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임대차계약서, 지주가 안 써줍니다”

임차농, 계약서 없는 농지 공익직불금 못 받아 ‘답답’

  • 입력 2021.03.01 00:00
  • 수정 2021.09.11 08:02
  • 기자명 원재정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원재정]

“볍씨도 담그기 전부터 소작쟁이 가슴에 염장을 지르네요. 비농업인 (걸러낼) 대책도 없으면서 임대차계약서라니… 이젠 (임차농은) 을도 아니고 병, 정이 되겠네요.” 지난달 중순 경기도 여주에서 1만5,000평 벼농사를 짓는 농민 전용중(51)씨가 인터넷 소셜네트워크(SNS)에 사진 한 장과 함께 답답한 마음을 적었다. 사진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장 명의의 우편물로, 올해부터 공익직불제 신청시 반드시 임대차계약서가 준비돼야 한다는 안내서였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보낸 공익직불제 신청 안내문. 올해부터는 공익직불제 신청시 임대차계약서를 반드시 제출해야만 한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보낸 공익직불제 신청 안내문. 올해부터는 공익직불제 신청시 임대차계약서를 반드시 제출해야만 한다.

지난해 ‘경작사실증명서’만으로도 가능했던 공익직불제 신청이 올해부터 ‘임대차계약서’만 허용된다. 농관원이 4월 공익직불제 신청 시기를 앞두고 사전 안내에 나선 것이다.

‘임대차계약서’ 지침을 확정한 농림축산식품부 공익직불정책과는 “이전에는 본인 농지에 농사를 짓는 것에 무심했지만 지난해 공익직불금액이 올라가다 보니 무단점유 등에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한 농지의 실경작자에게 직불금이 갈 수 있도록 원칙을 바로 잡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 임대차계약서 작성이 불가한 경우(농지소유자 사망 이후 상속이 제대로 안된 경우, 외국인 소유의 경우, 소유자가 다수인 경우)는 경작확인이 가능한 서류로 대체 가능하다.

하지만 농촌현장에서 계약서 없이 농지임차를 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정부는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나 이번 조치로 직불금을 지주에게 ‘양보해야’ 하는 임차농의 불이익이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전용중씨는 임대차계약서를 철저히 쓰는 것으로 소문이 파다해 1만5,000평 모두 공익직불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주변 상황은 임차농의 권리가 전혀 보장되지 않기에 “큰일이다. 농민들 반 이상은 구두계약으로 농지를 빌려 농사짓는다. 농지 소유 자체가 불법인 사람은 당연히 임대차계약서를 남기지 않고, 양도소득세 혜택을 받기 위해서도 임대차계약서를 거부한다. 임대차계약서 없이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임차농도 아닌 ‘대리농’ 신분”이라고 장탄식을 했다.

현재 경작을 하지 않으면서 직불금을 수령하면 처벌 조항이 있으나 신고자가 임차농일 경우 결국 농지를 뺏기는 부작용만 돌아올 뿐 혜택은 전혀 없다. 또 직불금은 경작자가 받지만 그 금액만큼 임차료를 추가하는 우회적인 방법 등 임차농의 경제적 불이익은 각양각색이다. 전용중씨는 “임차농의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강력한 카드를 줘야 정부가 말하는 원칙이 바로 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주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제주 서귀포시에서 24년째 농사를 짓는 농민 고창건씨는 “제주는 공익직불 시행 첫해부터 임대차계약서를 제출해야만 직불금 신청이 가능했다. 경기도 여주처럼 지난해 경작사실증명서로도 직불금을 받았다면 2,500평 실경작지 전체가 해당됐을 텐데, 내가 받은 직불금은 고작 14만원이다”고 허탈해했다. 고씨는 “농사 규모가 큰 경우는 피해가 더 심각하다. 8만평 실경작을 하는 지인은 경영체등록 상 농지가 1,500평, 1,000평에 불과하다. 특별한 사례도 아니다. 이런 대규모 농사를 짓는 임차농들은 직불금은 안 받아도 좋으니 비료나 퇴비라도 경작사실증명서 등으로 대체해 지원혜택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소연 한다”고 전했다.

임차농에게만 부담을 지우는 방법으로는 직불금 부당수령 근절이 불가한 상황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