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펜팔④ 훈련소 내무반에 펜팔주소가 넘쳐났다

  • 입력 2021.04.18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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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팔’을 얘기하면서 군대를 빼놓을 수 없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의 초·중·고등학교 학생이면 누구나 1년에 두어 번씩 위문편지를 써야만 했다. 내용이야 읽어보나마나 뻔했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추운 날씨를 무릅쓰고, 전방에서 총칼을 들고 휴전선을 튼튼히 지켜주시는 국군장병 아저씨들 덕분에, 저희들은 따뜻한 후방에서 공부 열심히 하고 있으며….

(식)칼을 들고(총은 빼고) 취사반에서 무 배추를 써는 일로 일과를 채우는 취사병도, 남쪽 바닷가의 해안초소에 근무하는 병사들도, 행정반에서 펜대를 굴리는 서무병도…위문편지에서만큼은 모두가 눈보라 치는 엄동설한에 전방의 철책을 지키는 경계병이 되어야 했다. 병사들이 국방에 의무복무를 하였듯, 대한민국의 학생이면 누구나 위문편지 쓰는 과업에 의무로 복무를 해야 했다. 그러니 억지로 쓴 그 편지들이 거푸집에서 찍어낸 흙벽돌처럼 판박이일 수밖에.

1976년, 한 예비사단 신병교육대의 내무반.

-너희들은 군대에 ‘입대’를 한 게 아니라 훈련소에 ‘입소’를 한 것이다. 그래서 아직 군바리가 아니라 훈련병이다. 자고로 훈병은 하느님과 동격인 내무반장의 명령에 절대 복종을 해야 한다. 알았나?

일석점호가 끝났음에도 갈매기 계급장(하사)을 단 내무반장은, 아직 군대물정을 몰라 어리바리한 훈병들을 침상 삼선에 정렬시켜놓고는 목소리에 잔뜩 힘을 준다, 또 한바탕 ‘줄 빠따’ 매질을 당할까봐 겁을 먹고 있는데, 이어지는 내무반장의 지시사항은 생뚱맞은 것이었다.

-내가 너희들한테 종이 한 장씩을 나눠줬는데 거기다 뭘 하느냐, 이 내무반장한테 소개해줄 여자의 이름과 주소를 각각 다섯 명 이상씩 적어내야 한다. 만약에 주소나 이름을 엉터리로 적어냈다가 편지가 반송돼오는 날에는, 그 훈병은 신병교육대 출소할 때까지 호된 뺑뺑이를 돌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주소와 이름을 적는다, 실시!

훈병들은 ‘실시!’를 복창하고는 종이와 볼펜을 후다닥 챙겨서 각자 침상에 엎드리긴 했는데…그 다음이 문제다. 자신의 여자 친구 하나 변변히 사귀지 못한 채 입대한 훈병들의 경우, 다섯 명이나 되는 여자의 이름과 주소를 적어내라는 내무반장의 엄포는 막막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세 명씩 짜인 ‘전우조’의 전우들이 머리를 맞대고 전술전략 회의에 들어간다.

-난감하네. 소개해줄 여자 이름하고 주소 다섯 개를 무슨 수로 적어서 내지?

-바보야, 그걸 진짜로 적어 내냐?

-엉터리로 적었다 들통 나면 가만 안 둔다잖아.

-야, 내 이럴 줄 알고, <선데이서울> 펜팔 난에 있는 주소를 오려 가지고 왔거든.

-와, 잘 됐다! 그런데 그걸 적어냈다가 들키면 어떡해?

-왜 들켜? 답장이 안 오면 안 왔지 주소는 확실한데.

-그 주소 나한테 다섯 개만 줘.

-다 해봤자 여섯 개밖에 없어. 셋이 두 개씩 나눠서 적자.

-그럼 나머지 세 개는?

-바보야, 중학교 다니는 조카에다, 시집간 이모나 고모에다, 또 뭐 이웃집 사는 할머니 이름이라도 대충 적어내면 되지. 자세한 사정이야 휴가 가서 설명하면 될 것이고, 히히힛!

어차피 내무반장도 하고많은 훈련병들을 겪으면서, 그들이 적어낸 이름과 주소들은 쭉정이가 대부분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무반장은 그 많은 주소의 여자들에게 무슨 재주로 편지를 다 써 보냈을까? 그야 뭐 편지 대필할 ‘사역병’을 징발하면 된다.

-중고등학교 때 백일장 입상경력이 있는 훈병은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나온다,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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