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임자도 금대파 고향 떠나는 길

  • 입력 2021.03.14 18:00
  • 수정 2024.03.28 09:22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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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8일 전남 신안군 임자면에서 농민 김정원씨와 함께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수확한 대파를 트럭에 담고 있습니다.
지난 8일 전남 신안군 임자면에서 농민 김정원씨와 함께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수확한 대파를 트럭에 담고 있습니다.

 

겨울 대파 가격의 고공행진에 전국이 놀랐습니다. 1kg에도 못 미치는 대파 한 단 소비자가격이 7,000원에 육박하는 현상이 벌어졌죠. 작년 겨울에 비하면 두 배 이상의 값이라고 합니다. 대파값은 난데없이 왜 이렇게 비싸고, 이 비싼 파값은 누가 다 가져가는 걸까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대파 주산지를 찾았습니다.

우리가 먹는 대파 중 1/3 가량은 전라남도에서 생산되고, 또 그 대부분은 전남 신안군과 진도군에서 자랍니다. 신안군 임자도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대파 주산지로, 해안가 사질토 위에서 해풍을 맞으며 큰 이곳 대파는 전국에서 가장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지요.

아침 일찍 임자도를 찾아 대파 농사를 주력으로 짓는 한 농민을 찾아갑니다. 여기서 만난 김정원씨는 올해 1만8,000평 규모의 대파를 길렀고, 이제 53세로 농민들 가운데선 아주 젊은 축에 속합니다. 젊은 나이 탓에 지역 품목 조직인 ‘임자대파연구회’의 장도 떠맡고 있습니다. 김씨를 통해 대파가 1차 도매시장까지 출하되는 과정을 직접 지켜볼 참입니다.

해가 떠오르자 파를 수확하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김씨는 농장에 직접 숙소를 짓고 태국·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을 장기 고용해 농사를 짓습니다. 남자들이 파를 뽑아 흙을 털어낸 뒤 가지런히 쌓는 동안 여자들은 밭에 설치한 조그만 이동식 천막 안에 앉아 껍질을 다듬고, 800g 혹은 1~2kg씩 단으로 묶는 작업을 계속합니다. 바람을 막을 목적으로 설치한 천막은 대파 수확철 들녘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폭등의 이면, 헐값 4년 고통 감내한 농민들

“자, 화분들 내놔야 하니까 잠깐 로타리 좀 칩시다!”

점심을 먹은 뒤 김씨가 트랙터에 오릅니다. 따로 소득 작물로 키우고 있는 튤립 화분들을 볕에 놓는 일도 급하기에, 잠시 시간을 내 비어버린 대파밭 한 필지를 손봅니다. 농장에서 지낸지 제법 오래된 외국인노동자들은 능숙하게 역할을 분담해 김씨를 돕습니다. 쟁기를 찍고 스프링클러를 제거해 트랙터 앞길을 다듬어주고, 한 명은 살포기를 매고 트랙터를 쫓으며 순식간에 토양살충제 살포를 마치네요.

김씨의 트랙터가 ‘땅’만 갈아보는 것도 참 오랜만의 일이라 합니다. 어떤 작물이 심각한 폭락을 겪으면 ‘시장격리’라고 해서 일부 물량을 시장에 내보내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가 시행되기도 하는데요, 밭작물은 보관도 어려워 대부분 밭째 그대로 갈아버리곤 합니다. 대파값은 최근 4년 내리 저가 행진을 이었고, 가격이 거의 밑바닥에 밀착했던 작년에는 대파를 뽑지도 못한 채 무려 8,000평이나 되는 밭을 그대로 갈아야만 했습니다. 대파를 갈 땐 매워선지 슬퍼선지 모를 눈물이 난다고 하죠. 사실 근래까지 우리가 먹었던 파엔 농민들의 눈물이 배어있던 셈입니다.

무난하게 자랐을 때 1평에서 보통 10kg의 대파가 수확되는데, 유달리 지독했던 작년 폭락사태 때 농가들은 물건을 직접 도매시장에 들고 가도 1kg당 5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아야 했습니다. 농가에 따라서는 소위 원가, 즉 생산비도 건지지 못할 판에 수확을 할 이유가 없었죠. 누구나 TV에서 한번쯤 봤을 장면인데, ‘어차피 보상 나올 텐데 뭐 그렇게 울상이냐’는 반응도 흔한 게 현실입니다. 보상이 나오는 것은 맞지만, 산지폐기한 농가에 지급되는 보전액은 작년 전남도 기준 10a(300평) 당 151만원에 불과합니다. 농촌진흥청이 조사한 전남 대파 생산비가 2019년 기준 185만2,988원(2019년) 수준인 것을 생각하면 ‘다음 농사를 겨우 도모해볼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마저도 전체 재배면적의 1/10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파밭만 생산비를 구제받을 수 있고, 실질 소득은 보전할 길이 전혀 없으니 당장 생계에 위기가 찾아올 것은 말할 것도 없죠. 극히 일부의 농가가 소정의 위로를 받는 모습이 언론에서 확대·왜곡되는 경향이 분명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김정원씨(오른쪽)가 살포기를 등에 맨 이주노동자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대파를 뽑아낸 땅을 갈아냅니다. 김씨의 트랙터가 대파가 아닌 오로지 흙만을 헤집는 것은 참 오랜만의 일이라고 합니다.
김정원씨(오른쪽)가 살포기를 등에 맨 이주노동자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대파를 뽑아낸 땅을 갈아냅니다. 김씨의 트랙터가 대파가 아닌 오로지 흙만을 헤집는 것은 참 오랜만의 일이라고 합니다.

 

오후 두 시, 이제 김씨는 어제 수확한 대파를 도매시장에 내고자 1톤 트럭을 몰고 다시 밭으로 갑니다. 파의 푸른 끝부분(청)이 상하지 않도록, 놀이 블록처럼 가로와 세로, 간격과 위치를 바꿔 가며 쌓습니다. 거기에 중간 중간 파의 숫자를 확인하는 시간도 있어 1톤 트럭을 채우는 데는 생각보다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2kg로 묶은 파 한 단당 포장 작업비 500원을 따로 매겨 노동자들에게 챙겨주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몇 개, 누구는 몇 개… 김씨의 수첩 한 쪽이 숫자로 빼곡하게 찹니다.

 

저 많은 대파가 전부 '1만원 밭떼기'

가는 김에 인근 소농가의 대파도 같이 실어다 팔아주기 위해 다른 밭으로 가는 길, 수확 작업을 하고 있는 대파밭들이 여럿 보입니다. 그런데 오전에 보았던 김씨의 밭과는 풍경이 조금 다르네요. 작업하고 있는 인원이 스무 명 남짓, 천막도 그만큼 더 있습니다. 인근 농로엔 이곳 풍경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국산 고급 대형 SUV들과 25인승 버스가 서 있습니다.

“밭떼기 현장이에요. 스스로 인력을 유지하고 판로 찾고 도매시장에 출하까지 하는 농가는 이제 임자도에는, 아마 올해는 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농민들이 다 늙었으니까. 저렇게 상인들이 수확 인력이며 장비며 다 데리고 와서 바로 가져가는 게 대부분이죠.”

대파 수확이 한창인 지금, 김씨는 아직 대파를 자기 손아귀에 두고 있는 몇 안 되는 농민입니다. 오늘 대파가 떠나는 과정을 김씨를 통해 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거래방식을 ‘밭떼기(포전거래)’라고 하는데, 이 경우에는 대파가 어느 정도 자란 상태에서 상인들에게 수확 작업 일체를 포함해 넘겨버리는 방식입니다. 단점이라면 수확기에 아무리 가격이 올라도 계약 시점의 가격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거래가 발생하는 순간 이미 소득이 정해지는 셈이죠.

신안의 경우 밭떼기는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돼 연초에 대부분 끝났고, 정말 좋은 밭이 평당 1만5,000원, 대개는 1만원 대가 시세였다고 합니다. 만약 도매시장에 직접 판매한다면 지금 평당 3만원은 족히 넘는 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시장에서 값이 오른 만큼 농가들의 소득도 올라야 정상이지만, 그 상승하는 정도가 정비례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죠. 도매시장으로 가기 전에 또 한 번 마진을 떼이는 과정이 자리하는 셈이니까요.

생각해보면 일찌감치 가격결정권을 포기하는 농가들의 심정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이미 4년째 농사를 망치고 있는 상황에서 수확기 적정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에 가깝습니다. 가격 불안정이 쉬이 사라지지 않는 상황에서 고령화와 인력난까지 겹친 것도 한 몫을 하고 있죠. 수확 기간 내내 이주노동자들의 고용을 유지하며 이 과정을 거의 매일 겪어내는데 혹여 대파값이 폭락해버린다면 그야말로 답도 없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김씨가 지난해까지 실제로 겪은 일이기도 합니다.

2kg 단위로 700 묶음에 이르는 파를 겨우 다 담고 결박을 마쳤는데, 배 시간이 빠듯합니다. 임자도는 사실상 육지가 된 인근 지도와 꽤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다리가 없었죠. 다행히 오는 19일에 다리가 개통되니 이것도 이제 옛말이 됩니다만, 농민들은 수십년 넘게 페리선에 트럭을 실어 바다를 건너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김씨와 함께 겨우 오후 4시에 출발하는 페리선에 몸을 싣고 나니, 여기에도 밭떼기의 현장을 다녀온 듯한 5톤 트럭이 웅장한 위용을 뽐내고 있습니다.

지도 점암선착장에 내린 김씨의 트럭은 24번 국도와 무안광주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를 거쳐 드디어 광주 각화동 농산물 도매시장에 닿습니다. 작년 같으면 서울 가락시장을 고려해야 할 양이지만 지금은 대파가 워낙 귀해 광주에 내놔도 좋은 가격을 받는 데는 무리가 없습니다. 하역노동자들의 도움을 받아 한 도매법인 경매구역에 내려놓은 대파는 다음날 새벽 경매를 통해 중도매인들에게 판매되고, 그렇게 최종적으로 김씨의 손을 떠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매출액의 7% 정도가 하역비와 수수료로 지출되지요.

 

뽑아내 흙을 털어낸 대파(왼쪽 위)는 가지런히 쌓은 뒤 천막을 치고 앉아 껍질을 다듬고 단으로 묶습니다(오른쪽 위). 이것을 보통 하루나 이틀 뒤 까지 정리한 다음 트럭에 실어 도매시장으로 직접 실어 나릅니다(왼쪽 아래). 하역노동자들의 의해 하차된 대파는 다음날 새벽 도매법인을 통해 중도매인들에게 판매됩니다(오른쪽 아래).
뽑아내 흙을 털어낸 대파(왼쪽 위)는 가지런히 쌓은 뒤 천막을 치고 앉아 껍질을 다듬고 단으로 묶습니다(오른쪽 위). 이것을 보통 하루나 이틀 뒤 까지 정리한 다음 트럭에 실어 도매시장으로 직접 실어 나릅니다(오른쪽 아래). 하역노동자들의 의해 하차된 대파는 다음날 새벽 도매법인을 통해 중도매인들에게 판매됩니다(왼쪽 아래).

 

사실상 소비자가 절반 이상이 유통마진

김씨가 자신의 영농조건 아래 스스로 추정하는 이번 대파농사 평당 생산비, 그러니까 총 투입비용은 농촌진흥청의 조사치와 비슷한 6,000원 정도입니다. 그리고 지난해 이상기후로 인한 작황부진 탓에 올해 김씨가 확인한 평당 생산량은 평년 대비 30% 이상 모자란 7kg 이하 수준. 사정은 여느 밭에 가도 비슷할 테니, 대파 가격이 왜 이렇게 높은지 대강 이해가 됩니다.

다음날 새벽 김씨의 대파는 kg당 5,000원 수준으로 거래됐습니다. 단순 계산해보면 평당 매출은 최대 3만5,000원. 여기에 생산비와 출하수수료 등을 제하고 나면 평당 순수익은 2만5,000원에 좀 못 미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값이 하락세라지만 농가들 입장에서는 이렇게 팔 수만 있다면 엄청난 가격인 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농가는 김씨와 달리 ‘1만원 밭떼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었죠. 수확에 쓸 인건비와 운송 과정에 필요한 비용은 아낄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익은 평당 수천원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예 팔기조차 어려웠던 작년보다는 사정이 나으니 어쨌든 웃어야 할까요. 이날 김씨가 출하한 1.4톤 분량의 대파는 최근 소비자가로 따져보면 1,000만원에 육박하는 금액이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농가들은 이 중 겨우 2~300만원 수준을 손에 쥔다는 계산이 나오네요. 극단적인 경우 농가에서 소비자에 이르는 동안 생기는 마진이 무려 70%를 넘는 셈입니다.

자력으로 대파를 시장에 내는 김씨의 경우도 올해 많이 벌었다고 할 순 있지만, 이 돈으로 대파값이 폭락세였던 기간 인력과 장비를 유지하느라 진 많은 빚을 겨우 갚을 수 있을 예정입니다. 김씨는 이제 늙고 지쳐버린 농촌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임자도로 돌아갑니다.

“웃기는 거는, 작년에 경매가를 400원 받았는데 소비자가는 2,000원에서 안 떨어졌었어요. 농민들이 자력 출하를 하면서 공급을 조절하고, 유통 단계는 줄여서 소비자는 싸게 사고 그게 바람직한 방향이죠. 상인들에 의해 가격이 좌지우지되기 너무 쉬운 구조가 돼 버렸는데… 안타깝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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