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식량위기 시대 농지를 농지답게, 적정 규모의 농지보전 시급하다

  • 입력 2021.04.04 18:00
  • 기자명 오순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순이 정책위원장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광주전남연합)
오순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경기도 시흥시 신도시 개발지역 농지 투기 사건은 정치권으로 번져 온갖 군데서 비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개발정보를 미리 알고 땅을 사들인 공직자 윤리위반으로만 해석해도 될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현행 농지법이 경자유전의 원칙을 훼손하고, 농민이 아닌 사람이 쉽게 농지를 취득할 수 있게 열어놓아 농지법을 전면 개정하지 않고서는 제2의 LH 사태가 언제든 터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1996년 농지법이 개정되기 전 마을에 농지관리위원회가 있어 최소한 마을의 농지가 누구에게 거래되는지는 알고 있었으나 지금은 알 수가 없다. 더구나, 수차례 농지법 개정으로 마을 농지관리위원회가 폐지되고, 통작거리(주거지에서 농지까지 거리) 제한이 없어지고, 6개월 거주기간이 없어지면서 농지는 투기꾼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젠 마을에서 영농을 위해 꼭 필요한 농로를 확장하려 해도, 중간에 걸친 땅 주인이 누군지 몰라 포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마을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농로에 외지인이 울타리를 치거나, 건축물 등이 생겨나 영농활동에 불편을 끼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금 농촌을 지나다 보면 태양광 패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간 농촌은 국민들에게 고향 마을에 대한 향수와 마음의 안식처로서 역할을 해왔다. 앞으로 난개발로 파헤쳐진 농촌에 누가 오겠는가. 전라남도는 땅값이 싸다는 이유로 풍력, 태양광이 간척지 및 우량농지에 마구잡이로 들어서고 있어 농지가 급격하게 훼손되고 있다. 화순군에선 풍력발전기로부터 마을까지의 이격거리를 이전보다 반으로 줄이는 조례가 개정돼, 팔순이 넘은 촌로들이 이격거리 원상복구를 외치며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싸우고 있다.

그뿐인가. 작년에 실시된 소농직불금을 둘러싸고, 농지를 빼앗기거나 직불금을 받지 못한 임차농들의 피해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비농민의 농지소유가 늘어나고, 8년 경작 시 양도세 면제 혜택을 받기 위한 부재지주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상속·이농의 경우 3,000평까지 소유가 가능하고, 농어촌공사에 위탁하면 무제한 소유 가능하도록 농지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국회의원 1/4과 사법부 대다수가 농지를 소유하고 있어 농지 개혁은 천지개벽을 해야 가능하다는 한숨 섞인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영농형태양광으로 일반 영농 대비 1.5배의 수익을 보장하고 농민들이 투자하는 태양광에 대한 지원 혜택을 늘리자, 이를 노리고 가짜 영농형 시설이 늘어나고, 아파트 당첨권을 사고 파는것처럼 허가권을 다시 되팔아 부당이익을 누리는 투기 세력까지 생겨나 농민들 간의 불화감이 조성되고 상대적 박탈감마저 커지고 있다.

그간 농지법은 경자유전의 원칙을 무너뜨린 방식으로 수차례 개정됐다. 21대 국회에도 농지법 개정안이 여러차례 올라오고 있다. 심지어 영농형태양광을 핑계로 절대농지인 농업진흥구역까지 훼손하려는가 하면, 타용도 일시허용기간을 늘려주는 식으로 개발업자의 이익을 위해 농지가 충분히 훼손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법안들만 즐비하게 올라오고 있다.

이런 식으로 농지법이 훼손되면서, 전체 국토에서 차지하는 농지면적이 1975년과 비교해 절반으로 반토막 났다. 얼마 전 호주에서는 홍수가 나 전 국토가 물바다가 됐다. 미국에서는 거대한 산불이 몇 달간 지속되기도 했다. 지난해 이상기후로 수확량이 급감해 농민들의 피해가 심각했다. 4월에나 피어야 할 꽃들이 3월 중순에 한꺼번에 피어버려 올해도 농업재해가 심각해질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식량 수입국인 대한민국은 지금 식량위기를 걱정해야 한다. 그렇기에 식량자급을 위한 적정규모의 농지확보는 그 어떤 사안보다 시급하다. 하지만, 문재인정부는 말로만 그린뉴딜을 외치고, 농업은 안중에도 없고 농지파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농촌의 고령화가 심각하다. 그 말은 상속농지는 갈수록 늘어나 비농민의 농지소유 비율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의미다. 소유규제를 강화해 영농활동을 하지 않는 비농민의 농지를 강제처분토록 해야 한다. 농지가격이 너무 올라 농민이 농사지어서는 농지를 살 수 없는 구조다. 농촌에 후계농들이 들어와 정착하기 위해서라도 농지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이 농지개혁의 적기다. 농지 전수조사를 통해 농지 소유 실태를 파악하고, 농지청을 신설해 상속농지 등 비농민의 농지를 국가가 사들여 농민이 이용가능하게 되돌려 줘야 한다. 농지는 국민의 식량을 책임지는 중요한 공공재다.

 

키워드
#농정춘추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