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①] 완도에서 만난 칠게

  • 입력 2021.04.18 18:48
  • 수정 2022.01.14 10:22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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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특별한 일을 만들어 일부러 가지 않는 한 북쪽 지리산에서 완도로 장을 보러 간다는 건 실제의 거리나 마음의 거리 모두 너무나 멀고 먼 길이었다. 그나마 마음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차로 다리를 건너면 바로 섬이라는 작은 위안이었다.

완도에 도착했을 때는 평소 같으면 이미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이지만 미리 오일장이 열리는 곳의 위치도 파악하고 규모도 짐작하고 싶어 완도 5일시장이란 간판을 확인하러 갔다. 생각했던 규모가 아니라 괜한 걸음을 했나 하는 후회를 하며 숙소로 향했다. 아침도 거른 이른 아침에 간밤 주차자리로 보고 온 곳으로 향하며 내가 원하는 볼 것이 없으면 상설시장에라도 갈 요량을 했다.

대도시 같으면 주차위반 딱지를 뗄 각오를 해도 차를 세울만한 자리는 없었다. 어제 보고 온 장터는 원을 그릴 때 잡는 중심 정도였다. 지붕만 세워진 장터를 중심으로 이중 삼중으로 확산되어 골목골목이 모두 장터가 되어 있었다.

장터에서 아침을 먹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갔지만 주차를 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고 그 규모에 놀라서 배고픔도 잊은 채 정신줄을 놓은 사람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양해도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다가 혼도 나고 욕도 먹고 의외로 친절한 분을 만나 좋은 각도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부산에 살던 배고픈 유년기의 음식으로 남은 국화빵을 만나 구워지는 모습을 눈에 새기기도 하고, ‘뻥이요!’ 하는 소리없이 싱겁게 한 자루 튀겨내는 새로운 기계로 뻥튀기를 하시는 분도 만났다.

해남에서 왔다고 하시는데 파시는 건 당진 인근에서 잡은 것이라며 사기를 권하시는 분께 정말로 귀한 세하를 한 바구니 샀다. 20년 가까이 다니는 곰소의 젓갈집에서 정말 어쩌다가 만나지는 자젓이나 밀젓으로 불리는 세하젓의 주인공 생새우를 완도장에서 만나는 이상한 인연이라니 하면서 무조건 샀다.

쇠미역을 한 줄기 같이 사와 데쳐 숙성도 안 된 칠게장을 얹어 쌈을 싼다.
쇠미역을 한 줄기 같이 사와 데쳐 숙성도 안 된 칠게장을 얹어 쌈을 싼다.

오일장 구경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점심겸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조금씩 자신의 물건을 들고 나오신 할머니들께 여쭈니 번듯한 장터 건물 안쪽의 몇호점으로 가라신다. 연탄불에 구워준다시면서. 주꾸미나 생선구이를 연탄불에 구워먹을 생각으로 가게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백반도 파는 흔한 장터의 선술집 같은 곳이었다. 반전은 완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해산물이 아니라 닭발을 연탄불에 구워주는 곳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무한리필’ 되는 밥과 반찬들이었다. 완도에서 생산된 좋은 쌀과 그날그날 장터에서 바로 구입한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반찬들의 맛이 어느 것 하나 빼지 않고 다 좋았다. 딱 탁주 한 사발만 하시는 연세 지긋하신 분들께나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친절하셨던 주인아주머니 덕에 더 맛있게 먹었던 밥이었다.

배도 채우고 마음도 훈훈해져서 장을 몇 바퀴 돌면서 마음에 두고 특별하게 산 것은 갯벌흙 잔뜩 뒤집어쓰고 뻘뻘거리며 기어다니는 칠게 2kg이다. 튀김옷 없이도 노랗게 바삭하게 튀겨지는 튀김으로도 맛있고, 간장 부어 게장을 담가 두었다가 거칠게 다져서 여름에 잘 익은 열무김치와 함께 밥을 비벼도 맛있다.

나는 이번에 사온 칠게의 반은 간장을 부어 게장을 담갔고 나머지 반은 양파, 마른 고추, 마늘, 간장 등을 넣고 기계를 이용해 갈아서 병에 담아 두었다. 얼마나 생명력이 강한지 소금물로 해감을 한 후 열 번을 넘게 민물에 씻은 후에 간장을 부어놓았는데 계속 밖으로 나와 기어서 돌아다닌다. 어쩔 수 없이 눈 딱 감고 살아있는 놈들을 기계로 갈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 따라 이사 다니던 어린 시절에 본 칠게는 돌확에서 짓찧어져 장이 되었는데 돌확에 해보려니 산 놈들과 사투를 벌일 엄두가 나지 않아서 나는 포기하고 기계에 의존했다. 간장을 부어두었다 먹는 칠게장과 달리 갈아서 만드는 칠게장은 거친 게 껍질이 입안에서 씹혀 불편하기도 하지만 칠게 특유의 향과 감칠맛이 아주 좋다.

철 지난 감이 있기는 하지만 쇠미역을 한 줄기 같이 사와 데쳐 숙성도 안 된 칠게장을 얹어 쌈을 싼다. 호주에서 1만2,000km를 날아와 우리의 갯벌에서 칠게로 배를 채운 후 다시 8,000km를 날아 시베리아로 가는 도요새의 먹이. 그 칠게를 오늘은 내가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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