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농촌 매주 찾아가는 ‘트럭 한 대’의 온기

  • 입력 2021.01.24 13:16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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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19일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부필1리 마을회관 앞에서 문을 연 대월농협 이동판매 트럭 ‘찾아가는 하나로마트’에 한 고령 여성주민이 첫 손님으로 방문하고 있다.
지난 19일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부필1리 마을회관 앞에서 문을 연 대월농협 이동판매 트럭 ‘찾아가는 하나로마트’에 한 고령 여성주민이 첫 손님으로 방문하고 있다.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대월농협에는 ‘찾아가는 하나로마트’라는 서비스가 있다. 트럭에 하나로마트 판매 상품을 실은 뒤 마을을 직접 찾아가 주민들이 매장에 오지 않고도 물건을 구매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다. 대월농협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관할 지역 18개 마을을 각각 1주일에 한 번씩 찾아가 농촌 주민들, 특히 이동이 어려운 고령의 어르신들을 배려하고 있다.

기자가 찾아간 화요일은 오후에 ‘부필1리’와 ‘부필2리’를 도는 날이다. 두 마을은 대월면에서도 아주 한적하고 조용한 편인 농촌마을. 면소재지이자 농협 하나로마트 본점이 위치한 초지리와의 거리가 멀진 않지만, 이곳에 닿는 버스의 운행횟수가 적어 운전을 할 수 없는 노령의 주민들이 아무 때나 마을 밖으로 나오긴 어려운 환경이다. 사실 교통상황이 더욱 열악한 지방 농촌에 비하면 이곳의 교통 접근성은 매우 좋은 편이지만, 보행기 없이 걷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면 그 점은 크게 의미가 없다.

초지리를 벗어난 트럭은 마을의 영역에 다다르자 차량 외부에 장착된 스피커를 통해 트로트 음악을 크게 내보낸다. 주민들은 마을에 트럭이 오는 날을 이미 알고 있지만, 어쨌거나 이번 주에도 변함없이 ‘출석’했음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다. 부필1리 마을회관 앞에 도착한 트럭이 윙바디 형태(측면 양쪽이 위로 활짝 열리는 모양)의 적재함을 활짝 열어두고 기다리자 음악소리를 들은 주민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하나로마트에서 근무하며 트럭 운행 초기부터 이 일을 담당한 윤옥순 씨가 손님으로 방문한 어르신을 맞고 있다
하나로마트에서 근무하며 트럭 운행 초기부터 이 일을 담당한 윤옥순 씨가 손님으로 방문한 어르신을 맞고 있다.

“연로하신 분들이 제일 많이 이용을 해요. 나오기가 어렵잖아요. 여기도 그렇고 면 경계에 있는 마을들은 교통도 안 좋고 하니까요. 조합원들 배려 차원이죠.”

이날은 하나로마트에서 일하는 윤옥순 씨가 판매원으로 탑승해 주민들을 맞았다. 이동 트럭이지만 카드 결제도 가능하고, 현장에서 회원번호를 적으면 적립도 챙겨준다. 지난 2017년 시작된 이 이동판매차의 운전기사는 그 때 그 때 여력이 되는 농협 직원들이 맡는데, 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지인구 조합장이 직접 몰 때도 있다고 한다. 이날의 기사는 한차희 과장이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이전, 특히 겨울에는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항상 모여들 계시니까, 트럭이 오면 나오셔서 이야기도 하고 안 사실 것도 사시면서 대화도 하고 그런 풍경이 있었죠.”

1.2톤 트럭의 적재공간이란 게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만큼, 있는 건 있고 없는 건 없다. 그 매대에서 비록 원하는 상품의 상표나 사이즈를 마음대로 고를 수는 없지만 식용유·간장과 같이 중요한 식료품에서부터 과자·음료 등 기호품, 그리고 휴지·세제와 같은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구비된 물품들은 제법 구색을 갖추고 있다. 지금처럼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생선이나 유제품 등 저온냉장이 필요한 물품들도 매대에 올린다.

정 콕 집어 사고 싶은 게 있을 경우 매장에 미리 전화하면 출발하기 전에 트럭에 실어두기도 하니 이동 차량인 것을 감안하면 서비스 수준이 그리 나쁘지 않다. 제일 먼저 찾아온 한 할머니는 칼국수를 해 드시고 싶었는지 ‘칼국수면’을 찾았지만 없어서 아쉬운 대로 윤씨가 추천한 쌀국수면을 사 간다. ‘술은 없나’하며 들러본 한 남성 농민도 소주를 받아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요리용 소스를 따로 주문해둔 주민도 마지막으로 나타나 물건을 찾아갔다.

다섯 명의 손님을 받은 트럭은 이제 다음 행선지 부필2리로 갈 채비를 마쳤다. 그런데 부필2리를 가기위한 경로가 조금 이상하다. 두 마을을 이어주는 최단거리의 마을길이 아닌, 빙 둘러 돌아가는 농로를 택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농로 한쪽에는 하우스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알고 보니 이날 트럭을 몰던 한 과장에게 이곳에 들러달라는 전화가 왔던 모양이다.

넓디넓은 하우스 부지 입구에 트럭이 도착하자 전화를 걸었던 김모씨를 비롯해 농민 예닐곱 명이 쏟아져 나온다. 수확한 상추를 박스 포장해 출하 트럭에 싣는 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던 작목반원들이다. ‘찾아가는 하나로마트’라는 이름답게 이렇게 농작업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다.

“아이고~ 올 적마다 애용하지. 전에는 오전에 왔었는데, 지금은 매주 화요일 한시 반에서 두시 사이. 부필리 오는 시간 되면 거의 들러달라고 전화하죠.”

“이런 거 찍어서 뭐해. 꽃값이나 좀 어떻게 해달라고 기사 좀 써 봐요.”

트럭에 매대를 차린 만큼 농민들은 농작업 현장으로 직접 찾아와 달라 요청할 수도 있다.
트럭에 매대를 차린 만큼 농민들은 농작업 현장으로 직접 찾아와 달라 요청할 수도 있다.

프리지아를 함께 키우는 한 여성농민은 코로나19로 인해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는 화훼업에 대한 불만을 가감 없이 토로한다. 그런 모습에서 이 트럭이 단지 주민들의 접근성을 배려할 뿐만 아니라 평소 소통창구의 역할도 적잖게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잖게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나 좋아하는 믹스 커피라면 모를까, 이런 게 팔릴까 싶은 ‘콘프레이크포테이토마차(茶)’ 같은 기호품도 손님이 제법 몰리니 매대에서 빠져나간다. 팔리진 않았지만 포장생선이 담긴 아이스박스도 뚜껑이 한 번 열렸다. 상추농민들은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하우스 속 ‘현장 탕비실’에 채워놓을 물건들을 손쉽게 구매하고, 손인사와 함께 트럭을 떠나보냈다. 다음으로 찾아간 부필2리에선 고령의 주민 몇 명이 아예 마을회관 앞에 앉아 트럭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

“사실 대월면의 중심은 이제 농협이 있는 면소재지가 아닌 북쪽의 개발지구라, 인구가 빠지면서 본점은 20년 전에 비하면 매장 크기도 많이 줄었죠.”

대월농협 하나로마트를 담당하는 김현석 과장은 농촌 지역의 쇠퇴로 판매사업에 더 이상의 투자를 하기 어려운 처지라고 설명했다. 즉 이동판매 트럭은 그러한 상황 속에 다른 방향으로 조합원들을 배려하기 위해 나온 결과물이기도 한 것이다. 이 트럭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하나로마트 전체의 2.2%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업의 경제성을 떠나 소외받은 농촌에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모습은, 특히 코로나19로 농촌의 활기를 더욱 찾아보기 어려운 오늘날 큰 의미로 다가왔다.

보행기가 없으면 거동이 힘든 정도로 연로한 노인들에게 이동판매차는 더없이 유용한 존재다.
보행기가 없으면 거동이 힘든 정도로 연로한 노인들에게 이동판매차는 더없이 유용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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