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일상

  • 입력 2021.04.06 09:51
  • 기자명 최요왕(경기 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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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왕(경기 양평)
최요왕(경기 양평)

새벽 다섯시. 아내 알람에 깬다. 이사람 또 못 일어나겠지 짐작하며 다시 잔다. 설풋 자다가 다섯시 반쯤 됐을 건데, 이사람 아직 안일어났구만 동시에 느낌이 와 일어난다. 역시나 주로 아직 불이 안켜져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일어나소. 다섯시 반이네.” 화들짝 깨어나는 아내를 두고 다시 이불속에 눕는다. 마지노선으로 사십분에 맞춰진 내 알람이 울릴 때까지만이다. 단 십분의 달콤함.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 옷을 주워 걸치고 밖에 나가 차 시동부터 걸어 차를 뎁혀 놓는다. 겨울철에만. 앞 유리 성에도 제거. 얼른 들어와 화장실로. 운행 도중 대장에 소식이 오면 난감하니 필수 코스다.

밥 한그릇 락앤락에 챙긴다. 농장에서 일하다 먹을 아침 도시락이다. 봉지 커피 두 잔 후딱 타서 아직도 화장이 덜 끝난 아내보다 먼저 나온다. 나오기 전까지 담배 한 대 필사적으로 흡입.

보통 여섯시 전후로 출발한다. 아내는 타자마자 곯아떨어진다. 불쌍하고 짠하고 미안하다. 회사까지 데려다주지는 않는다. 보통은 서울 도심에 진입하기 직전 전철역까지만이다. 그러면 한시간 걸린다. 겨울철에는 집에 돌아와도 아직 일곱시면 날이 새지 않아 밭일을 할 상황도 안되고 아내도 추울 거라 회사까지 데려다주는데 그러면 한시간 삼사십분 걸린다. 그 다음에야 내 농사 일과가 시작된다.

연애 때 귀농할 거라는 내 고집은 아내 설득으로 포기하고 1997년 결혼하면서 10년 뒤에는 귀농하는 거로 타협을 했다. 2004년에 귀농을 했으니 비슷하게 이뤄진 셈이었다. 그런데 땅도 돈도 없는 상태로 맨땅에 헤딩하는 농사로는 가계를 책임질 수 없는 건 자명하여 아내가 회사를 그만두게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의 일을 존중하는 게 맞지. 귀농 장소를 결정하는데 서울에 있는 아내 회사로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을 고르고 골랐던 이유다.

2006년 식구들이 모두 서울에서 내려와 2년 동안의 귀농 홀아비 생활을 끝난 시점부터 아내 출근 운행이 시작되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일상으로 자리를 잡게 된 거다. 아내의 일상이 유지되어야 집안 전체의 일상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내가 농사를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든 농사가 원래 돈이 안되는 일이라서든 중요치 않고 출근 운행에 문제가 생기면 안되는 것이었다.

아내 회사 특성상 일곱시나 일곱시 반부터 업무가 시작되니 죽으나 사나 그 시간에 맞춰야 되는 거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사람들 만나기를 즐기는 내 취미를 참고 살아야 되었고 농사일에도 꽤 지장이 있었다. 새벽부터 오이를 따고 딸기를 따는 게 시설 재배 농사꾼의 당연한 일과인데 운행을 마치고 밭에 가면 이미 일곱시가 넘어 있게 된다. 부지런한 농사꾼들 같으면 이미 한두 시간 전부터 시작해서 오이고 딸기고 다 따놓고 포장에 들어가는 시간에 시작이니 여름만 되면 아침마다 애가 탔었다.

그런 세월이 그러저러 15년간 지속되다 보니 이젠 그러려니 하고 그 틀에 맞춰 하루 일과를 준비하고 일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밭일을 시작한다고 농사가 안되는 것도 아니고 평일에 1박 이상으로 나다니지 못한다고 인간관계가 깨지지도 않는다.

농사가 내 하고 싶어 하는 일이나 집안 경제를 책임지지 못한다. 그 짐의 대부분을 짊어지고 있는 아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가 매일 출근 운행이다. 아내가 직장을 그만둬도 내 농사로 살림을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이제는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다. 일상이 그대를 구원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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