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편백나무 농민, 10년 집념으로 상식을 뒤집다

  • 입력 2021.04.11 18:00
  • 수정 2021.04.11 20:06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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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포천편백나무농원에서 편백나무를 키우는 우세균씨가 자신의 키보다 더 크게 자란 편백나무를 돌보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 나무가 자라려면 6~7년은 키워야 한다고 하네요.
포천편백나무농원에서 편백나무를 키우는 우세균씨가 자신의 키보다 더 크게 자란 편백나무를 돌보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 나무가 자라려면 6~7년은 키워야 한다고 하네요.

 

세간을 뒤집은 LH 사태를 떠올릴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그려지는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많은 언론이 기사와 함께 내보내선지는 몰라도, 아무래도 급하게 심어 이제 막 땅에서 솟은 어린 나무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농작물도 아니고 고작 나무를 심어 농민 행세를 하는 것이 기막히다는 반응도 종종 보이곤 하는데요, 사실 나무를 재배하는 것도 좁게는 임업, 넓게는 농업의 범주에 포함된답니다. 그런고로 진짜 ‘나무농장’의 모습이 궁금해진 김에, 제대로 그리고 의미 있는 나무농사를 짓는 농토를 찾아가 봤습니다.

과수원집 아들로 자랐다는 우세균(72)씨는 성공한 사업가로 성년을 보내다 은퇴한 뒤, 환갑 나이로 편백나무 재배에 몸을 던졌습니다. 우씨의 농사는 흔히 볼 수 있는 귀농·귀촌의 영역이 아니라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는데, 그 이유는 그가 편백나무 농원을 차린 지역이 경기도 포천시였기 때문입니다.

편백나무는 천연 항균 물질로 유명한 ‘피톤치드’를 유달리 많이 내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덕분에 전남 장성군이나 경남 남해군 등 남부지방에는 편백나무로 치유 목적의 휴양림을 조성하기도 했죠. 어르신들에겐 일본에서 전래된 편백나무 욕조 ‘히노끼탕’도 익숙할 텐데, 마찬가지의 이유로 가구나 주택 내장재 등의 영역에서 최고급 재료로 취급됩니다. 잎을 짜서 만든 오일도 천연 방향·살균제로 인기가 높으니, 말 그대로 버릴 것이 없는 나무입니다.

그러나 우씨가 편백나무에 주목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강한 병충해 저항성입니다.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재선충병이 우리나라에서도 확산하면서, 곳곳에서 수없이 죽어 나가는 소나무와 잣나무들을 보고 충격을 받은 우씨는 편백나무를 대안으로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임업계 상식으로 통용되는 부분이지만, 문제는 편백나무가 자랄 수 없는 곳에서 재배를 결심했다는 점입니다. 재선충병 확산이 가시화 되자 남부지방에서는 일찌감치 편백나무를 조림사업 대체수종 1순위로 삼았지만, 너무나 떨어지는 추위 저항성 때문에 ‘동장군’이 종종 오시는 중부지방에서는 심을 엄두를 내지 못하던 수종이었습니다. 이점이 오히려 우씨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노후 준비는 해두었고, 남은 생은 재선충 때문에 망가진 우리 산림의 복원에 바쳐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런데 위쪽 지방에는 편백나무가 자라지 않잖아요. 북쪽에서도 편백나무가 자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산림청 박사며 나무 재배하는 사람이며 다들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렸죠.”

편백나무 잎.
편백나무 잎은 그 그윽한 향 덕에 추출물로 탈취제를 만드는 데 쓰입니다.

2010년대 전후 편백나무의 재배한계선은 영호남 북단까지로 여겨지고 있었고 그래서 아무도 성공할 거라 말해주지 않았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씨는 결국 이 추운 곳에서 편백나무를 기르는데 성공했고, 재작년부터 출하를 시작한 뒤론 깜짝 놀란 산림 관계자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았다고 합니다(우씨는 특히 자신의 사례를 전파하는데 앞장서 준 남궁종 포천시 산림조합장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요즘은 그 추운 강원도에서도 사과가 빨갛게 익는다는데, 혹시 이상기후가 긍정적 효과를 준 것은 아닐까 싶어 우씨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마침 산림청 산하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년 전 ‘편백나무 조림가능 지역지도’라는 것을 펴냈는데요, 편백나무의 각종 효능이 알려지면서 지자체나 산주들의 식재 선호도가 매우 높아짐에 따라 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전국 어디서나 자랄 수 있는 나무가 아니기 때문에 많은 돈을 들여 심었다가 냉해로 고사하는 참사를 막고자 만든 참고자료인 셈이죠. 그렇게 만든 가장 최근의 자료에서도 산림청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경기, 강원, 충북, 경북 북부에서의 생존률은 40% 이하로 ‘조림 불가’”

물론 우씨가 성공했다고 해서 이 연구 자료를 무시할 수 있는 건 결코 아닙니다. 이북 개성과 위도가 같을 정도로 북쪽에 위치한 이 지역에서 편백나무가 자랄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우씨의 노력과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2008년부터 도전해 거의 10년 만에야 상품성 있는 4~5년생 편백나무 묘목을 출하할 수 있었으니 참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나무가 심을 땅을 고르고 다지는 데만 3년이 걸렸고 그 뒤로도 식재는 줄줄이 실패했는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씨앗이 죽어나갔습니다. 추위에 약한 편백나무가 스스로 내한성을 지닐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딱 죽지 않을 만큼만 보살피는’ 재배방법을 완성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육묘장에서 하는 것처럼 여기서도 비닐을 치고 나무를 보살피면 크기야 하겠죠. 하지만 그런 나무를 내놓는다 한들 과연 밖에서 살 수 있을까요?”

농장을 방문했던 날, 양평군청에선 1m 가량 자란 편백나무 묘목 1,000개를 구매하기 위해 트럭을 보냈습니다.
농장을 방문했던 날, 양평군청에선 1m 가량 자란 편백나무 묘목 1,000개를 구매하기 위해 트럭을 보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우씨가 편백나무 재배에 성공한 뒤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 곳은 바로 조림사업의 의무를 진 기초 지방자치단체들입니다. 특히 그동안 편백나무를 심기 어려웠던 경기도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부천시의회에서는 올해 ‘소사편백나무테마파크’를 만드는데 쓴다며 의원들이 견학을 다녀가기도 했고, 양평군에서도 군수가 직접 찾아와 묘목을 살펴보고 갔다고 합니다.

제가 찾아간 날에도 오전부터 양평군 상징이 박힌 커다란 트럭에 5년생 묘목 1,000개를 싣는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미세먼지가 나날이 심해지는 한편 산림의 공익적 가치가 주목 받는 상황에서 ‘치유’의 기능을 가진 편백나무는 당연히 관심이 갈 법한 수종인데, 심어봤자 죽을 것이 뻔해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죠. 한편으론 노인들을 돌보는 요양원에서도 많은 수요가 있다고 하네요.

“처음에는 엄청 싫었죠. 아이고, 무슨 고생이냐고. 그래도 어떡해요. 가지치기는 아무한테나 시킬 수도 없으니.”

“돈이 생기면 밭에다 넣으니 아내가 싫어할 수밖에요. 제 일처럼 성실한 외국인 친구들도 그렇고 고맙죠.”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두 명에게 거처를 제공하며 함께 일하는 우씨는 이들이 제 일하는 것처럼 성실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한 농가가 발주한 ‘1m50cm 묘목 20개’를 뽑아내라는 주문을 받자 목표한 높이를 시각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줄자를 사이에 두고 한참을 서 있는 모습입니다.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두 명에게 거처를 제공하며 함께 일하는 우씨는 이들이 제 일하는 것처럼 성실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한 농가가 발주한 ‘1m50cm 묘목 20개’를 뽑아내라는 주문을 받자 목표한 높이를 시각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줄자를 사이에 두고 한참을 서 있는 모습입니다.
덜 큰 편백나무 묘목들 사이로 전정 작업에 열중인 여성 농촌노동자들의 얼굴이 간신히 보입니다.
덜 큰 편백나무 묘목들 사이로 전정 작업에 열중인 여성 농촌노동자들의 얼굴이 간신히 보입니다.

이제 봄을 맞아 농원 사람들은 매일같이 나무를 돌보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남편을 말려보기도 했던 아내 김지숙씨는 이제 전정의 도사가 됐습니다. 2만5,000평 밭에 심긴 나무만 40만주가 넘는다고 합니다. 한 그루 한 그루 모두 밑가지를 잘라주고, 일정 수준 클 때마다 간격을 넓혀 새로 이식해주는 등 꾸준히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만 수년을 버티며 올곧게 자랄 수 있습니다.

“저는 다음에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지금은 새로 씨도 뿌리지 않고 있어요. 자라고 있는 나무들이 다 나가고 나면 편백나무 재배가 더 널리 퍼지도록 애쓸 생각이에요.”

우씨의 꿈은 자신의 ‘포천편백나무농원’을 시작했던 연유와 같이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편백나무를 재배케 하는 것입니다. 특히 그는 경기도에서도 정주여건과 산업 발달에 불리해 지방소멸지수가 가장 높은 북부 지역에 관심이 많습니다. 산림이야말로 이들 지역의 미래와 소득을 담보할 수 있는 새로운 자원이라는 생각때문이죠. 그래서 그는 조만간 후계 ‘나무농사꾼’들을 육성하는데 전념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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