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축산이 만나 기후위기를 준비했다

대표적 ‘농촌형 자립공동체’ 꿈꾸는 원천마을
자립과 상생 의지가 만들어낸 10년의 변화

  • 입력 2021.03.07 18:00
  • 수정 2021.03.09 14:58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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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송영수 이장은 “상생 의지를 가진 축산인이 들어온 이후 마을 발전 계획 수립에 속도가 붙었다”고 말했다. 송영수 이장(왼쪽)과 이도헌 성우농장 대표.
송영수 원천마을 이장은 “상생 의지를 가진 축산인이 들어온 이후 마을 발전 계획 수립에 속도가 붙었다”고 말했다. 송영수 이장(왼쪽)과 이도헌 성우농장 대표.

 

자립의지를 가진 주민들과, 마을과 상생하고자 하는 뜻있는 축산인이 함께 ‘농촌형 친생태·에너지자립 공동체’를 꿈꾸는 특별한 마을이 있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머리를 맞대며 오랜 시간을 노력한 마을은 이제 본격적인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더 큰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의 원천마을은 35가구 70여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평범하던 마을에 변화가 시작된 건 10년 전. 마을사람들은 지난 2010년부터 2년에 걸쳐 1.4km에 이르는 해바라기길을 조성하고, 마을길과 길을 따라 흐르는 금리천 수변에 감나무를 심었다(이후 매실나무 등으로 바뀌었다).

이 나무들은 지금까지도 남아 마을의 생태자원으로서 경관 제공 및 가공제품 생산에 활용되는데, 원천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풍경을 본격적으로 가꾸었던 이 시기를 생태에너지 자립마을 발전의 원년으로 본다. 그래서 지난해 마을 고유의 행사 ‘조롱박 축제’는 마을발전 10주년을 기념해 열렸다.

조롱박 축제는 지난 2014년 마을회관 앞에 조성한 110m 길이의 ‘조롱박 터널’을 배경으로 박이 풍성하게 열리는 8월에 개최된다. 쉐프를 초청해 방목으로 키운 토종돼지를 잡아 음식을 대접하는가 하면, 생태에너지 생산과정을 체험하는 부스를 운영하며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최근엔 마을과 인연을 맺은 사진작가 박병혁씨의 작품을 통해 마을 사진전도 열리고 있다.

다채로운 프로그램 덕에 코로나19 확산 직전의 마지막 축제 땐 400명이 넘는 방문객을 맞아, 자연스레 마을이 6차 산업에 진출할 발판으로 자리 잡았다. 마을 스스로 기획하고 준비하는 이 축제는 자립과 친생태라는 마을의 성격을 외부에 알리는 상징성 또한 갖는다. 마을회관에는 음식물쓰레기를 활용한 바이오가스 화로가 있어 재생에너지로 축제날 식사를 조리하고, 지난해부터는 그것을 담고 집을 용기와 수저 또한 일체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19년 열린 조롱박 축제 당시 110m 길이의 조롱박 터널 꾸미기를 마친 주민들이 이를 기념하고 있다. 원천마을 제공
지난 2019년 열린 조롱박 축제 당시 110m 길이의 조롱박 터널 꾸미기를 마친 주민들이 이를 기념하고 있다. 원천마을 제공

 

친환경 에너지 자립마을로 나아가고자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시점 또한 축제를 준비하던 시기과 맞물린다. 이 무렵 마을에 있던 한 돼지농장을 인수하며 귀농한 이도헌 성우농장 대표의 등장이 많은 변화를 불렀다. 이 대표는 사십대 중반에 금융업계 임원 지위를 내던지고 새로운 시각으로 축산업에 뛰어든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많은 언론에서 주로 ‘동물복지’, ‘사물인터넷’ 등 선진적 축산 연관 핵심어를 언급하며 그를 성공한 귀농인으로 조명했지만, 그가 자신의 농장을 넘어 농촌·농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심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잘 다루지 않았다. 송영수 원천마을 이장은 농촌공동체와의 상생을 추구하는 이 대표의 모습이 마을의 화합을 불렀고, 다 함께 마을의 발전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한테 ‘모여라’ 하면, 소위 부역이나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지. 그런데 이 대표가 와서 나서주니까 한 달에 한 번도 모이고 두 번도 모이기 시작했어. 저 사람은 다른 축산업자들 같은 그런 태도가 없어요. ‘어떻게 하면 상생할까, 어떻게 하면 잘 살까.’ 사람들이 화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지. 물론 축사에서 냄새 덜 나게 무진 노력하는 것도 있고.”

공동체 활성화 이후 마을 발전에 속도가 붙었다. 원천마을은 기후위기니, 탄소중립이니, 그린뉴딜이니 하는 이야기들이 화두로 떠오르기 한참 전인 2010년대 중반부터 이미 에너지 자립마을로 도약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2014년 마을발전 추진위원회를 구성한 주민들은 우선 주택 단위의 에너지 자립부터 실천해 나갔다. 마을은 현 시점에도 상당한 수준의 에너지 자립도를 갖고 있다. 지난 2016년 마을발전기금과 한국서부발전의 상생 지원을 활용해 3kW 수준의 지붕태양광발전기 보급을 시작한 결과 지난해부터 빈집을 제외한 모든 농가주택에서 전기를 자급하고 있다. 상업용태양광은 마을의 경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6기를 허용했다. 더불어 각 가구들엔 지열을 끌어 쓰는 지중열 보일러도 설치돼 있어 사시사철 냉난방도 부담 없이 누린다. 단열이 취약한 낡은 주택에는 벽체를 새로 보수하는 등의 개조도 진행했다.

 

지난 2020년 말 마을 에너지자립의 주축이 될 ‘원천에너지전환센터’가 준공됐다. 마을은 이곳에서 나오는 폐열로 난방비를 절감한 유리온실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 2020년 말 향후 마을 에너지자립의 주축이 될 ‘원천에너지전환센터’가 준공됐다. 마을은 이곳에서 나오는 폐열로 난방비를 절감한 유리온실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마을 발전 10년의 대미를 장식하는 ‘원천 에너지 전환센터’가 성우농장 부지에 준공됐다. 이 대표가 지난 2016년 마을에 가축분뇨 자원화 사업을 제안했고 마을 사람들이 이에 호응한 결과다. 이 시설은 가축분뇨를 활용한 화력발전소(바이오가스플랜트)로, 돼지분뇨의 가스를 활용해 전력을 생산한다. 밀폐식 구조로 만들어져 농장은 분뇨에서 퍼지는 악취를 저감할 수 있고, 현대화 사육에 들어가는 막대한 전력도 보충할 수 있다. 발전과정에서 자연히 갈 곳 잃은 폐열과 분뇨를 재처리한 비료도 나오는데, 이 대표는 이를 소재로 축사를 받아들인 마을과 더 큰 상생을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 폐열을 활용한 저탄소 유리온실 및 이와 연계한 마을관광을 핵심으로 하는 장기발전계획을 세웠다. 이것이 2017년 말의 일로, 이듬해 마을단위를 대상으로 하는 가축분뇨 공동자원화 사업에 선정되며 꿈에 한발 다가서게 됐다. 현재 시험가동 중인 발전소는 곧 하루 110톤의 분뇨를 처리하며 시간 당 430kW의 전기를 생산할 예정이다. 농가주택 1,000호가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이 대표는 최근의 기후위기 사례를 들어 원천마을의 청사진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저 상상입니다만, 이번에 미국에서 혹한 속에 대정전이 났잖아요. 갑자기 기후위기가 왔을 때 이곳만큼은 자가 생산하는 전기로 생활과 영농을 지속할 수 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농업용 전기와 면세유 같은 제도들은 결국 화석 연료에 대한 보조금이고 장기적으로는 저탄소를 지향하는 흐름 속에 없어질 겁니다. 그렇게 자원의 단가가 올라가면 우리 농업이 경쟁력을 갖추기는 더 어려울 거에요. 마치 로컬푸드처럼, ‘로컬전기’로 이걸 대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종국에는 소규모 독립형 전력망(마이크로그리드, 일방향성 국가 전력망에서 벗어나 독자 전원공급체계를 갖춘 국지적 전력망)시대를 맞아 전력, 비료 등 모든 자원을 자급할 수 있는 영농기반과 경제모형을 마련하는 것이 원천마을의 궁극적 목표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해 11월에는 마을사업의 주체가 될 마을 협동조합 ‘머내’도 설립했다. 머내는 원천(遠川)마을을 옛날에 부르던 이름이다.

원천마을은 주민들이 자립 의지와 시설 기반을 다진 지난 10년을 기념해 지난해 축제에서 ‘2020 친생태 에너지전환 주민 선언서’를 채택했다. “작물농사, 에너지농사 모두 잘 지어내 우리나라 농촌 에너지 자립마을을 대표하겠다”며 원대한 포부를 뽐내는 원천마을의 향후 10년이 기대된다.

 

성우농장과 바이오가스플랜트 전경. 홍성군 제공
성우농장과 바이오가스플랜트 전경. 홍성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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