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거긴 농지가 아니었을 거야

  • 입력 2021.03.07 18:00
  • 수정 2021.03.26 13:59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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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비리로 얼룩진 3기 신도시 조성사업 때문에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사업 실무를 주관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일부 직원들이 광명·시흥 신도시 부지 지정 전 사전정보를 바탕으로 농지로 위장까지 해두며 미리 토지를 확보한 정황이 확인되면서 우리 사회의 공정이라는 가치는 또 다시 크게 훼손됐다.

이런 와중에 LH 내부에서 적반하장식의 반응이 새어나와 더욱 공분을 사고 있다. 핵심만 옮겨보자면 “우리라고 부동산 투자하지 말란 법 있느냐”는 내용이다.

유포된 글들엔 재미있는 부분이 하나 있다. 이들이 땅을 그냥 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농지로 위장까지 했으나 이 부분에 대해선 반성은커녕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투자 자체는 잘못이 아니라는 전제 속에 경작지 위장을 동원한 농지의 보유는 부동산 투자의 수단 중 한 가지이고, 이것을 선택했을 때 응당 치러야 할 과정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농지가 부동산 투자의 대상으로 전락한 현실은 이미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농촌과 멀리 떨어진 이들에게 농지는 이제 하나의 투자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잠시 정보의 바다 속에 들어가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생각이 없으면서도 농지를 소유하려 하는지 대강 짐작해볼 수 있다.

인터넷에는 이미 편법으로 농업의 영역을 침범해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정보가 포털이나 커뮤니티에서 거리낌 없이 공유되고 있다. 농지취득자격증명 준비 방법, 농업법인 설립을 통한 절세 및 농지취득 방법, 지분 취득을 통한 소규모 농지 구매 방법 등이 부동산 투자를 위한 요령으로 버젓이 언급된다. 실경작자가 아니면 농지를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농지법의 권위가 어디까지 떨어져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 2019년에도 한겨레 탐사팀의 한 기자가 여야 국회의원들 자신의 개발 공약과 얽힌 소유 농지들을 파헤치며 농지구입으로 위장한 부동산 투기의 실태를 밝힌 바 있다. 나라에서 최고의 권력과 명예를 가진 국회의원들이 농지법을 지키지 않았음에도 정부나 국회에서는 어떠한 특단의 조치도 없었고 급기야 오늘의 사태에 이르고 말았다.

LH는 앞으로 철저한 조사를 통해 위법 사항이 확인될 경우 엄중 조치한다고 한다. 전 직원 및 가족의 토지거래 사전신고제도 도입한다고 한다. 거기서만 그러면 뭐할 건가. 그들이 아니더라도 아마 임차계약서 없이 땅을 굴려가며 호재만을 기다릴 또 다른 가짜농부가 차지했을 땅이다. 어차피 거기가 진짜 농지가 아니었을 거라는 덴 지금 대통령을 포함해 아무도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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