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추도 저 배추도, 농사의 시작은 육묘장에서

  • 입력 2021.03.28 18:00
  • 수정 2021.03.28 19:05
  • 기자명 한우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강원도 홍천군에서 삼포육묘장을 운영하는 이규성씨가 고추모가 자라는 드넓은 시설에서 생육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설 면적 대부분은 농가와 계약한 원예 모종을 기르는데 쓰이지만, 텃밭이나 다품종 농사를 짓는 이들을 위한 화훼·나물류·떡잎류 등의 모종도 기릅니다.
강원도 홍천군에서 삼포육묘장을 운영하는 이규성씨가 고추모가 자라는 드넓은 시설에서 생육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설 면적 대부분은 농가와 계약한 원예 모종을 기르는데 쓰이지만, 텃밭이나 다품종 농사를 짓는 이들을 위한 화훼·나물류·떡잎류 등의 모종도 기릅니다.

 

‘모’를 아십니까? 농업에서 말하는 모는 따로 옮겨 심을 작정으로 기른 씨앗에서 난 싹을 말합니다. 이런 싹을 기르는 걸 육묘라 하고, 농촌 곳곳에는 이 일을 담당하는 전문 육묘장들이 있지요. 해마다 영농철이 되면 많은 농민들이 육묘장에서 모를 구매해 농사를 시작하곤 합니다.

그냥 땅에 씨앗을 뿌려 키우면 될 텐데 굳이 왜 힘들여 또 옮겨 심으려 할까요? 또 농민들은 왜 직접 씨앗을 기르지 않고 비용을 들여 구매해가며 농사를 지을까요? 본격적인 영농철을 앞두고 한창 바쁜 육묘장을 찾아 답을 구해봅니다.

“밭에서 농사짓는 것의 95%는 키우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외삼포리에서 ‘삼포육묘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규성씨는 경력 30년이 넘은 육묘전문가입니다. 300평 단동하우스에서 육묘를 시작한 이씨는 이제 4,000평 규모 시설에서 주력인 고추모를 비롯해 다양한 밭작물 모종을 생산합니다. 전국 곳곳의 농산물 주산지에서는 종자의 품질과 육묘 수준을 중히 여겨 거리에 관계없이 좋은 육묘장과 거래하려고 한다는데요, 삼포육묘장 역시 주변 농가는 물론이고 가까이는 도내 고랭지 배추재배지, 멀게는 전라남도 진도까지도 모를 보낸다고 하네요.

일반적으로 농사라고 하면 토양에 씨를 심고 완전히 자라 결실을 맺을 때까지 돌보는 일련의 과정을 표현하지만, 작목에 따라서는 보다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듦에도 불구하고 육묘의 과정을 따로 거쳐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쌀이 대표적인데, 잡초의 성장을 억제코자 물속에 심기 위해 벼 육묘장에서 어느 정도 키운 모를 옮겨 심는 방법이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온실 속 화초’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씨가 운영하는 육묘장은 주로 이런 역할을 담당합니다. 어린아이가 어른보다 질병에 취약하듯 채소들 중엔 온도와 햇빛을 조절해주며 보호해야만 좋은 결과를 내는 친구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기르는 과정이 복잡하고 투입시간도 긴 고추모는 많은 육묘장에서 주력으로 삼는 상품이죠. 또한 어떤 이유로든 씨앗보다 훨씬 부피가 큰 모종을 심기에 땅에 직접 뿌리는 것보다 종자를 아낄 수 있고 밀집재배도 용이해집니다. 이러나저러나, 결국은 소득을 위해 농사지을 때 중요한 ‘생산성’과 ‘상품성’을 담보하기 위함입니다.

“1월부터 해서, 고추모를 다 기르는데 거의 110일에서 120일이 걸려요. 모판에 씨앗을 뿌린 뒤 자라면 400주가 들어가는 파레트에 옮겼다가, 더 자라면 다시 72주짜리 파레트로 옮겨서 기른 뒤 출하되죠. 이걸 다 사람 손으로 해야 하는 거에요.”

농민들이 육묘를 직접 하지 않고 남의 손에 맡기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농업이라는 산업의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농민들은 농가소득 유지를 위해 더 많은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동시에 이제 개인이나 가족 단위 노동력으로는 영농의 모든 과정을 감당할 수 없게 됐습니다. 농민들은 기계의 힘을 빌리고, 추가적인 노동력을 확보하며, 스스로 수행했을 때 효율이 떨어지는 생산 과정의 일부는 위탁해가며 영농을 감당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위탁’의 영역에서 육묘업은 성장이 가장 돋보이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통계에 잡히는 숫자만 봐도, 지난 2010년 159ha 수준이었던 전국의 육묘 재배면적은 2018년엔 290ha까지 급증했죠.

파레트에 상토를 담고(위), 토마토 모종을 새 파레트에 옮기는 이주노동자들. 농민이 직접 육묘를 하려면 초기 시설투자비용도 많이 들지만 각종 농자재를 구입·관리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많은 노동력을 투입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육묘장에는 많은 인원이 필요한데, 이곳에는 이주노동자를 포함해 상시로 근무하는 14명에 더해 지역주민들도 종종 단기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파레트에 상토를 담고(위), 토마토 모종을 새 파레트에 옮기는 이주노동자들. 농민이 직접 육묘를 하려면 초기 시설투자비용도 많이 들지만 각종 농자재를 구입·관리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많은 노동력을 투입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육묘장에는 많은 인원이 필요한데, 이곳에는 이주노동자를 포함해 상시로 근무하는 14명에 더해 지역주민들도 종종 단기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작업의 기계화율이 100%에 가까운 논농사의 경우 300평 당 약 10.5시간의 노동력이 요구되지만, 밭작물 가운데서도 재배가 고되기로 유명한 고추의 경우는 무려 142시간이나 필요로 한다고 합니다. 농민들은 이제 직접 육묘를 하기보단 그 시간을 이용해 더 많은 농사를 짓거나 농외소득을 벌려고 하니, 농촌사회에서 육묘장의 역할은 나날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집에서 손으로 씨앗을 놓는 육묘랑은 비교할 수가 없어요. 여기선 반자동식 기계로 씨앗도 정교히 심고, 하우스비닐은 2중에 저녁에는 커튼을 치고, 온풍기도 켜서 온도를 최적으로 맞춰주거든. 생산량도 달라. 스스로 해도 고추는 달리지만 이렇게 키운 것보다는 수량이 적어요.”

물론 농민이 자가로 육묘를 하는 경우도 여전히 적지 않지만, 의존도가 가장 높은 고추의 경우 이제 절반이 넘는 고추농민이 육묘를 위탁하고 있다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결과도 있습니다. 이렇게 대형 연동하우스에서 시설을 갖추고, 많은 인원들이 상시로 신경 쓰며 기르는 모종의 품질이 월등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무래도 당연하겠죠. 이씨의 육묘장은 상시근무인원만 14명, 바쁠 때는 주변의 주민들도 단기근무로 고용해 출하에 전념합니다. 이씨의 육묘장에서 한해 기르는 고추모 수만 250만주로, 1평에 8주를 심는다고 가정하면 무려 30만평 이상의 고추밭을 만들 수 있는 엄청난 양이지요. 고추모 대부분은 이미 주인이 정해져 있는데, 연말연초 농가가 원하는 품종과 물량, 출하시기를 일러주면 이씨가 이에 맞추는 계약재배의 형태로 기릅니다.

육묘장은 농가뿐만 아니라 도시민들에게도 열려있습니다. 텃밭을 돌보거나 소위 ‘베란다농사’를 짓는 도시농부가 160만명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육묘장들은 이제 화훼류와 봄나물, 심지어는 각종 향신료의 원료가 되는 떡잎식물도 들이며 다양한 구색을 갖추고 있습니다. 모종 키우기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는 이씨 역시 소비자의 취향 따라, 원하는 물건은 종류를 막론하고 키워낸다고 하네요. 농촌 영농환경의 변화가 농업에 관심 있는 도시민들의 진입장벽도 덩달아 허문 셈이니, 그 수혜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가까운 육묘장을 찾아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