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벗 따라 생활건강] 때 되면 한약을 먹어야 하나요?

  • 입력 2021.04.18 18:00
  • 기자명 허영태(포항 허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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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태(포항 허한의원 원장)
허영태(포항 허한의원 원장)

이 질문도 진료 중 간혹 받습니다. 질문도 질문이지만 이렇게 생각하시는 경향이 왕왕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한약은 이유없이 때 되면 먹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먹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때’라는 것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겠군요. 이때 ‘때’란 봄 되면, 가을 되면, 출산하면, 고3 되면 등 뚜렷한 질환은 없으나 왠지 먹어줘야 할 것 같은 때를 말합니다. 자기 스스로 약을 먹으려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이맘때쯤 다들 먹는다 하던데 먹어야 하는가 싶은 때를 말합니다. 예방의학 차원과는 다른, 안 먹는다고 큰일 나지는 않으나 먹어두면 마음이라도 편할 것 같은 그런 때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의원은 보약을 지으러 가는 곳, 몸이 허할 때 왠지 가보면 될 것 같은 곳,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이 가는 곳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부 보약 개념의 한약만 강조하는 한의원이 있기는 하나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이 글을 쓰며 저희 한의원의 지난 3월 내원 환자 연령대를 확인해보았습니다. 40대 22%, 50대 20%, 30대 17%, 60대 13%, 20대 11%였습니다. 어르신이라 할 수 있는 70대 이상 환자분들은 11%에 불과했습니다.

한의원은 보약 개념 의료기관으로써의 역할보다 치료목적으로 방문하시는 분들이 훨씬 많아지고 있습니다. 병은 나기 전에 예방할 수 있으면 가장 좋습니다. 예방에도 불구하고 생긴 병은 정밀하고 정확하게 치료해야 합니다. 때가 돼 먹어둔 한약으로 이미 생긴 질병을 치료하기란 어렵습니다.

한의학에는 삼복첩이라 하여 초복, 중복, 말복, 더운 여름 등에 있는 혈자리에 약재를 붙여 면역력을 강화시켜 겨울 감기를 덜하게 하는 목적의 시술이 있었습니다. 이것도 보다 더 풍부한 임상데이터의 축적으로 그 효능을 검증할 필요는 있으나 뚜렷한 목표점이 있는 치료입니다. 이런 경우는 때가 되면 약을 먹든 붙이든 해야 하지요. 그렇지 않고 막연히 ‘먹어둘까’, ‘먹어놓으면 좋아지겠지’, ‘남들도 다 먹는다는데’ 이렇게 생각하며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의료는 사람의 건강을 다루는 중요한 영역입니다. 여기에서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질병이 꼭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만 오지 않을뿐더러 사람 또한 개개인별로 천차만별입니다. 그만큼 어려움도 있고 더욱더 정확성이 요구됩니다.

한의학은 오래전부터 우리 주변에 있어 친숙감도 있고 자연 친화적이기 때문에 인체에 해가 덜 가는 치료법은 맞습니다. 이런 큰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의학은 왠지 두리뭉실하고 ‘치료하다 안 되면 병원 가야지’ 하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인식이 생겨난 원인은 일차적으로 한의학을 하는 의료인들에게 있다고 봅니다. 한의학에서 뛰어난 치료법의 계승에 주력하기보다 보약 짓는 개념으로만 여기고 정확한 개념 정립과 데이터의 구축에 취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먹어두면 나중에 뭐라도 좋아지지 않겠냐고 생각하시는 분이 아직 계실 듯한데, 필요 없을 때 먹어두면 대소변량만 늘어날 뿐입니다. 그래서 한약은 때 되면 먹어주는 약이 아니고 예방을 위해서나 치료를 위해서 한약이 필요할 때 먹어야 하는 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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