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펜팔① 우리는 펜팔을 했다

  • 입력 2021.03.28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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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가슴 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

하얀 종이 위에 곱게 써내려간

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버렸네…

1973년에 발표된 포크 듀엣 ‘어니언스’의 ‘편지’라는 노래다.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야 읍내 빵집일 수도 있고, 놀이터 철봉대 옆 벤치일 수도 있으며, 도서관 앞이거나 혹은 어느 공중전화 부스 앞일 수도 있다. 무슨 영문인지 답장을 끊어버린 소녀에게, 사내아이는 용기를 내어서 또 한 통의 편지를 썼던 것이다. 마지막이어도 좋으니 한 번 만나자고….

이윽고 소녀가 나타났다. 반갑다. 그러나 소녀는 편지 한 통을 말없이 건네주고는 종종걸음으로 멀어진다. 소녀의 편지에는 눈물자국이 배여 있다. 편지를 받아든 남자아이는 그만 헤어지자는 소녀의 편지를 읽으며 투박한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다. 이제 그는 집에 돌아가서도 한동안 된 가슴앓이를 할 것이다.

유행가는 그 노래가 유행하던 시대의 거울이다. 197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이 즐겨 불렀던 ‘편지’라는 그 노래를 요즘 아이들에게 들려준다면…아마도 대부분 하품을 할 것이다. 사실 나도 여기까지 쓰고 보니 뭔가 ‘신파’ 냄새를 풍길 것만 같아서 뒷덜미가 스멀거린다. 편지가 종적을 감춘 디지털 시대에 그것도 ‘펜팔’ 얘기라니…아니, 오히려 그래서 그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2001년 12월의 어느 주말, 동해안에 있는 한 콘도미니엄에서 삼사십 대의 중년남녀 10여 명이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자, 우리가 비록 번개답사를 오긴 했지만 황금 같은 주말 시간을 쪼개서 모였는데, 동해바다 한 번 쓱 건너다보고 나서 밥이나 해먹고 집에 갈 수는 없잖아요?

-어이구 ‘알라’님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자, 내일 답사할 건봉사(乾鳳寺)에 대한 자료를 준비해 왔으니까 잠깐씩 훑어보세요.

-그럼 일단 ‘새벽기차’님으로부터 건봉사의 연혁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을 들은 다음에….

이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PC 통신 천리안의 우리문화유산답사 동호회 회원들이다. ‘우리 얼’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답사모임은 전국에 수백 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는데, 지금 콘도에 모인 이 사람들은 강원도 지역에 살고 있는 지역회원들인 셈이다. 예정에 없이 갑자기 마련된 ‘번개답사’여서 모인 사람이 10여 명에 불과하지만, 전국단위의 답사를 할 때면 백 명도 넘는 인원이 모인다고 했다. 이들은 나이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성장과정도 다 다르다. 뿐만 아니라 상대를 부를 때에도 본명을 입에 올리는 법이 없다. 들빛, 알라신, 월든, 새벽기차…가 이들의 이름으로 통한다. 그러니까 아무 인연이 없던 이들을 같은 시각, 같은 장소로 불러 모은 매개물이 다름 아닌 컴퓨터 통신이라는 얘기다. 그 자리에 내가 옛 시절의 ‘펜팔’ 얘기를 듣기 위해서 회원인 아내를 따라간 것이다.

“다름이 아니라…예전에 펜팔 하던 얘기를 들어보려고 왔는데요.”

내가 불쑥 그 한 마디를 던져 놓자마자 그들은 ‘건봉사’를 저만치 밀쳐두고는, 제가끔 경험한 펜팔 얘기들을 쏟아낸다.

“펜팔이라면 또…아, 나한테도 가슴 아픈 사연이 있지요.”

“쑥스럽지만, 나는 남편을 펜팔로 만나서 결혼에 골인한, 펜팔부붑니다.”

중구난방으로 펜팔 얘기가 터졌다. 얼른 뛰어나가서 우표라도 넉넉히 사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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