙고 싶다 말씀드렸지만 부재중이셨고, 대신 받은 사모님도 바깥에서 바쁘다며 전한 대답은, “물어볼 게 뭐가 있어요, 그냥 다 죽고 떠난 그런 마을이지.”

그래서 직접 그 역사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마을도 본래 이런 모양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마을길 주변은 물론이고 사람이 살지 않는 집 마당에서까지 자라기 시작한 나무들은 그 속에 품은 처참한 폐가, 그리고 여기저기 널부러진 가재도구와 조화를 이루며 대낮에도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심지어 한 폐가에선 목줄에 묶인 채 개집에 웅크려 저를 바라만 보고 있는 큰 개 한 마리를 만날 수 있었는데, 얼마 동안이나 그렇게 버텼는지, 대체 왜 아직까지 살아 있는지 알 도리가 없는 그 참혹한 광경에 차마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 모든 걸 물어보고 싶어도 주변은 모두 폐가, 도무지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마을길을 조금 더 오르니 한 집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립니다. 이곳에서 무언가 공사를 하고 있는 인부들이 제가 처음 목격한 ‘사람’이었습니다.

순창군엔 취약계층 주거복지사업이 있고 저소득계층을 대상으로 군에서 400만원 한도 내의 집수리를 해준다고 하는데, 그 용역을 맡아 일하는 분들입니다. 오늘은 한 할머니가 사시는 낡은 집에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정화조와 배관을 묻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큰 트럭과 굴삭기가 올라올 수 없어서 1톤 트럭에 실리는 조그마한 굴삭기가 열심히 땅을 파고, 공사로 생기는 폐자재는 어쩔 수 없이 주변에 쌓아야 하는 열악한 환경입니다.

“가능하면 예산 범위 내에서 하려고 하는데, 공간 자체가 아예 없는 경우에는 지원나오는 돈에서 부가세 40만원 빼고 360만원으론 택도 없어요. 그렇게 되면 견적이 600, 700만원 나오거든요.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자부담금이 필요한데, 자식들이 못 내겠다하면 못하지. 그런 집도 있어요. 할머니 곧 돌아가실 건데 뭐 하러 만드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고. 착한 사람도 있고.”

수많은 농촌을 다녀본 그는 여전히 화장실이 없는 집이 많고, 만들 수 있는 환경조차 갖춰지지 않은 곳도 많다며 혀를 내두릅니다. 작년만 해도 100여 건이 넘는 작업을 했다고 하네요. 이 집 역시 이렇게 공사를 해도 도시 아파트처럼 완전한 화장실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마을 곳곳은 폐가로 가득 찼습니다. 몇몇 집은 정부 지원사업을 통해 일제히 보수한 것처럼 보이는 똑같은 모양의 지붕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폐가가 되는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을 곳곳은 폐가로 가득 찼습니다. 몇몇 집은 정부 지원사업을 통해 일제히 보수한 것처럼 보이는 똑같은 모양의 지붕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폐가가 되는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여기 산다는 이유만으로

“할머니, 그럼 지금까지 화장실 없이 지내셨던 거에요? 그래서 군에 신청을 하신 거에요?”

다 없이 살았다. 저쪽에 가서 해결했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인부들 작업을 지켜보는 과정에서도 느꼈지만, 연세가 있는데다 방언까지 더해져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제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폐가가 아니라고 여긴 집은 네 집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그 중 두 집은 사실상 곧 사라질 집이라고 봐야 했습니다.

“저 아랫집은 깨끗한데, 이웃은 안 계신 거에요?”

한 집은 인근에 밭이 있는 사람이 밭을 돌볼 때만 잠깐 오는 집이라는데 왕성하게 짖는 큰 개가 대문을 막고 있어 들어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개 앞에는 그에 의해 죽은 지 시간이 꽤 흐른 듯 보이는 생쥐 사체가 방치돼 있습니다. 또 다른 집은 정말 말끔한 단층집인데, 부부 중 한 분이 치매에 걸려 요양병원에 가 계시느라 거의 비어있는 집이라는 이야기를 어렵사리 듣습니다.

도시라는 테두리 바깥의 인구 소멸은 이미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도 합니다. 산림청에선 읍·면으로 범위를 넓게 잡았을 때 30년 내 전국 466개 산촌의 90%가 소멸할 거란 보고서를 내기도 했는데요. 이곳에서도 도왕마을이 그 시작점이 될 거란 점은 확실해 보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남은 곳들 가운데 가장 살기 불편하고 척박한 마을로 또 다시 종말의 불씨가 점점 옮겨갈 것이고, 이 비참한 풍경은 계속해서 재생산될 것입니다.

국토 곳곳의 터에 사람이 남아 자연 경관을 지키고 식량을 생산하는 게 분명 중요한 일이라면, 그런데 그것을 아무도 하려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 점에서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거주만으로도 농촌기본소득이나 거주수당을 주자’는 얘기는 터무니없는 주장도 아니요, 크게 놀라거나 반대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이번 기행으로 확고해졌습니다.

도왕마을은 이미 손 쓸 수가 없게 됐지만, 더 많은 농촌이 사라지는 것은 막았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여 굳이 소멸이나 농촌의 위기라는 이야기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농촌을 떠나지 않고 싶어서, 혹은 떠날 방법이 없어서 그곳에 남았다는 이유만으로 똑같은 국가에 살면서도 너무나 많은 불편을 감내하고 산다는 게 과연 공정한 일인지도 되묻지 않을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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