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문재인의 운명, 농민의 운명

  • 입력 2021.03.28 18:00
  • 기자명 박경철 충남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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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4년 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인간 문재인’이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 그의 저서 ‘문재인의 운명’을 구입해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책 내용 중에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아버지는 일제 때 함흥농고를 나왔고 해방 이후에는 북한 치하에서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이 북한에 진주한 짧은 기간 동안에는 농업과장을 역임하기도 했다고 한다. 북한 치하에서 농업계장을 할 당시 문 대통령의 아버지는 공산당 입당을 강요받았으나 끝까지 버텼다고 한다. 그 유명한 흥남부두 철수 후 그의 아버지는 남한에서 공무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북한에서 공산당 가입을 강요받았던 경험 때문에 공직에 나가지 않고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 장사의 길로 갔다고 한다. 가난한 피난민의 삶, 대통령의 어렸을 적 기억이다.

이 이야기가 기억에 뚜렷이 남는 것은 농업과 농민을 대하는 문 대통령의 태도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농고를 나와 관청에서 농업계장과 농업과장으로 근무했다면 농업적 내력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지난 4년간 문 대통령은 농업과 농민에 유독 무관심과 냉대로 일관했다. 이 정부가 진실로 촛불혁명으로 세워진 정부인지, 과연 농업과 농민에 대해 일말의 관심과 애정이 있었는지, 과연 이 정부에서 농정이라는 것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앞으로 얼마나 더 농업과 농촌을 망치고 농민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할지 걱정이 앞선다. 혁명은 늘 배반하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이기에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

문재인정부 농정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잘못된 인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4년간 문재인정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나 꼽으라면 2018년 유엔총회에서 통과된 유엔농민권리선언에 대한 문재인정부의 ‘기권’이다. 자칭 타칭 인권 변호사 출신인 문 대통령이 유엔이 보장하는 농민권리선언에 기권을 했다는 것은 문 대통령의 농정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농민권리선언은 2000년대부터 아시아지역 개도국 농민단체들이 시작해 전 세계로 확대됐다. 농민들 특히 신자유주의 확대로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는 전 세계 소농을 보호하고 그들의 권리를 국가가 보장하도록 유엔 차원에서 마련한 이 선언에 문재인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중국, 북한도 찬성한 이 선언에 우리 정부는 보란 듯 기권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이슈를 집어삼킨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의혹 사건은 문재인정부의 일관된 농업·농민·농촌 무시 정책과 실패의 결과라 할 수 있다. LH 직원 땅투기 의혹의 98.6%가 농지다. 이 정부에 들어와서도 농민단체와 시민단체, 그리고 일부 진보언론에서 농지투기 문제를 꾸준히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별다른 진척은 없었다. 오히려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어가는 등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가 더 확대되고 있는 상태에서 수도권 위주의 대규모 신도시 개발정책을 강행했다. 자가당착적인 정책을 임기 말에 몰아치니 탈이 안 날 수가 없다. LH 직원 땅투기 사태는 정부의 ‘미필적 고의’ 가능성이 크다. 이 정부가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다.

다음 대선이 약 1년 남았다. 문 대통령은 그의 저서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운명이다. 그런데 그것이 꼭 좋았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너무 많아서다”라고 적었다. 마찬가지로 농민들도 운명처럼 문 대통령을 만났지만 지난 4년의 시간이 좋았냐고 물어보면 대다수는 그렇지 않았다고 대답할 것 같다. 분노와 고통의 연속이었다.

이제 남은 임기 1년. 문 대통령의 농정개혁에 이제 시간도 없고 기대도 않지만, 농민의 운명이 너무 가혹하기에 몇 가지 제안해 본다.

첫째, 개혁적 인사로 사람을 바꿔야 한다. “이게 인사냐”고 할 정도로 농정 인사는 망사가 됐다. ‘촛불혁명정부’에서 이런 회전문, 막무가내 인사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이승만도 한때 공산주의자였던 조봉암 선생을 농림부 장관으로 임명해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둘째, 유엔농민권리선언을 토대로 우리나라 농민·농업·농촌 정책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 유엔농민권리선언에는 농민의 정의, 성평등, 종자권, 토지권, 가격결정권 등 농민의 기본권이 다 포함돼 있다. 이를 철저히 우리 농정에 투영해야 한다.

셋째, 강력한 농지보전과 식량 자주권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농지와 먹거리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생명선이다.

마지막으로 농업과 먹거리를 공공재로 규정하고 이를 담당하는 농민의 법적 지위를 준공무원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는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약속한 사항이기도 하다. 이런 요구와 글이 무슨 소용 있겠냐마는 그래도 이번이 마지막 칼럼이라고 하니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적어봤다. 흥남철수 때 문 대통령 선친 가족이 빅토리아호에 승선한 기적처럼 깊은 시름에 잠긴 우리 농민에게도 그런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 부족한 글을 2년 동안 실어준 한국농정신문에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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