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 농지대책, ‘농지 후진국’ 전락 못 막아

“투기 사건 터질 때마다 대책 요란 … 여전히 부실”

경자유전 실현·비농민 농지 소유 금지 ‘핵심’ 빠져

전농, ‘농지 전수조사’로 현재 농지 투기 징벌부터

  • 입력 2021.04.02 09:30
  • 수정 2021.04.02 09:37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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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를 통해 “투기 목적의 토지거래로 수익을 기대할 수 없도록 하고, 농지 취득 심사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를 통해 “투기 목적의 토지거래로 수익을 기대할 수 없도록 하고, 농지 취득 심사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제공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투기 문제로 촉발된 농지 투기의 심각성이 수술대에 올랐으나 소독약 처방으로 끝났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현수, 농식품부)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농지관리 개선방안’은 사전규제를 풀던 기조를 전환한 것에 의미가 있을 뿐 농지문제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는 평가다. 현재 만연된 농지 투기를 징벌할 수 있도록 농지 전수조사부터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문재인정부가 ‘부동산 투기근절 및 재발방지’를 선포하면서 지난달 29일 대대적인 투기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LH 부동산투기의 99%가 농지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이번 정부대책에는 ‘농지’ 투기근절 방안도 함께 발표됐다.

농식품부가 마련한 농지관리 개선방안은 크게 △농지취득 심사 강화 △사후점검 강화 △부당이득 환수 3단계다. 그동안 농지정책은 개방화·고령화에 대응해 농업인력·자본유입을 명목으로 농지취득 문턱을 낮추는 방향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농지취득 심사가 강화된다. 주말·체험영농 용도를 비롯해 농지를 취득할 때 소유농지 이용실태·노동력 확보방안 등 기재사항을 의무화하고 농업경영체등록증·자금조달계획서 등 관련 서류 제출도 의무화 된다. 농지위원회를 설치해 농지취득 자격 심의를 강화하며 농지취득자격증명 발급 민원처리도 7일로 늘린다. 특히 투기우려지역과 인근 농지는 반드시 농지위원회 심의를 받도록 했고, 농업진흥지역 내 농지는 주말·체험영농 목적 취득이 제한된다.

신규 취득 농지 중 도시근교에 위치해 투기가 우려되는 경우, 매년 1회 이상 지자체가 농지가 제대로 이용되는지 의무적으로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 아울러 부동산업을 영위하는 불법 농업법인은 설립부터 운영까지 규제가 강화된다. 지자체는 농업법인의 실태조사 역시 1년마다(현행 3년) 의무 시행한다.

농지 관련 불법 행위에 대해선 제재수단을 강화하고 부당이득은 환수된다. 농식품부는 투기목적으로 취득한 농지는 처분의무기간(현행 1년) 없이 즉시 처분명령을 내린다. 강제처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처분명령을 따르지 않을 시 이행강제금 산출기준을 현행 공시지가 기준에서 공시지가와 감정평가액 중 높은 가격으로 부과해 부담을 높이고, 부과수준 역시 매년 토지가액의 20%에서 25%로 높인다. 불법으로 취득한 농지는 토지가액과 연동해 벌금을 부과하며, 불법 취득·임대차 등을 중개한 곳도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신설했다.

농식품부는 농지 불법행위 단속을 강화하기 위해 농지 ‘특별사법경찰제’ 도입, 농지정보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기존 농지원부를 ‘농지대장(필지별 작성, 농지 소재지 관할, 모든 농지 대상)’으로 전면 개편해 관리해 나갈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이번 정부 발표는 투기근절의 요란한 분위기는 조성했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이 현장 여론이다.

박형대 장흥군농민회 부회장은 “정부는 항상 농지를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현실은 농지가 공공기관 직원들의 투기판이 되지 않았나. 이번 농식품부 농지관리 대책도 뭔가 달라지는 것 같은 분위기는 연출했지만 알맹이는 하나도 없다. 지금 필요한 건 비농민의 농지 소유를 원천차단하겠다는 정책의 분명한 전환인데, 대국민 메시지로도 약한 발표였다”면서 “문재인정부가 어떤 사건에 말만 쎄게 하고 결과는 별로 없는데, 농지관리 대책도 똑같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농지는 농민만 소유하되, 농민규정을 더 엄격히 하는 정책 방향이 마련돼야 한다. 농지에 대한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는데 정부가 사후약방문 식으로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것만 제시했다. 농지심의위도 그럴듯해 보이지만 설치하고 역할만 주는 것으론 부족하다. 농촌 특성상 혈연·지연·학연에 얽혀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법적 권한을 주되 책임의무까지 부여한 대책이 추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농민들이 일상적으로 농지관리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구조를 바꾸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병옥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농지제도개선 소분과장은 한마디로 “정부가 너무 급하게 대책을 내놨다”고 아쉬워했다. 조 소분과장은 “농지문제는 종합적이고 다각적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번 발표처럼 급조한 대책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장상환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이사장(경상대 명예교수)은 “상속농지, 이농한 사람들의 농지 등은 정부가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이번 대책의 가장 큰 한계”라면서 “이미 위법한 농지나 편법농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농지소유주와 실경작자의 관계를 철저히 확인하는 방안이나 농지의 시세차익 기대심리를 근절하는 측면에서도 미흡한 대책이다.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좀 더 촘촘한 농지 투기 근절 방안이 필요하다. 최소한 농지관리 체계를 일원화하는 기구라도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지난달 31일 각각 성명을 내고 정부가 밝힌 농지관리 개선방안에 대해 ‘경자유전 실현과 농지 투기 방지에 매우 미흡하다’고 밝혔다. 특히 전농은 “가짜농민과 투기농지를 적발하기 위해 농지 전수조사부터 시행하고 징벌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헌법 121조에는 ‘경자유전’을 명시하고 있다. 농민만 농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체 농지의 47.2%가 임차농지고, 전체 농가의 51.4%가 임차농가다. 농업진흥지역의 농지면적은 전체 농지면적의 48%에 불과하다. 매년 2,000ha 이상의 농지가 전용되고 있다. 식량생산의 근간이 되는 농지의 소유와 보전에 있어선 후진국임을 부인할 수 없는 지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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