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시민아파트⑦ 대통령, 육사(陸士) 행차하던 날

  • 입력 2021.03.14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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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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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아파트가 생겼다는 것은, 먹고 사는 여러 문제들 중에서 ‘몸 둘 곳’이 해결됐다는 의미일 뿐이었다. 시에서 일자리까지 주선해주지는 않았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서는 제가끔 밥벌이 전선으로 나가야만 했다. 그 벌이 수단이라는 것이 이전에 판자촌에 거주할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남자들은 대체로 건축현장 등에 나가 품을 팔았고, 여인들은 주로 보따리 장사를 했다. 혹은 부부가 함께 행상에 나서기도 했다. 건어물 행상도 하고, 옥수수도 쪄서 내다 팔고, 달고나 장사도 하고, 인근 동대문시장에서 양말 등속을 떼다가 주택가를 돌며 팔기도 했다. 소소한 경제활동이지만 그들에게는 절실한 일이었다. 행상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물녘이 되면 아파트 복도는 팔다 남은 오징어, 명태, 멸치, 미역 등을 싼 보따리들을 현관문 안으로 들이느라 북적거렸다. 더러는 각 호실끼리 물물교환이 이뤄지기도 했다. 그렇게 살았다.

청계천변의 삼일시민아파트 단지에 여름이 왔다. 사람들은 당연히 베란다로 통하는 창문을 열어놓고 지냈다. 어느 집 막론하고 베란다는 온갖 잡동사니들로 어지러웠다. 건축현장에서 사용하는 연장통이며, 아이의 세발자전거며, 팔다 남은 건어물 봉지며…게다가 빨래도 널고 이불도 내다 널었으니 밖에서 바라보면 꽤 볼만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파트 관리원들이 경찰과 함께 복도로 몰려와서는 현관문을 사납게 두드려댔다. 주인이 문을 열자마자 다급하게 소리쳤다.

-507호, 창문 닫아요! 베란다 창문 당장 닫으라고!

-아니, 더워서 열어놨는데 어째서 남의 집 창문을 닫아라 말아라….

-이 사람이 닫으라면 닫을 일이지…잔말 말고 창문 닫고 카텐도 쳐요!

-우리 집은 카텐을 안 달았는데….

-그럼 문 꼭 닫고, 베란다 쪽으로는 나가지도 말고 내다보지도 말아요!

-도대체 무슨 일인지는 알아야….

-아침에 전달 못 받았어요? 조금 있다가 각하께서 저 쪽 3.1 고가도로로 지나가신다고요.

-대통령이 지나간다고요? 아이고, 그럼 창밖으로 손이래도 흔들어 줘야….

-창문 열고 기웃거렸다가 당신 총 맞아 죽으면 아무도 책임 안 져!

그 무렵 박정희는 태릉에 있는 육군사관학교로 자주 행차를 했는데, 청와대를 출발한 차량이 3.1 고가도로를 거쳐서 갔다. 그런데 삼일아파트는 바로 그 고가도로에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행차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아파트 전체에 비상이 걸리곤 했던 것이다.

“태릉 행차할 때 보면 오토바이들이 앞장으로 서고 검은 승용차들이 고가도로에 새까맣게 깔리고 굉장했어요. 경찰들이 미리 몰려와서 베란다 문 닫으라고 고함을 치고…문을 열어놓은 채 집을 비우고 장사하러 나간 집은 경찰이 현관문을 뜯네 마네, 난리가 났지요.”

당시 삼일아파트에 살았던 최일우 할아버지의 증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박정희가 그 구간의 삼일고가도로를 지나다가 비서에게 지적하기를 “이봐, 저 쪽에 있는 숭인상가아파트는 깨끗하던데, 여기 삼일아파트는 왜 저렇게 사방에 빨래가 널려 있고 지저분해!” 그랬다.

그 뒤로 삼일아파트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베란다 바깥쪽에 의무적으로 창문을 달아야 했어요. 덕분에 생전 달아본 적 없는 카텐이라는 것도 치고 살아봤다니까요. 그런데요, 79년 말에 대통령 죽고 나니까, 다들 베란다 창틀에 이불빨래 걸쳐 널고…도로 지저분해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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