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성 없이 ‘반복 또 반복’ … 스마트팜 R&D “도 넘었다”

3,333억원 들이붓는 스마트팜 다부처 패키지 사업

이미 개발 완료됐거나 현장서 활용 중인 기술 포함

농민들 “현장과 동떨어져 의미 없고 예산만 아깝다”

  • 입력 2021.03.28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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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3,300여억원을 투자하는 ‘스마트팜 다부처 패키지 혁신기술개발’ 사업이 현재 활용 중인 스마트팜 기술과 크게 다르지 않아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은 전북 장수의 한 토마토 스마트팜 시설 모습. 한승호 기자
3,300여억원을 투자하는 ‘스마트팜 다부처 패키지 혁신기술개발’ 사업이 현재 활용 중인 스마트팜 기술과 크게 다르지 않아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은 전북 장수의 한 토마토 스마트팜 시설 모습. 한승호 기자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현수, 농식품부)와 농촌진흥청(청장 허태웅, 농진청),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최기영, 과기부)가 올해부터 7년간 국고 약 3,333억원을 투자하는 ‘스마트팜 다부처 패키지 혁신기술개발’ 사업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스마트팜을 운영 중인 현장 농민 대다수는 사업 과제들의 실효성과 현장 적응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2018년부터 3개 부·청이 공동 기획한 스마트팜 다부처 패키지 사업은 기존 스마트팜 연구개발(R&D)과 다르게 ‘데이터에 기반한 지능형 의사결정을 통해 저투입·고효율의 안정적 농축산물 생산을 실현하는 스마트팜 구현’을 목적으로 한다. 해당 사업은 지난 2019년 10월 예비타당성조사를 마쳤으며, 지난해 말 세 기관이 공동 설립한 비영리 공익재단법인 ‘스마트팜연구개발사업단(단장 조성인)’이 사업 전반에 관한 운영·관리를 맡게 됐다. 이와 관련해 당시 농식품부는 “그간 여러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진행되던 스마트팜 연구개발을 통합·투자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이고 농식품부가 기존부터 추진 중인 스마트팜혁신밸리와 스마트 축산 시범단지 인프라를 활용해 스마트팜 기술의 확장성과 경제성, 안정성 등의 실증연구와 사업화도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출범 후 사업단이 기획한 연구과제는 총 48개로 스마트팜 실증·고도화 연구사업과 차세대 융합·원천기술 연구사업으로 나뉘며, 과제당 적게는 9억5,000만원에서 많게는 82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하지만 사업단이 기획한 연구과제의 주요 연구내용이 서로 겹치거나 이미 개발돼 농가에서 활용 중인 것들도 상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예를 들어 ‘시설 과채류 작물의 디지털 재배관리를 위한 의사결정 SW 개발’ 과제의 경우 농진청이 지난 16일 발표한 ‘스마트팜 생산성 향상기술 운영체제(플랫폼)’와 상당히 유사하다. 사업단 과제는 생육·생리상태를 측정하고 이를 모델링하는 한편 생육관리 의사결정 모델을 개발해 실증·상용화한다는 것이 목표다.

농진청이 개발한 플랫폼은 스마트팜에서 수집한 일사량·온도·습도 등 88개 온실 환경 데이터와 관부(뿌리와 줄기가 만나는 지점) 직경과 생장 길이 등 12개 항목의 작물생육 데이터를 인공지능 모델이 분석하고 작물 재배시기와 생육상태에 알맞은 조건을 알려주는 서비스다. 농진청은 해당 플랫폼이 토마토·딸기·파프리카 농장에 적용 가능하다고 밝혔다. 내용상 다른 점이 없어 보이지만 사업단은 해당 과제에 올해 8억5,000만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외에 스마트팜 환경 데이터 및 작물 생육 정보를 수집·분석·표준화하는 과제는 시설원예와 관련된 사업단 모든 과제에 포함돼 있다.

아울러 ‘고생산성 온실 환경 모니터링 및 조절 기술 개발’ 과제는 주요 연구내용으로 고온기·저온기·간절기 생산성 향상을 위한 온실 환경조절 패키지 실증 및 성과분석을 담고 있는데 이는 패키지 사업으로 올해 12억원을 투입하는 ‘수출용 고온다습형 스마트 온실 패키지 모델 개발’ 과제와 15억5,000만원의 예산을 들일 ‘수출용 북방형 스마트팜 패키지 모델 개발’ 과제와 큰 차이가 없다. 또 온실 내부 환경 조절로 작물에 알맞은 생육환경을 갖출 수 있는 스마트팜의 특성상 일부 전문가는 고온다습형이나 북방형 등 외부 환경에 따라 스마트팜을 구분 짓는 게 사실상 의미 없다는 견해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밖에 축산 분야 과제에는 이미 한참 전에 개발돼 현장에서 활용 중인 기술들이 대거 눈에 띄었다. 충남 홍성에서 스마트 양돈 축사를 운영 중인 이도헌 성우농장 대표는 “과제에 제시된 주요 연구내용 중 빅데이터와 관련된 것 대부분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지 모르겠다. 또 축산 분야 과제의 경우 이미 사료업체나 계열업체 등에서 개발해 농가에서 사용 중인 기술들이 상당히 많다”며 “실상 따지고 보면 과제당 몇십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연구기관이나 관련 업체에서 나눠 먹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세금 내는 입장에서 그렇게 예산을 낭비할 바엔 농민 기본소득 개념으로 예산을 전용하는 게 농업 전체적인 측면에서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돼지 경제형질 체중·체척 및 외모심사 정밀 측정·관리 시스템 구축’ 과제가 주요 연구내용으로 삼는 종돈 정밀 선발 예측 모델과 ‘돼지 정밀 모니터링 및 지능형 사양관리 기술’ 과제의 대다수 연구내용은 이미 개발돼 축사에서 사용 중인 기술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축종별 성장 및 생장 예측 모델 개발’ 과제 역시 생체 이미지 및 체중 정보 연계 자동체중 측정 모델 개발을 주요 연구내용으로 삼고 있지만 이는 앞선 과제와 중복되는 동시에 이미 현장에서 활용 중인 기술이기도 하다.

시설원예 농가들 역시 스마트팜·빅데이터와 관련된 정부의 R&D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는 상태다. 스마트팜으로 시설원예 작물을 재배 중인 한 농민은 “농식품부나 농진청 연구과제들을 살펴보면 농업계가 아닌 IT 산업계가 모든 걸 주도해 나간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기술 수준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고 또 인정받아 마땅하지만 지금의 R&D 과제들은 현장과도 한참 동떨어져 있고, 의미조차 없는 게 사실이다”라며 “예를 들어 이미 시스템으로 내부 재배환경을 제어하고 있는데 이런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게 무슨 의미를 갖겠나. 차라리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이나 에너지, 비용 등을 절감하는 방안을 발굴하고 수행하는 게 농업계 발전을 위해 시급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덧붙여 해당 농민은 “스마트팜은 농사짓는 도구에 불과하다. 정부에서는 지금 고도화된 스마트팜을 청년에게 제공해 농사를 잘 짓게 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데, 농사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나 노하우 없이 좋은 도구 쥐어 주는 것만으론 절대 청년농민 농촌 정착이나 농촌 고령화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사업단 관계자는 앞선 과제 연구내역 중복·실효성 논란 등에 대해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에 기반해 시중 기술과 연계시킨 R&D 과제를 기획한 것”이라며 “외부 전문가 등과 수차례 협의를 거쳐 함께 기획한 과제들이고, 연구 내역만 볼 땐 기존 기술 등과 중복돼 보일 수 있으나 공모를 통해 기관 등에서 연구과제계획을 구체화하면 목표 성능이나 효율성, 정확성 등에서 차이가 드러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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