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시민아파트② 아파트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 입력 2021.02.01 00: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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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청계천에서 하꼬방 짓고 살던 시절 얘기? 아이고, 생각하기도 싫어. 지방에서 올라온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판잣집들 짓고 살았지. 뭘 해먹고 살았냐고? 그렇게 물어보면 곤란하지. 그냥… 빌어먹고 살았지 뭐. 남편이 중부시장에 가서 지게질도 하고 품팔이도 하고 그랬지만 공치는 날이 태반이고, 몇 푼 벌어봤자 애들이 한두 명이어야지. 그땐 워낙 굶는 사람이 많으니까, 저기 왕십리교회하고 성동공고 교문 앞에 가면 강냉이 죽을 끓여서 날마다 배급을 줬어. 우리 집 새끼들이 양재기 들고 거기 가서 배급이라고 타오면 식구대로 그거 나눠 먹고… 아이고, 더 물어보지 말어. 생각하기도 싫어.”

1960년대에 청계천변의 속칭 ‘하꼬방촌’에 살았던 한 할머니의 얘기다.

서울 시내에만도 그런 하꼬방촌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정부 당국자가 보기에, 특별시의 도처에 생성된 그런 하꼬방촌은 대대적인 수술을 해야 마땅한, 도시의 종양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 수술 작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 바로 시민아파트 건설계획이었다.

어느 날 확성기를 든 공무원이 청계천의 하꼬방 주인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

-여러분 각자는 지금 우리가 나눠준 아파트 입주권 그거 잃어버리면 절대 안 돼요. 이제 여러분은 이런 지저분한 판잣집이 아니라, 아주 멋지고 편한 아파트에서 살게 됩니다.

-그런데 아파트가 뭣이여?

-집을 언제 지어준다는 것인감?

-자, 자, 조용히 하고 끝까지 들으세요! 바로 여기 하꼬방촌, 이 자리에다 여러분이 살 아파트를 짓는다, 이 말입니다. 따라서 이 판잣집들은 오늘부터 당장 철거작업에 들어갈 겁니다.

-뭔 소리여? 그럼 우리는 어디 가서 살라고? 대책을 세워줘야 할 것 아녀?

-아, 대책이 전부 마련돼 있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세요. 저 쪽 뚝섬에 가면 여러분들이 임시로 살 집을 다 마련해놨어요. 자, 자, 가재도구들 다 챙긴 사람들은 저 쪽으로 가서 트럭에 올라타세요! 어이, 철거반! 철거 시작해!

무허가 판자촌의 철거작업은 군사 작전하듯이 그렇게 전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어차피 판자촌에 살던 사람들은, 대부분 떠돌이 행상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국에서는 그들을 일단 뚝섬으로 밀어냈을 뿐, 별다른 생계대책을 마련해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판잣집과 함께 청계천에서 불시에 ‘철거된’ 주민들은, 조금만 참으면 아파트라는 고상한 이름의 집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서, 뚝섬의 맨땅에다 군용텐트를 치고 사는 생활을 기꺼이 감내했던 것이다.

“군용 천막 하나에 네 가족이 배정됐어. 안에 딱 들어가니까 사방에 벌레가 막 기어 다니고… 그래도 어찌어찌 참고 살았지. 그런데 겨울이 되니까 도저히 추워서 지낼 수가 없는 거야. 내가 그때 중부시장에 있는 봉제공장에 다녔거든. 하는 수 없이 식구들을 쪼개서 여기저기 친척집으로 보내고, 나는 봉제공장 다락에서 지냈어. 이상한 것은, 꽤 높은 다락에서 잠을 자다가 여러 번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졌는데도, 한 번도 안 다쳤다니까, 하하하.”

또 다른 할머니가 들려준 얘기다. 할머니는 이렇게 덧붙였다.

“힘들 때마다, 장차 좋은 집에 들어가 사는 모습을 상상하려고 애를 써봤는데, 잠을 자도 그런 꿈은 한 번도 안 꿔지더라니까. 왜냐고? ‘아파트’라는 말을 첨 들어서, 고놈의 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꿈속에 나올 것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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