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스마트팜 정책, 시설농업·대농 중심 문제

농협경제연구소 토론회, 스마트농업 현 주소 조명 … 인식 부족·고비용·기업 경쟁 심화

  • 입력 2021.01.31 21:30
  • 수정 2021.01.31 21:31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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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정부 스마트팜 정책의 현 주소를 조명하고 향후 농협이 추진해야 할 스마트농업의 방향이 제시돼 눈길을 끈다. 올해 1월 계간 농협 조사연구에 실린 ‘디지털농업의 현황과 발전 방향 토론회’ 중계를 통해서다. 토론회는 지난해 11월 농협경제연구소의 주관으로 농협중앙회 화상회의실에서 열렸다.

토론회에서 ‘스마트농업의 현황과 농협의 역할’을 발제한 남기포 농협대 교수에 의하면 우리나라 스마트농업은 정부에서 2008년 추진한 시설 현대화 사업부터 출발한다. 이후 스마트팜 혁신밸리 등을 주요 정책과제로 추진, 2020년엔 예산을 2,477억원으로 확대했다. 2022년까지 시설원예부문 스마트온실 7,000ha, 스마트축산 보급 농가를 5,750호로 확대하고, 한국형 스마트팜 모델을 개발하겠다는 게 농림축산식품부의 계획이다. 농식품부가 2018년 스마트팜 도입 성과 분석을 한 결과 생산량과 소득 향상에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토론회에선 정부 정책의 여러 한계도 조명됐다. 남 교수에 의하면 정부 정책은 시설원예 및 축산 등 대농에 편중돼 주요 농산물과 일반 농가가 소외되는 결과를 낳았다. 예산이 대규모 유리온실 단지인, 이른바 스마트팜 혁신밸리 조성과 축사시설 현대화 사업에 배정된 것이다. 노지 스마트농업 예산은 전체의 2%에도 미치지 않았다.

토마토 등 시설원예에 적합한 특정품목의 경우 생산과잉을 초래할 위험도 있어 기존 농가와 갈등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점도 문제다.

남 교수가 전문가 의견을 조사한 결과 △스마트농업에 대한 인식 부족 △대상 편중 △설치·유지 고비용 △표준화 미흡·데이터수집 부족으로 지속가능성 및 발전가능성 제약 △정부·기업·농민의 신뢰와 협력 부재 △전문성과 효율성 미흡 등이 문제로 확인됐다.

우선 정부와 기업, 농민들이 각각 다른 시각으로 스마트농업을 바라보는 점이 주요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 등 농업·농촌 문제의 기술적 해결 수단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기업은 정부 지원 정책에 기반해 사업을 확장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농민들 또한 정부 지원으로 노후시설 현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해관계가 충돌한다는 것이다.

정부 정책이 농업·농촌 문제의 단기적 해결에 집중하고 있어 정밀농업에 대한 기초 인식과 농업의 지속성을 위한 장기적 비전과 목표가 부재한 점도 문제 중 하나다. 또한 높은 설치·운영·유지비로 인해 중소농은 투자를 감당하기 어렵고, 대농들도 정부 지원이 없을 경우 경영 지속 여부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현장에서 스마트팜 정책이 1990년대 중반 가계부채를 증대시킨 반값 농기계 정책을 연상케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더불어 정부 정책이 농업계보다 산업계 요구로 출발했다는 점도 문제다. 스마트농업 관련 기업만 250개 이상이다. 기술 개발도 그 연장선에 있어 농업 생산과 자연환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농민의 요구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기업 간 경쟁이 심해 규격화·표준화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는 데이터 수집을 통한 생육 관리에도 난관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농민이 보게 된다. 농가에선 정부와 기업의 권유로 초기엔 국산 자재를 설치하지만 견고성·내구성 미흡 및 기업 도산 등으로 외국산 자재로 교체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유지비 증가로 이어진다.

남 교수와 전문가들은 스마트농업 발전을 위해서 앞서 언급된 과제들에 대한 해법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일단 정부 정책에 있어 비전부터 명확하게 세워야 한다. 기술적 목적을 넘어 경영적·사회적·환경적 목적을 지닌 정책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른 모형 정립, 대농·특정품목 중심 지원 탈피 등도 뒤따라야 한다.

농협형 스마트농업 아직 걸음마 단계

농협중앙회는 지난해 농협 비전 2025에 스마트농업을 주요 과제로 설정했다. 이와 관련 디지털혁신부 신설에 이어 디지털혁신위원회도 출범시켰다. 하지만 농협형 스마트농업은 현재까지 걸음마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농협의 사업이 금융지원 등에 머물러 있어서다.

남기포 농협대 교수에 의하면 농협은 현재 청년교육사관학교에서 청년 대상 창농교육사업으로 스마트팜 이론과 실습교육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또 농협은행이 스마트팜 시설원예농가에 50억원(청년농 30억원) 이내의 자금을 융자해주고 있다. 2017년부터 2020년 1월까지 86건 2,293억원이 실행됐다. 한편, 농협중앙회 전남지역본부에선 지자체 협력사업을 통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100명의 농가에게 50억원을 지원하는 스마트팜 보급 사업을 진행 중이다.

남 교수와 전문가들은 “농협과 지역농·축협의 스마트농업은 구상 및 계획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며 “정부 정책 추진이나 농업현장의 관심과 비교하면 매우 미흡한 상태라 할 수 있어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농협이 현장에서 스마트농업의 보급과 정착에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남 교수는 토론회를 통해 농협형 스마트농업 추진 과제도 제시했다. 일단 초기투자비 및 운영비를 최소화해 중소·청년농에게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한 모형을 제공하는 게 농협형 스마트농업의 목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범농협 자원을 활용해 보급(스마트농업 자재, 공동이용 등)-생산지원(교육 컨설팅과 자발적 정보공유 모임 조직)-유통판매(온라인 포함)까지 포함한 원스톱 지원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게 남 교수의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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