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용란선별포장업장, 벌써 부도 위기 몰렸다

식약처 밀어붙이기에 설치했지만 취급할 계란 구하지 못해
농장 내 업장은 HACCP 받기 어려워 … 농장 외부로 빼내야

  • 입력 2021.01.31 21:30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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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식용란선별포장업장들이 고병원성 AI 확산이 겹치며 심각한 경영난을 겪는 걸로 알려졌다. 정부의 무리한 밀어붙이기가 결국 화근이 된 셈이다.

수도권지역에서 식용란선별포장업장 2곳을 운영하는 A씨는 “한 달에 8,000만원 이상 적자를 보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지난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1일 처리물량 25만개와 1일 처리물량 100만개 규모의 식용란선별포장업장을 설치했다.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이후, 이 작업장들은 계란을 구하지 못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A씨는 “거래하던 농장 3곳이 최근 거래를 끊었다. 식용란수집판매업자들이 웃돈을 쥐어주며 계란을 받고 있다고 한다”라며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단속을 요청했지만 단속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올 상반기 안에 식용란선별포장업장들의 부도가 속출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정부는 2017년 살충제 파동 이후, 안전성을 강화하는 조치 중 하나로 식용란선별포장업을 신설했다. 가정용 계란을 유통하는 영업자는 검란기, 혈반검출기, 파란검출기, 중량선별기, 세척기, 건조기, 살균기 등 식용란 선별·포장에 필요한 장비나 시설을 마련해 식용란선별포장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기존 식용란수집판매업은 가정용 계란을 취급할 수 없게 됐다.

한 식용란선별포장업장의 내부 전경.
한 식용란선별포장업장의 내부 전경.

이같은 정책은 채란업계의 반발을 불렀다. 식용란선별포장업을 받으려면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하는데 영세한 계란유통업체들이 이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주무부서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같은 반대를 묵살하면서 제도 시행을 밀어붙였다.

밀어붙이기는 졸속을 불렀다. 제도는 1년의 계도기간을 거쳐 지난해 4월부터 본격 시행됐는데 가정용 계란 물량을 감당할만한 선별포장업장은 미처 설치되지 못한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일선 지방자치단체도 단속에 나서지 않는 분위기다.

식용란선별포장업은 당초 위생 및 방역을 강화하는 효과를 기대했지만 업장 채우기에 급급해지며 이조차 퇴색되고 말았다. 식약처가 농장 내 선별포장업장 설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4월 20일 기준 선별포장업장은 총 243곳인데 이 중 농장 외부에 설치된 업장은 103곳에 불과하다.

A씨는 선별포장업장 2곳을 설치하는데 총 200억원을 투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수집판매업장의 가정용 계란 영업이 계속되는 한, 적자를 벗어나긴 힘든 모습이다. 일부 선별포장업장은 식약처를 대상으로 한 행정소송도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A씨는 “선별포장업장은 혈반파각기를 돌리니 손실을 볼 수 있다. 농장 입장에선 수집판매업장을 선호할 수 밖에 없다”면서 “선별포장업장은 방역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만 소규모 영세상인들인 수집판매업장은 방역 시스템 자체가 없다. 그런데 누구도 단속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을 따라 막대한 투자를 한 선별포장업장만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산란계농장 내 선별포장업장 역시 해썹(HACCP)인증 심사가 의무화되며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산란계농장은 사육시설로 계분, 먼지 등 오염원이 산재해 있는 공간이다. 가공·유통단계에서의 해썹인증 기준을 맞추기가 매우 어렵다.

이에 생산과 유통을 명확히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농장은 계란 생산에 전념하고 농장 외부에 선별포장업장을 설치해 위생과 방역을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한 계란유통 관계자는 “현재의 선별포장업은 매우 기형적인 구조다. 방역을 강화하려면 일단 농장으로 외부차량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라며 “농장 안에 선별포장업장이 있으면 외부차량이 진입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지원금을 주고서라도 농장 안에 설치한 선별포장업장을 외부로 빼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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