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식량안보, 국가가 책임의지 다잡아야 할 때”

이기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수급이사

  • 입력 2021.04.18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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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기후위기로 점철된 최근 1년의 극한 상황은 전 세계에 식량 문제의 심각성을 각인시켰다. 이는 국제곡물가 파동으로 인해 여실히 현실로 이어지고 있으며 우리 정부도 비로소 식량안보 개념을 정책 테이블에 올리기 시작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수급본부는 모든 정부기관 가운데 가장 일선에서 식량안보를 고민해야 하는 부서다. 3년 임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이지만, 이기우 aT 수급이사는 본지 인터뷰를 통해 식량안보에 대해 오히려 더 진지하고 깊어진 고민을 드러냈다.
대담 심증식 편집국장·정리 권순창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이기우 aT 수급이사
이기우 aT 수급이사

식량안보는 왜 중요하며 관련해서 aT는 어떤 사업을 하고 있나.
쌀을 제외한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45.8%, 곡물자급률은 21%에 불과할 정도로 수입 의존도가 높다. 코로나19 이후 주요 곡물 수출국들이 자국 식량안보를 위해 곡물 수출을 통제했듯, 국제적 식량위기 사태가 본격화하면 막대한 비용을 지출해도 식량확보가 어려워진다. aT는 농산물 수매비축과 부족물량 수입을 통해 수급안정을 도모하는 기관으로, 최근엔 콩·밀 등 국내 곡물 자급기반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식량자급률, 어떻게 올려야 하나.
식량자급률이라고 하면 일단 어떤 품목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지 목표조차 명확지 않은 것 같다. 심지어 대통령이 밀 10%, 콩 45%라는 달성목표를 발표했는데도 콩은 늘 해오던 정책의 반복이고 밀은 업무경험 부재와 현장의 혼란으로 진척이 쉽지 않다. 식량자급이라 하면 적어도 쌀·밀·콩·팥·녹두·참깨, 이 정도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끌고가야 한다고 본다. 정부 정책이 나오지 않으면 aT 자체 사업으로라도 추진하려 준비 중이다. 우선 조직 내에 식량산업지원단(밀·콩산업육성팀)을 만들었는데 기획재정부가 증원을 허락하지 않아 정규조직이 아닌 TF로 운영하고 있다.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정부의 비축가능 총 물량이 10만톤이 채 안된다. 전체 비축량의 절반가량을 민간 창고에 의지해야 한다. 운영방식도 시대에 뒤떨어졌지만 절대적으로 창고 수가 부족하고 40~50년 노후화된 것도 흔하다. 밀·콩의 경우 사일로가 필요한데 정부 창고는 모두 단순 창고형이다. 수매는 하는데 전문비축시설이 없는 것이다. 비용보다 의지의 문제다. 밀·콩 자급률을 높인다고 정부가 민간에 수매자금을 대출하고 시설 개보수를 지원하는데 그보다 시급한 건 국가 스스로의 비축역량이다. 식량안보란 건 비상상황에 대비해 국민이 먹을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 상시비축이 필요한 것이다.

단지 창고만 있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닐 텐데.
농가 영농의욕을 높이기 위해선 생산비를 조사해 수매가를 현실화해야 한다. 한편으론 양파·마늘·엽근채류 수매·폐기에 연간 300억원 가까이가 소요되는데 이를 좀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채소류와 달리 곡물은 일단 수매해 두면 언제가 됐든 원금과 비슷한 수준으로 되팔 수 있지 않나. 예산을 끌어다 밀·콩의 수매가를 높여 어느 정도 소득만 보장하면 생산면적은 반드시 늘어난다. 밀·콩 면적이 늘어나면 만성 폭락 품목인 양파·마늘은 줄어들게 돼 있다. 아울러 농촌진흥청·지자체 등 유관기관과의 협업을 통한 계약재배, 생산지원사업(기계화·규모화)도 꼭 병행돼야 한다.

그런 여건이 갖춰졌을 때 aT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국산 밀·콩의 수요처가 없다고들 하는데 수요처는 얼마든지 있다. 안정적으로 공급해주는 곳이 하나도 없을 뿐이다. 지난해 정부가 밀 850톤, 콩 500톤을 수매했는데 3만톤씩 비축 가능한 시기가 오면 대기업들도 일정 비중을 국산 프리미엄 제품으로 개발할 의중을 밝히고 있다. aT가 균일하고 구분된 품질로 원료를 공급하는 플랫폼 역할을 해서 그동안 역차별 받아왔던 국산원료 사용 업체들을 도울 것이다. 만약 정부의 우리밀 전문비축기지에 제분소까지 구비할 수 있게 된다면 현재 3배 가까운 수입밀가루와 국산밀가루의 가격격차를 크게 줄일 수도 있다.

aT 수급이사로 보낸 3년을 스스로 평가·반성해 본다면.
다른 기관이 아닌 aT에 왔던 게 내 인생에서 정말 큰 행운이었다. 농업 전반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만 식량자급률을 높이겠다고 이것저것 열심히 스타트는 끊어 놨는데 그 성과를 내 눈으로 확인하기엔 3년이 짧더라. 농업은 1년을 주기로 하기 때문에 때를 놓치면 1년을 허비한다. 지난해 참깨 수매비축 시범사업을 성공했더라면 올해부터 확산이 됐을 텐데 작황이 무너지면서 시작하지 못했고 올해로 넘어와버렸다. 1년 농사주기와 같이 가는 게 수급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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