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처분만 고집하면 누가 방역 강화 노력하겠나?”

정부, 고병원성 AI 예방적살처분 범위 ‘반경 1㎞’ 잠정 축소
산안마을 살처분 명령은 유지 … “방역실패 인정하라” 반박

  • 입력 2021.02.21 18:00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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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한 동물복지 산란계 농장이 고병원성 AI 발생에 따른 예방적살처분을 거부하면서 살처분 중심의 방역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예방적살처분 범위를 잠정 축소하면서도 이전에 결정한 살처분 명령을 철회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고병원성 AI 중앙사고수습본부(본부장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는 지난 15일 브리핑을 통해 고병원성 AI 방역조치를 강화하는 한편, 향후 2주 동안 예방적 살처분 대상을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중수본은 가금농장에서의 발생 추이가 산발적인데다 감소 추세에 있다며 예방적 살처분의 범위를 발생농장 반경 3㎞에서 반경 1㎞로 축소 조정했다. 다만, 시기는 15일부터 2주간으로 한정하고 추후 연장 여부는 재평가를 거쳐 결정하기로 했다.

중수본은 예방적 살처분을 거부한 경기 화성시 야마기시즘실현지영농조합법인(대표 김상보, 산안마을)에 대해선 기존 살처분 명령이 적법하다면서 이를 철회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브리핑에 나선 박병홍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해당지역은 다른 농가들도 이미 예방적살처분을 했다. 해당농장을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면서 “당시의 살처분 명령은 그대로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전국먹거리연대,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연대, 환경농업단체연합회, GMO반대전국행동, 산안마을살처분반대 화성시민대책위원회 등 산안마을 살처분 철회를 요구해온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즉각 반박 성명을 냈다. 이들은 성명에서 “정부는 무차별 살처분으로 인한 과잉 방역정책 실패를 인정하라”면서 대국민 사과를 촉구했다.

야마기시즘실현지영농조합법인 조합원인 윤성열씨가 지난 9일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살처분 집행명령 취소를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야마기시즘실현지영농조합법인 조합원인 윤성열씨가 지난 9일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살처분 집행명령 취소를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성명은 “발생농가 수만 비교해 성공적 방역이란 억지주장을 하고 있다”면서 “예방적 살처분으로 미리 다 죽여놓고 발생숫자만 적다고 피해를 최소화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안마을 살처분 명령에 대해선 “현재 시점에서 존재하는 농장은 살처분 대상으로 할 근거가 없어진 상황이다”라며 “건강하게 산란계 농장을 일구며 성실히 살아온 산안마을 주민들을 폭압하지 마라”고 비판했다.

산안마을은 동물복지 산란계 농장을 주 수익원으로 하는 공동체로 현재 약 3만7,000여 마리의 산란계를 사육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3일 인접한 산란계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하며 예방적살처분 행정명령을 전달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현재까지 닭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살처분 명령 이후, 출하하지 못한 채 쌓아놓은 계란은 120만개를 넘어섰다고 한다.

산안마을 조합원인 김현주씨는 “피가 마르는 심정이다. 2~3년 주기로 고병원성 AI가 크게 발생했는데 살처분 정책은 20년 넘게 그대로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HACCP인증, 동물복지인증에 규모가 작은 농장인데도 다른농장과 계란이 겹치지 않게 하려고 식용란선별포장업을 받아 선별장도 만들었다. 여기도 경기도 방역선진형 농장사업을 받아 방역시스템에 8억원을 투입했다”면서 획일적으로 살처분을 한다면 어떤 농장이 이같은 투자를 하겠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김씨는 “개당 500원인 계란이 100만개가 넘게 있으니 5억원이 묶여있는 셈이다. 이같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누군가는 얘기하지 않으면 안되니 나선 것이다”라며 “이대로 예방적살처분을 고수하면 가금농가는 계절농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축전염병예방법을 고쳐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호소했다.

※ 산안마을은 지난 19일 예방적살처분 명령을 받아들였다. 농장에 있던 3만7,000여 마리의 닭들은 랜더링 처리됐으며 쌓여있던 계란 120여만개는 폐기됐다. 산안마을은 “자력으로 닭들을 지키기엔 한계에 다다랐다”면서 “살처분된 가축들에게 갖는 애도의 마음을 앞으로 전개될 운동의 힘으로 바꿔가도록 하자”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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